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생존 배낭


추석 연휴 직전 실시한 한국갤럽조사에 의하면 지금 우리 국민의 37%가 전쟁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전쟁을 바라는 국민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단 1%의 가능성이라도 절대 놓치지 말고 대비해야 하는 게 바로 전쟁입니다. 그럼에도 지금 트럼프와 김정은이 벌이는 치킨 게임을 그냥 지켜만 볼 수밖에 없는 이 불안감, 세계인들은 미국이 베트남과 이라크에 이어 북한과 또 한 차례 전쟁을 벌일 것이라며 긴박한 위기감을 금치 못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 정부와 국민들은 놀랍도록 의연하고 태평해서 되레 신기하게 여기는 이 역설적인 상황, 이는 그동안 수없이 겪어온 북한의 위협에 내성이 생긴 탓이기도 하고 또 한반도에서 태어난 숙명에 길들여진 체념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은밀하게 <생존 배낭>을 꾸리기 시작했습니다. 기업들도 혹 앞장서서 사회불안을 조장한다는 비난을 들을까봐 쉬쉬하며 대피 훈련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고, 급기야는 이번 추석에 햄세트, 굴비세트, 갈비세트 대신 생존 배낭을 선물한 회사까지 나왔습니다. 한 여성 연예인이 유튜브에 자신의 생존 배낭을 소개했다가 전쟁을 부추긴다는 댓글이 쏟아져 곤혹을 치렀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저는 연휴기간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추석 선물로 생존 배낭이 인기>라는 TV 자막을 보기도 했습니다. 포천의 한 교회는 아예 전교인에게 생존 배낭을 나눠줬다고 합니다. <설마>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혹시나>하는 쪽으로 그 정서가 바뀌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런 상황들을 애써 외면하는 게 옳을까요? <어차피 터지면 다 죽어!>하며 체념하는 게 정답일까요? 물론 내일이라도 당장 핵전쟁이 날듯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또 손을 덜덜 떨며 사재기를 하거나 삶의 방식을 극단적으로 바꿀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차분한 재난 대비자의 자세는 꼭 필요하지 않을까요? 현실은 늘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바람이나 당위보다 훨씬 더 비정하고 잔혹하니까요. 우리가 세월호 사건을 통해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 뭡니까? <모든 걸 지켜주고 꼭 필요할 때 뭔가를 해줄 줄 알았던 정부가 저럴 수도 있구나!>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나의 안전과 생존은 정부가 아니라 내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현재 이 지구촌에서 핵대피 시설을 가장 완벽하게 갖춘 나라는 스위스라고 합니다. 그들은 전국에 30만개의 대피소를 마련해 전 국민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확보했고, 대피소 내에 대형 식당, 화장실까지도 완비했으며, 최대 2만 명까지 수용가능한 대피소도 알프스 산맥 지하 여러 곳에 있다고 합니다. 스웨덴은 전 국민의 80% 수용이 가능하고, 핀란드는 70%, 독일은 전국 어디서든 반경 100m 내에 주민 대피시설을 완비해 놓고 있습니다. 만약 지금이라도 전쟁이 발발한다면 우리는 과연 대피할 데가 있을까요? 6.25와 같은 재래식 전쟁 때는 전방과 후방이 있었기에 피난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미사일이 한반도 전역을 사정거리에 두고 있기 때문에 전후방이 따로 없고, 피난이 거의 의미가 없습니다. 정부의 <국민재난안전포털>(www.safekorea.go.kr)은 <생존 배낭은 최소한 72시간을 버틸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적시하면서 꼭 챙겨야 할 물품 목록을 자세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반도의 긴장은 미군 폭격기 <죽음의 백조>가 NLL을 넘어 북한 해안선을 따라 비행하고 북이 요격을 공언하는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왔습니다. 전문가들은 금주 10일~18일까지가 최대 고비라고 합니다. 9일은 북한의 1차 핵실험 11주년 기념일, 10일은 노동당 창당 72주년 기념일입니다. 최근 주한 미국인들에게 유사시 대비 요령과 헬기를 탈 수 있는 구체적인 정보까지 이메일을 통해 발신됐습니다. 우리는 핵전쟁에 대해 막연한 공포와 불안을 가지기보다 어느 날 그게 우리의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가정 하에 보다 이성적이고도 실용적인 대비를 할 수 있어야 현명할 것입니다. 


참, <국민재난안전포털>은 생존 배낭은 반드시 가족 수 만큼 준비하라고 합니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시 9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