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08n] 자유인의 노래 (시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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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8n
시 23:1-6
자유인의 노래
(시 23:1-6, 개정) [1] [다윗의 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편 23편처럼 널리 알려진 말씀이 드뭅니다. 이 말씀은 여러 관점에서 묵상하고 사색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자유라는 관점에서 보겠습니다. 시편 23편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인의 노래입니다.
우선 욕망으로부터 자유입니다. 욕망이란 현대인의 가장 처절한 실존 문제입니다. 우리는 모두 욕망의 화신들입니다. 끊임없이 더 좋고, 화려하고, 빠른 것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애쓰고 노력하여 욕망을 충족하려 해도 절대 다 채워지지 않습니다. 하나를 해결하면 다른 욕망이 찾아오고, 욕망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욕망은 언제나 나보다 앞서갑니다. 20평대에 살다 보면 30평대가 좋아 보이고, 다시 40평대가 눈에 들어오는 게 인간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욕망의 포로로 자유를 상실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본문이 제시하는 해법은 무엇입니까?
시편 23편은 욕망의 문제를 이렇게 해결합니다. 1절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기에 열쇠가 있습니다. 우리 욕망은 다양하고, 그 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 가운데 가장 원초적인 욕망은 오직 하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면 내게는 더는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 다윗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내 모든 욕망의 근원이시기에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충족되면 다른 욕망이 더는 욕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길 잃은 아이에게 장남감이나 먹을 것을 사준다고 한들 그것이 위로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한순간은 그 아이를 달랠 수 있지만 그 아이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근본적으로는 엄마를 찾아주는 겁니다. 아이의 모든 욕구는 엄마만 찾으면 다 해결됩니다. 그러나 그 근원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한, 어떤 조치나 처방도 그 아이의 욕망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같은 원리입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되셔야 합니다. 이 대목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인의 노래입니다. 하나님만 해결되면, 하나님에 관한 욕구가 충족되면 내게 더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모든 문제와 필요의 영원한 해결사인 주님이 내 목자이신데 내게 무엇이 부족하겠습니까? 여러분, 진정으로 온갖 욕망으로부터 자유하고 싶다면 다윗처럼 여호와가 내 목자이심을 고백합시다. 그러면 우리가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방황으로 부터의 자유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내가 어디서 왔을까? 어디로 가고 있을까?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문제로 고민합니다. 이러한 문제들 또한 우리의 심각한 실존적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명쾌한 답을 얻지 못하면 자칫 삶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본문 2-3절입니다. “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그가>라는 단어가 계속 나옵니다. 그가 모든 것을 하시기에 나는 더는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내 인생의 진정한 주권자이시기에 그분이 내 삶을 챙기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어떻게 살까? 어디로 갈까? 고민을 많이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양이 어떻게 내가 오늘 어디로 가서 풀을 뜯고, 어디로 가서 물 마시고, 어디로 가서 쉬겠다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목자의 몫입니다. 목자만 충실히 따라가면 절대 양은 유리할 일이 없습니다. 목자만 충실히 따라가면 반드시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가 나옵니다. 양이 방황하는 이유는 따라갈 목자가 없거나, 따라가는 도중에 낙오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신앙인이 방황하는 이유는 목자를 놓쳤기 때문입니다. 길 잃은 양이 된 겁니다. 주님은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다윗처럼 내 인생을 전적으로 주님이 연출하시도록 목자 되신 주님께 맡깁시다. 주님이 인도하시는대로 착실히 주님을 따라갑시다. 그래야 내 앞에 푸른 초장이 펼쳐지고 쉴만한 물가가 나타납니다.
다음은 두려움으로부터 자유입니다. 현대인 가운데 두려움의 노예가 아닌 사람은 없습니다. 다른 것 다 그만 두고라도 두려움 하나만으로도 현대인은 자유인으로 살기 어렵습니다. 그만큼 두려움이 많기 때문입니다.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 모르는 음침한 사망의 그림자 앞에서 우리는 하루하루를 떨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각종 질병, 부도, 파산, 실업, 더구나 지금은 핵전쟁의 위협을 피부로 느낍니다. 그러나 4절입니다. “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다윗은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녀도 결코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요? 주님이 지팡이와 막대기로 그를 인도하고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수들에게 당하기는커녕 주님이 나로 하여금 통쾌한 승리를 맛보게 하신다고 합니다. 5절입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 얼마나 멋집니까? 원수의 목전에서 기가 막힌 잔치상을 받게 하시고, 승리의 축배를 들게 하신다고 합니다. 이러한 완벽한 승리를 보장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 사실을 확신하고 믿기에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한 진정한 자유인이라는 고백이자 외침입니다.
죽음으로부터 자유입니다. 제가 독일에 간 것이 1979년 10월 1일입니다. 그 이듬해 1980년 3월에 프랑스 파리에 있는 부르셰 병원에 한 세기를 풍미한 유명한 지성인이 입원했습니다. 한달간 그 병원에 입원해 온갖 추한 모습을 보이며 투병생활을 했습니다. 하여간 독일 방송과 신문은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거의 발광하는 그를 한 달 내내 실시간으로 방송을 내보냈습니다. 그 사람이 유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바로 장 폴 사르트르입니다. 살아 있는 철학이라 불리던 사람입니다. 그는 특히 젊은이들의 우상이었습니다. 그는 입원한 지 한 달 동안 살고 싶다고 발악하다가 4월 16일에 세상을 떠납니다. 그가 죽은 후 한동안 유럽에서 말이 많았습니다. 프랑스의 어느 주교가 독일 신문에 쓴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사르트르가 죽음 앞에서 비명을 지른 것은 그에게 돌아갈 고향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사르트르는 지성인의 대표주자였습니다. 오늘 본문 6절을 보십시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이것은 내 인생 여정이 끝나는 날 주께서 나를 위해 예비하신 영원한 집이 있다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나는 결코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진술입니다. 내가 더는 죽음 앞에서 비굴할 일이 없다는 겁니다. 사르트르의 마지막 장면을 보셨습니까? 침대를 붙잡고 안 가겠다고, 나는 죽을 수 없다고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보셨습니까? 이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자유하지 못하면 우리가 결코 평안할 수 없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한다는 고백이 여러분의 확신이 되고, 죽음으로부터 자유하는 복 있는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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