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느릿 산책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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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이 넘으면 여기저기서 죽음이 보입니다.
젊을 때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상을 당해도 죽음은 여전히 남의 일입니다.
그러나 60줄에 들어서면 부모님, 집안 어른들, 친구 부모님, 선배, 더러는 동기, 친구들이 하나 둘 내 곁을 떠나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죽음이 남의 얘기가 아니고 진지한 나의 현실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지난 10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 약 한 달간의 제 SNS를 확인해 본 결과 부고 11건, 청첩 5건, 출산이 1건이었습니다. 시즌임에도 경사보다는 애사가 압도적이었습니다. 제 인생에도 어느덧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워지고 있음이 확인되는 대목입니다.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제 아무리 자기 관리를 잘한다 해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모세는 120세의 고령에도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도 쇠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역시 죽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친한 친구 하나가 복막염 수술 후 염증이 가라앉지 않아 여러 합병증에 시달리다 결국 죽었습니다. 제가 병원을 찾았을 때 그는 제 손을 아프도록 틀어잡고 <날 살려줘! 응? 난 죽기 싫어! 무섭단 말이야!>하며 애원했습니다. 평소 열심히 교회생활을 하던 친구라 제가 <진춘아, 하나님을 찾아! 주님을 불러!>라고 하자 그 친구는 거의 발악을 하듯 <하나님이 다 뭐야! 그런 거 없어!>하며 막 울더니 아파 죽겠다며 빨리 의사를 불러오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날 밤 저는 숨진 그 친구의 시신 곁에서 무서워 벌벌 떨며 많이 혼란스러워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가을빛이 점점 더 짙어가는 11월 하순,
정종덕 집사님이 훌쩍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여,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하며 꽃다운 오십여 개 성상을 뒤로하고 황망하게 갔습니다.
노권사님, 민철이와 은철이에게 뿐 아니라 우리 교회에도 큰 나무 같고 듬직한 언덕 같은 존재였는데 친구들, 지인들, 회사 직원들에게도 늘 베풀고 정 많은 사람으로 각인 돼 있는데 그 열매 채 거두기도 전에 서둘러 떠났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인생을 <마라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일이 닥칠 때마다 <인생은 장거리 뜀박질이야. 단거리 경주가 아니야!>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습니다. 성경에도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 말씀이 적지 않습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거나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노라>등이 다 고대 마라톤을 빗댄 말씀들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번에 아마추어 마라토너였던 정집사님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제 인생 여정을 마라톤하듯 달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걷고 싶습니다. 뜀박질이 아니라 여행객처럼 산책이나 트레킹하는 사람처럼 천천히 걷고 싶습니다.
지난 월요일 장례날, 납골 묘지에 골분을 봉안할 때만해도 화창했던 날씨가 장지인 신탄진을 떠나 분당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차창 밖으로 메마르고 인색한 첫 눈이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유족들께 다시 한 번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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