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29m] 개혁의 원조 (막 1:14-15, 요 2: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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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9m
막 1:14-15, 요 2:13-19
개혁의 원조
(막 1:14-15, 개정) [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요 2:13-19, 개정)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제가 작년에도 여쭤본 것 같습니다. 흔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주님의 이미지는 어떤 것입니까? 평소 우리는 주님을 어떤 캐릭터로 이해하는지 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여러분이 주님을 개혁가, 혁명가, 전사, 투사로 연상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을 항상 용서하시고, 다 받아주시며, 끝까지 나를 품어주시는 분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과연 옳은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편견, 선입견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방적인 시각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오늘이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주일이고, 31일이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일입니다. 사실 종교개혁은 올해가 500주년이 아니라 2000주년입니다. 주님이 종교개혁의 원조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종교개혁의 진정한 원조입니다. 다만 루터를 위시한 중세의 여러 개혁가들은 오랫동안 잊었던 주님의 개혁과 성경의 개혁정신을 재발견하여 되살린 것입니다. 루터는 개혁정신을 재점화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온화한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부분이 개혁의 기수, 원조가 되게 했는지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주님이 언제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까? 주님은 30년간 개인 삶을 사시고, 31세 되던 때부터 공생애를 사십니다. 그 구체적인 시점이 언제부터입니까? 그 계기가 무엇입니까? 마가복음 1장 14절입니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 말씀이 왜 중요하냐면 주님이 30년간의 사적 생활을 끝내고 3년간의 공적 생활을 시작하게 된 동기, 시점과 구체적인 장소까지 특정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잡힌 사건이 주님의 공적 삶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시점은 요한이 붙잡힌 직후입니다. 공적 삶이 시작한 장소도 요한이 활동하다 붙잡힌 현장인 갈릴리였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한 주님이 맨 먼저 외친 말씀은 무엇입니까? 이어지는 본문 15절입니다.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주님이 공생애 제1성으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나라라고 하면 지리적 개념으로, 영토 개념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라고 하면 죽어서 가는 저 세상, 천국, 천당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여기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바실레이아 투 데우)는 영토보다는 주권 개념입니다. 하나님의 통치, 지배, 정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고, 그분의 주권이 관철되는 세계가 바실레이아 투 데우입니다. 굳이 죽어서 가는 저 세상이 아니라도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곳이면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곳입니다. 내 심령이 온전히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살면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내 가정도, 지금 여기도 하나님의 주권이 관철되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면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여러분, 요한이 왜 헤롯에게 붙잡혔습니까? 헤롯의 폭정과 비리, 죄악을 비판, 고발, 성토하다가 국가원수 모독죄로 잡혀 들어갔습니다. 요한이 정치범으로 당국에 붙잡힌 직후 아직 분위기가 여전히 공안정국인데 주님이 그 사건현장인 갈릴리로 직행하여 공생애 첫 발을 내딛으며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한 것입니다. 얼마나 도발적입니까? 이 얼마나 모험적입니까? 모두 두려워 숨도 크게 못 쉬는 판인데 주님은 그 현장에 뛰어들어 헤롯의 주권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외칩니다. 이 얼마나 혁명적입니까. 살아 있는 정치권력에 대한 엄청난 도전이고 선전포고이자 도발입니다. 주님의 이런 모습이 얼마나 역동적입니까? 얼마나 대담하고 개혁적입니까?
주님의 그 다음 행보는 무엇입니까? 본문 요한복음 2장으로 갑니다. 13절 이하입니다. “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주님이 갈릴리에서 하나님의 주권 선포가 사회개혁이나 정치개혁이었다면 예루살렘에서의 두 번째 사역은 종교개혁입니다. 주님이 유대교의 본산인 예루살렘 성전을 거의 폭력적으로 정화하셨습니다. 이 사건은 복음서 네 권에 다 나옵니다. 그런데 공관복음에는 주님의 공생애 마지막 부분에 나옵니다. 고난주간에 나옵니다. 요한복음은 공생애 초기에 이 사건을 배치합니다. 아마 공생애 마지막 주간으로 전하는 공관복음 이야기가 더 역사적 사실에 가까울 것입니다. 그럼에도 요한복음은 이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공생애 시작 부분에 배치했습니다. 이 사건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난장판이 된 것을 보신 주님은 그 모든 것을 정화하십니다. 16절입니다.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마태복음은 이 부분을 ‘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21장 15절 이하를 보면 젊은이들은 열렬한 지지를 보낸 데 반해, 성전 주인을 자처하던 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은 이를 갈며 네가 무슨 자격으로 이런 짓을 행하느냐며 대들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당시 주님의 행보는 정상적이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난동이었습니다. 성전 운영 관리자가 따로 있는데 갑자기 시골 청년이 나타나 집기를 엎고, 돈을 쏟고, 짐승을 성전에서 다 쫒아내며 소리칩니다. ‘너희가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 그 사람들 편에서 보면 얼마나 어이없는 일입니까. 사실 성전 뜰에서 장사하는 것도 백성들이 제사하려면 제물이 필요하고, 먼 곳에서 온 사람에게는 가까운 곳에서 제물을 마련해야 했고, 또한 환전도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성전 안에 돈을 바꿔주고, 제물을 파는 것은 순례객이나 여행객들의 제사 편리를 위한 조치였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이런 모습에 노를 발하셨습니다. 성전 관리자들은 양이나 염소를 외국에서 마련해 오면 무조건 트집 잡아 제물 불가 판정을 내렸습니다. 그러니 예배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성전 뜰에서 파는 비싼 짐승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환전도 마찬가집니다. 외국돈으로는 제물도 살 수 없고, 성전세도 못 낸다는 규정을 만들어 유대돈으로 환전하도록 했습니다. 터무니없는 환율을 적용해 폭리를 취한 겁니다. 성전 내의 장삿꾼은 모두 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의 하수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소리를 지르고, 상을 엎고, 채찍을 휘두르며 정화하신 것입니다.
16세기 종교개혁가들의 분노도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당시 로마 가톨릭이 지금 교황청으로 사용하는 베드로 성당을 건축하면서 자금이 바닥나자 대대적으로 면죄부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교황 레오 10세가 대대적으로 이 작업을 주도했습니다. 면죄부가 무엇입니까? 부적입니다. 면죄부는 생전에 공덕을 축적하지 못하고 죽어서 연옥에 대기하는 부모나 조상에게 효험이 즉각적으로 미쳐 면죄부를 살 때 돈 통에 돈이 떨어지는 순간 연옥의 영혼이 천국으로 간다고 광고했습니다. 또한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해 면죄부를 사면 연옥을 거치지 않고 천국으로 직행한다고 홍보했습니다. 교회를 그야말로 장사하는 집, 강도의 소굴이 된 것입니다.
당시 루터는 수도사로 독일 비텐베르크 대학의 철학교수, 성서신학 교수로 있었습니다. 루터는 참 고민이 많았습니다. 성경을 깊이 연구해서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힘들고 괴로웠던 것입니다. 로마 가톨릭의 가르침과 자기가 연구하는 성경의 가르침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주 좌절하고 회의에 빠지곤 했습니다. 여러 가지 사건이 많지만 때마침 면죄부 사건이 터진 것입니다. 루터는 더는 견딜 수 없어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대학 교회 정문에 95개 조항의 가톨릭 가르침에 대한 반박문을 게시했습니다. 그게 중세 종교개혁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어떻습니까? 그 옛날 주님 시대에 성전에서 제물 팔고, 환전하던 일이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까? 중세 가톨릭이 면죄부를 팔며 대대적인 종교 장사를 벌였는데 지금 한국 교회 안에서 그런 일이 없습니까? 솔직히 한국 교회 치고 강도의 소굴 아닌 곳이 있을까요? 장사 안 하는 교회가 몇 교회나 될까요? 만약 주님이 한국 교회를 찾아오신다면 어떻게 하실까요? 저는 틀림없이 전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신 것과 똑같이 주님이 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신성한 하나님의 집을 너희가 시장판으로 만들었다. 만인이 기도하는 집인 교회를 너희가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며 주님이 채찍을 휘두르실 것 같습니다. 주님이 바로 개혁의 원조요 모델을 제시하신 사실을 기억합시다. 종교개혁기념주일을 맞아 다시 한 번 주님의 원초적인 개혁정신과 중세 종교개혁가들의 개혁 전통을 계승하기로 결단합시다. 우리도 이 시대 교회와 사회에서 진정한 개혁의 주체로 거듭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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