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남한산성

지난 한글날 조조로 영화 <남한산성>을 보고, 그 길로 곧장 <남한산성>에 올라   4백 년 전 인조가 왕복 대신 푸른 수의를 입고 청나라 황제 칸에게 굴복하기 위해 송파나루 삼전도로 향했던 그 서문을 나와 지금은 잠실 석촌 호숫가에 있는 <삼전도비>까지 갔더랬습니다. 막 물들기 시작한 남한산성의 단풍은 수채화처럼 곱고, 서문 밖 산비탈에는 인동초며 쑥부쟁이, 방아풀 같은 가을 야생화가 지천인데 마음은 치욕의 동선을 따라 석촌호수까지 가는 내내 무겁고 착잡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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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은 일찍 와서 오래 머물렀다. 강들은 먼 하류까지 옥빛으로 얼어붙었고 언 강이 터지면서 골짜기가 울렸다. 그해 눈은 매말라서 바스락거렸다. ... 그해 바람은 빠르고 날카로웠다.> (김훈의 ‘남한산성’ 중에서) 



김훈의 원작이 워낙 유명해서 영화가 소설을 망치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영화 속 칼바람이 관람석까지 몰아쳐 몸을 움츠리게 했습니다. 무채색 배경에 온통 흰 눈, 앙상한 나무들, 어둡고 칙칙한 대신들의 의상까지 화사한 색감 하나 없는 스크린 속 영상들이 보는 이의 마음을 한없이 춥고 슬프고 아프고 시리게 했습니다. 영화는 허튼 꾀를 부리지 않습니다. 일체 신파도 없습니다. 딱 정공법으로 만들어져 건조하기까지 한데 누구도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끝까지 자신의 신념과 충정을 끌고 가는 팽팽한 설정이며 이병헌, 김윤석 두 배우의 묵직한 연기가 참혹한 영화를 차라리 품위 있게 만들었습니다. 감독 역시 누구의 편도 들지 않습니다. 그저 그 아픈 시대의 고뇌를 그대로 보여주며 관객들의 판단에 맡길 뿐입니다. 따라서 이 영화는 누구는 구국의 영웅이고 또 누구는 천하의 수구꼴통이라는 식의 이분법적 잣대를 들이대지 않습니다. 각 인물에 대한 주관적 판단이나 비판보다는 거의 <실리냐 명분이냐, 삶이냐 죽음이냐>의 가치관 충돌에 집중합니다. 두 신하가 피를 토하듯 뱉어내는 신념의 변이 옳고 그름을 떠나 가히 숭고하고 아름답게 느껴질 지경입니다. 분명 <남한산성>은 치욕이고 우리 역사의 견딜 수 없는 패배의 서사시입니다. 



그러나 최소한 최명길과 김상헌 두 충신의 소신과 철학은 결코 굴욕적이지 않았습니다. 영화는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눈물도 웃음도 흥행을 위한 타협도 보이지 않고 관객들의 감정을 짜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김훈의 소설 명문들이 그대로 각 캐릭터의 입에서 읊어지는 장면들은 근사했고 때로는 감탄스러웠습니다. 박해일이라는 배우의 인조 역도 민망할 만큼 훌륭했습니다. 


 순간의 치욕을 견디고서라도 나라와 백성을 지켜야 한다는 주화파 이조판서(오늘날의 인사혁신처장쯤 되는 관직으로 당시는 장관급) 최명길(이병헌)과 청에 맞서 싸워 끝까지 대의를 지켜야 한다는 척화파 예조판서(오늘날의 외교부 장관) 김상헌(김윤석), 그리고 그 사이에서 번민하는 <인조>(박해일)의 고뇌가 오늘 우리의 현실을 되새겨 보게 하는 육중한 주제의식으로 다가옵니다. 다시 말해 영화는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 앞에 역사는 결코 과거로만 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비록 4백 년 전 이야기지만 지금도 여전히 여러 강대국들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고 있는 우리의 고립된 운명이 그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화 <남한산성>이 주는 마지막 메시지는 그토록 혹독했던 겨울도 봄이 오면 물러가고 언 땅에 다시 노오란 민들레가 핀다는 것입니다.

엔딩 크레딧에 쓰인 음악도 좋았습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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