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의 망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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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에서 ICE(도시간고속철도)로 약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라이프찌히를 가는 동안 열차가 잠시 머무는 역은 오직 비텐베르크뿐입니다. 서울역에서 대전까지 KTX를 타고 가다 <천안아산역>에서 한 번 정차하고 가는 셈 치면 사정이 얼추 비슷합니다. 도시의 정식 이름 <루터슈타트 비텐베르크>(Lutherstadt Wittenberg)는 <루터의 도시 비텐베르크>라는 뜻입니다. 매년 6월 중순이면 시가 주관하는 <루터의 결혼 축제>(6월 13일이 루터의 결혼기념일)까지 벌이는 도시, 하기야 5백년 전이지만 당시로서도 루터의 결혼은 대단한 화제거리였을 겁니다. 파문당한 전직 수도사와 수녀원을 탈출한 전직 수녀의 결혼이었으니 왜 세간의 관심이 크지 않았겠습니까? 루터의 개혁 사상에 공감한 수녀 아홉 명이 <님프취 수도원>을 드나드는 생선마차의 빈 정어리 통에 숨어 극적으로 수녀원을 탈출한 후 루터의 중매로 거의 다 결혼에 성공 하지만 <카타리나 폰 보라>(Katharina von Bora) 만큼은 콕 찍어 루터가 아니면 결혼하지 않겠다며 공세를 펴 정작 자신은 결혼할 생각이 없었던 루터였지만 결국 카타리나와 혼인식을 올립니다. 스물 여섯이었던 카타리나와 무려 열여섯이나 더 많았던 마흔 둘의 루터가 늦깎이로 새 가정을 이룬 것입니다.
비텐베르크 중심가에는 큰 길이 하나 있습니다. 그 길 동쪽 끝에는 루터의 집이 있었고, 이웃에는 화가 루카스 크라나흐와 루터의 종교개혁 동지였던 필립 멜랑흐톤(Philipp Melanchthon)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멜랑흐톤의 집 가까운 곳에는 루터가 교수로 재직했던 옛 비텐베르크 대학 건물이 있고, 그 길 맞은 편 끝에는 루터가 5백년 전 10월 31일 <95개의 논제>(95 Theses)를 내걸었던 비텐베르크 대학 교회(Schlosskirche)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 중간에는 루터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루터의 동상은 손에 독일어 성경이 들려있는데 신약이 시작되는 오른쪽 면 맨 앞에는 옛 독일어 서체인 프락투어체로 이렇게 새겨져 있습니다. <Das Neue Testament verdeutscht von Doktor Martin Luther>(마르틴 루터 박사가 독일어로 옮긴 신약성서).
루터의 성경은 라틴어를 모르는 일반인들도 다 보고 읽을 수 있도록 일상의 쉬운 언어로 완역되어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금속활자 인쇄술에 의해 1534년 초판 3천부를 시작으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습니다. 마치 오늘날의 SNS처럼 당시로서는 인쇄술이라는 첨단 기술의 위력과 함께 전 유럽을 휩쓸었습니다. 그것은 이른바 미디어 혁명의 효시였습니다. 기술적 혁신을 바탕으로 지식과 사상이 대량으로 복제되고 신속히 보급되면서 루터의 개혁 정신과 사상이 더욱 맹렬히 타오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루터는 면죄부를 비롯 로마 가톨릭의 가르침에 항거하여 게시한 <95개 조항의 논제> 역시도 비텐베르크 대학교회의 문짝에 그냥 붙인 게 아니라 힘차게 망치질을 하여 박았습니다. 인쇄술 초기 유럽의 종이들은 우리의 한지처럼 얇거나 가볍지 않았습니다. 또 종이를 고정시킬 접착용 테이프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루터는 당시 95개조 조항이 빼곡하게 조판된 인쇄물을 교회 문짝에다 대고 힘껏 망치로 쳐서 고정시켰습니다. 독일어로는 이것을 <안슐라겐>(anschlagen)이라고 합니다. 종교개혁 5백 주년, 부디 이 땅에도 루터의 그 개혁의 망치 소리가 널리 울려 퍼져 교회와 사회가 새로워지는 제2의 종교 개혁이 촉발되길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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