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08m] 네게 무엇을 줄꼬? (왕상 3: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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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8m
왕상 3:4-13
네게 무엇을 줄꼬?
(왕상 3:4-13, 개정) [4]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5]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6] 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7]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8]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10]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11]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12]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13]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영화 남한산성 보셨습니까? 저는 아직 못 봤습니다만, 몇 년 전 김훈의 원작소설 <남한산성>은 읽었습니다. 인조는 20대에 등극했습니다. 인조반정을 통해 삼촌 광해군을 몰아낸 것입니다. 그는 조선 왕들 가운데 가장 굴욕적인 왕으로 기록됩니다. 본문의 주인공 솔로몬도 약관 20세에 왕이 됩니다. 그는 인조와는 대조적으로 역대 이스라엘 왕 가운데 가장 영예로운 왕이 됩니다. 지금도 솔로몬은 인류 왕정사에서 가장 탁월한 리더십으로 흠모를 받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누구입니까? 주전 1050년에 왕이 된 사울이 이스라엘 초대 왕입니다. 제2대는 다윗, 3대는 솔로몬입니다. 그는 주전 970년에 왕이 됩니다. 그는 다윗의 10번 째 아들입니다. 다윗은 아들이 13에 딸이 하나인데, 그 가운데 솔로몬은 10번 째 아들입니다. 서열이 한참 아래입니다. 솔로몬은 정실의 아들이 아니라 불륜으로 맺어진 밧세바에게서 태어난 서자입니다. 그러니까 솔로몬은 법적 왕위 계승자가 아님에도 하나님이 그를 지명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파격적인 권력 이양을 단행합니다. 이때가 주전 970년입니다.
당시 솔로몬의 나이는 겨우 20세였습니다. 그랬으니 그가 세상 물정이나 왕의 통치철학을 알았겠습니까? 그러니 얼마나 그가 외롭고 두려웠을까요? 본문 7절입니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이게 당시 솔로몬의 심경을 가장 솔직하게 표현한 고백입니다. 이렇게 아직 제대로 출입할 줄도 모르는 작은 아이 솔로몬이 왕위에 올라 무엇을 했습니까?
4절 하반절입니다.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왕이 된 후 솔로몬은 하나님께 천 번의 번제를 드립니다. 유대인들은 하루 세 번씩 기도합니다. 제3,6, 9시입니다. 우리 시간으로는 오전 9시, 정오, 오후 3시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보통은 자기 집 옥상에 올라가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솔로몬도 1년에 걸쳐 일천 번의 번제를 드린 것 같습니다. 그가 드린 일천 번제를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솔로몬은 왕의 직무보다 일천 번제를 우선시했습니다. 그가 왕위에 올라 제일 먼저 한 게 이것입니다. 여러분, 그게 무슨 일이든 먼저 예배로 시작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홍수가 끝나고 1년 만에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가장 먼저 한 것도 예배입니다. 평생 유랑하며 산 아브라함도 거처를 옮길 때마다 가장 먼저 한 일이 번제입니다. 예배가 우리 삶의 최우선입니다. 예배가 우리 삶의 0순위입니다. 왕 노릇도 돈 버는 일도 공부도 연애도 전도도 헌신도 결혼식 가고 장례식 가는 일도 모두 예배 다음입니다. 우리가 주일 아침마다 하나님께 예배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주일은 한 주간의 첫날입니다. 주일예배는 그 첫 날 아침에 예배하는 행위입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나의 일상 가운데서 예배가 제1순위라는 사실을 하나님께 실천적으로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이것이 주일 아침예배입니다. 주일 아침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예배가 우리 삶의 0순위임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예배 시간에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은 미안하지만 저는 아직 내 삶에서 예배가 1순위가 아니라는 고백에 다름 아닙니다. 여러분, 한 주간의 첫날, 첫날의 첫 기간을 예배로 시작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그 사람의 한 주간을 책임지십니다. 그 사람에게 한 주간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예배를 내 인생의 제1순위로 삼으면 하나님도 그런 사람의 기도는 우선적으로 들으십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예배를 자기 삶의 1순위로 여기는 사람의 기도를 하나님이 후순위로 응답하시겠습니까? 본문 4절 하반절 이하입니다.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5]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여러분, 예배가 먼저입니다. 이 세상에서 왕 노릇보다 더 중한 게 있을까요? 그럼에도 솔로몬은 하나님 예배가 왕 노릇보다 우선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게 그는 온몸으로 실천한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일천 번제를 어디서 드렸느냐면, 기브온에서 했습니다. 예루살렘이 아닙니다. 솔로몬이 최초로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했는데, 당시는 막 왕이 된 시점이라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기 전입니다. 당시로서는 가장 큰 제단이 기브온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기브온에 가서 일천 번제를 드린 겁니다. 기브온은 예루살렘에서 서북쪽으로 10km 거리입니다. 아무리 마차라고 해도 하루에 세 번씩 10km 거리를 왕복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천 번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면전에서 행한 시위였습니다. 어떤 시위입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내 삶의 1순위라는 것을 온몸으로 천명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감동하십니다. 여러분의 삶에서도 예배가 언제나 최우선으로 고백되고 실천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네게 무엇을 줄꼬? 하시기를 바랍니다.
솔로몬의 일천 번제는 제물 이전에 자신을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예배는 보는 게 아닙니다. 예배는 바치는 행위입니다. 굿은 보는 게 맞습니다. 그래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게 맞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그런 버릇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 보러 교회 가는 겁니다. 목사가 예배드리고, 다른 사람은 예배를 보는 겁니다. 예배는 쇼나 공연이 아닙니다. 루터는 <만인사제설>을 가르쳤습니다. 성도 한 명 한 명이 다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구약 때는 대제사장만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을 뵈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예배의 진정한 주체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예배 구경꾼으로 남아 있습니다. 예배의 본질은 우리 각자가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천 번이라 드렸다는 번제는 어떤 제사입니까?
레위기 1장에 그 설명이 자세하게 나옵니다. 제물을 몽땅 태워 바치는 제사가 번제입니다.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렸다는 것은 제물 천 마리를 다 제단 숯불에 태워 하나님께 바쳤다는 의미입니다. 화목제는 부분적으로만 태우고 나머지 고기는 제사하는 사람끼리 나눠 먹으며 화목을 도모합니다. 속건제는 제물의 내장, 기름만 태우고 고기는 제사장이 식량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번제는 한 점도 남김없이 제단에서 다 태워야 합니다, 그 향연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번제입니다. 그래서 번제는 완전한 헌신, 온전한 희생을 상징합니다. 어떤 제사든 그 제사의 제물은 제사를 드리는 사람을 대신합니다. 내 대신 짐승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물을 대속 제물이라고 부릅니다. 원래는 나를 바쳐야 하는데, 실제 그렇게는 할 수 없으니 내 대신 이 제물을 받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일천 번이나 하나님께 제물을 태워 바치면서 헌신을 다짐했으니 하나님이 감동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전무후무한 복과 은혜를 베푸십니다. 제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물 이전에 나를 바치는 것입니다. 시편 40편 6절 이하입니다. “[6]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7]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하나님은 제사 이전에 나를 원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은 너희 몸을 하나님께 산 제사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헌금도 그렇습니다. 헌금 역시 물질 이전에 우리 자신을 먼저 바쳐야 합니다. 헌금할 때 물질만이 아니라 거기에 내 자신을 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짐승의 피나 고기에 굶주린 분이 아니고, 돈이 궁해서 헌금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나를 원하십니다. 제물로 대신 바쳐지는 나를 받으시기 위해서 번제물을 요구하십니다. 물질로 고백되고 표현되는 내 사랑과 믿음을 받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헌금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짐승의 고기나 피, 돈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나를 몽땅 태워 바치는 번제처럼 내 존재 전부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자기는 바치지 않으면서 짐승의 고기만 받으라고 하는 것은 제물이 아닙니다. 헌금만 바치는 것은 진정한 헌금이 아닙니다. 그 헌금에 나를 담아야 합니다. 참 된 예배를 회복합시다. 솔로몬도 천 번이나 자신을 불태워 바쳤습니다.
솔로몬이 누린 영화와 복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때 솔로몬은 이렇게 말합니다. 9절입니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이렇게 답하십니다. 12절입니다.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솔로몬이 구하지도 않은 부와 영화까지도 주십니다. 13절입니다.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그래서 솔로몬이 인류 역사상 가장 지혜롭고, 부귀영화를 누린 왕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모두 일천 번제로 받은 복입니다. 여러분의 가정, 자녀가 다 복 되고 지혜롭기를 원하십니까? 무엇보다 예배를 1순위로 생각하십시오. 항상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께 헌상하십시오. 그것이 참 예배이고 참 제물임을 확신합시다. 여러분의 삶, 자녀들의 생애가 그야말로 솔로몬처럼 주님의 은혜로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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