[20171210m] 말씀과 성탄 (요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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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0m
요 1:14
말씀과 성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오늘은 대강절 둘째주일이자 성서주일입니다. 성서주일은 매년 12월 둘째주일에 전 세계 교회가 함께 지킵니다. 더구나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입니다. 그래서 올해 성서주일이 의미가 깊습니다. 종교개혁은 원래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신앙 운동이었습니다. 중세 가톨릭이 너무 전통, 제도, 의식, 교황의 권위에 의존하며 말씀으로부터 멀어지니까 문제가 많이 발생했습니다. 그 점을 비판하고 저항하며 개혁에 나섰던 것입니다. 솔라 스크립투라(오직 말씀으로, sola scriptura)가 종교개혁의 기치였습니다. 500년 전 종교개혁을 통해 출범한 교회가 개신교회이기에 지금도 우리는 말씀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가톨릭은 지금도 전통, 의식, 교황의 교서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개신교회는 말씀이 신앙생활의 유일한 규범으로 여깁니다. 성서주일이자 대강절 둘째주일인 오늘은 말씀과 성탄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말씀과 성탄은 관계가 있습니까? 본문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헬라어로는 <호 로고스 사르크스 에게네토>입니다. 로고스는 말씀입니다. 사르크스는 육체입니다. 그러니까 성탄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탄생한 사건입니다. 그러면 말씀은 무엇이고, 육신이 무엇입니까?
로고스인 말씀은 원래 성경만의 고유한 어휘는 아닙니다. 성경 이전부터 고대 헬라 철학자들이 로고스를 자주 말하고 가르친 중요한 형이상학적 개념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로고스는 절대적이고 원초적이며 최고의 선, 우주의 제1원인자입니다. 지고의 선, 빛, 영원한 진리, 영적 세계가 이데아인데, 로고스가 같은 뜻의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이데아가 사르크스가 되었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문제는 사르크스, 육체입니다. 사르크스는 로고스의 반대말입니다. 로고스가 빛인데 사르크스는 어둠입니다. 로고스가 진리요, 사르크스는 거짓이요 허상입니다. 헬라 철학자들은 빛과 어둠, 영과 육을 칼처럼 구분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빛, 영이 참이라고 했고, 사르크스는 거짓, 허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본문은 로고스가 사르크스가 되었다고 합니다. 바로 이 사건이 성탄이라고 합니다. 요한복음의 수신자는 누구입니까? 예를 들어 마태와 마가복음은 유대인들을 향해 썼습니다. 누가복음은 로마 사람을 겨냥해서 쓴 책입니다. 요한복음은 헬라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변증하기 위해 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이 땅에 탄생하셨다고 하지 않고, 그들에게 익숙한 개념을 차용해 로고스가 사르크스가 되었다고 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로고스가 최고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와 성경을 번역할 때, 구약에 나오는 히브리식 하나님 이름인 엘로힘과 신약의 데오스를 하느님이라고 번역했습니다. 하느님은 원래 하늘님이고, 하늘님은 이미 우리나라 무속에서 수 천년간 써오던 칭호입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천지신명 가운데 천신을 최고 신으로 꼽았습니다. 그래서 가톨릭이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하늘님을 차용해 성경의 엘로힘과 데오스를 표현한 것입니다. 요한복음의 로고스도 마찬가집니다. 헬라 사람들이 절대적인 개념으로 믿어온 로고스가 다름 아닌 성경의 엘로힘, 데오스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그 점부터 확실히 하면서 시작합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로고스, 즉 하나님이 사르크스, 곧 육신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성육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헬라 사람들에게는 이 점이 용인되지 않았습니다. 로고스가 하나님이란 사실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 로고스가 사르크스가 되었다는 점은 믿지 못했던 겁니다. 로고스는 빛이고, 사르크스는 어둠인데, 어떻게 로고스가 사르크스가 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헬라 사람들은 일단 기독교에 입문은 합니다. 그러고 나서 자기들 방식으로 성육신 교리를 재해석했습니다. 그것이 소위 도케티즘(가현설)입니다. 가현설은 말씀이 육신으로 태어나신 게 아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처럼 사람 눈에 보였을 뿐이라는 주장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 최고요 최대 이단인 영지주의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영은 절대 육이 될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현설을 주장했던 겁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야말로 이단사설입니다.
주님은 완벽하게 사르크스가 되신 로고스입니다. 완전한 하나님이신데 완벽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정체성을 얘기할 때 완전한 하나님이요 완전한 사람(vere Deus vere homo)이라고 합니다. 성탄이 주님의 정체성입니다. 성탄은 하나님이 자신을 내려놓으신 전무후무한 역설의 기적입니다. 요한복음 1장 10절 이하입니다.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성탄의 역설을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새로운 신분과 정체성과 권세를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더 의문이 생깁니다. 왜 굳이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을까요? 왜 주님이 굳이 우리 가운데 성탄하셔야 했을까요? 여러분 왜 성탄이 필요했을까요? 거꾸로 말해서 만약 주님이 성탄하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로고스의 성육신이 없었다면 아마 하나님과 인간은 영원히 서로 만나지 못했을 겁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소통은 영원히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서로 이해도 교감도 교제도 영원히 가능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이고 초월 존재이시고, 우리는 시공간 안에서 엄격한 제약 가운데 있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인간은 절대 소통할 수 없습니다. 같은 차원에 존재하지만 종이 다르면 소통이 어렵고, 게다가 같은 사람끼리라도 소통이 잘 안 되고 있습니다. 동서양이 소통이 잘 안 되고, 영호남이 소통이 잘 안 되고 있습니다. 새들은 자기들끼리 소통하고 있는데 우리는 새가 운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종이 다를 정도가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의 구원을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소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사실과 어떻게든 우리를 구원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영생하게 하시겠다는 뜻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우리로부터 공감을 얻어내고, 믿음을 얻어내기 위해 대화가 필요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창조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 내가 너희를 구원하여 천국에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살기를 바란다. 이러한 하나님의 중심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장 1절 이하입니다. “[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구약 때는 하나님이 때마다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간접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이 당신 뜻을 우리에게 전달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간접적인 방법에는 소통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충분히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안타까움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간접적인 방법에 문제가 있으니 보다 직접적인 방법을 택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존재론적 차원을 같게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최상의 소통이 이뤄집니다. 로고스가 사르크스가 되든지, 사르크스가 로고스가 되든지 였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이 방법을 결행하십니다. 로고스가 사르크스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보좌를 버리고 비천한 땅으로 오셔서 우리와 눈높이를 맞추셨습니다. 그렇게 소통이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처럼 보인 게 아니라 완벽한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이 복음의 실체가 주님인 것입니다. 완전한 하나님, 완전한 사람의 실체가 주님이란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이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시는지,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살기를 기대하시는지를 주님을 통해 모두 증거하셨습니다.
주님은 본래 하나님이시지만 성탄을 통해 완전한 사람이 되심으로써 우리와 언어와 정서가 같아졌습니다. 그래서 대화가 되고, 적나라한 소통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그 자체가 생생한 하나님의 육성입니다. 그분의 삶은 입체적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주님의 존재 자체가 생생한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통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다 알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성탄을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생생한 하나님의 육성을 듣게 된 것은 바로 성탄을 통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탄은 감사한 것입니다. 성탄은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게 베푸신 위대한 복입니다. 성탄이 없었으면 하나님과 우리와의 만남도 구원도 없습니다. 주님이 성탄하셨기에 그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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