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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20171001n] 기쁨의 본질 (요 16: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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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20171001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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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요 16:20-24</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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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기쁨의 본질</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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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요 16:20-24, 개정)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23]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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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십자가를 앞두신 주님이 제자들을 위로하신 말씀인데, 주제가 기쁨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슬프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종교일 뿐 아니라 부활의 승리의 종교입니다. 슬프지만 지금 이 슬픔이 반드시 기쁨으로 마무리 하고, 기쁘지만 그 기쁨이 슬픔을 통해 오는 역설의 신앙이 기독교입니다. 따라서 이 슬픔과 기쁨, 고통과 영광의 함수관계를 잘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의 본질, 정수를 이해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조건이 됩니다. 기쁨에 관한 주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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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우선 근심이 기쁨이 된다고 하십니다. 20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세상과 우리는 언제나 정반대입니다. 세상과 우리는 서로 대척점에 서있습니다. 우리가 애통해 하면 세상은 웃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우리의 아픔과 고통과 근심이 끝까지 아픔과 슬픔과 근심으로 남지 않고 마침내 기쁨으로 결론이 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은혜와 복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믿는 자가 누리는 주님의 놀라운 혜택입니다. 왜 그렇습니까?</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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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21절입니다.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신앙인의 걱정, 근심은 다 산모의 그것과 같습니다. 사실 산모들이 임신 기간도 힘들고 해산 일이 가까워지면 두렵기도 합니다. 그러나 막상 출산하고 나면 그동안의 고통과 근심이 다 사라지고 오직 기쁨과 보람과 행복만 가슴에 가득 찹니다. 하나님 자녀들의 고난과 슬픔, 근심도 다 그와 같습니다. 지금의 아픔과 고뇌, 불안과 두려움이 산모처럼 기쁨과 행복을 위한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현실적 소망입니다. 신앙인에게는 기대와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반대입니다. 우리가 울 때 세상은 행복해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결론은 애통과 불행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근심하면서 세상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지막에 웃는 사람, 마지막에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 승자요, 행복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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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구도 빼앗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22절입니다.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이것은 주님이 주시는 기쁨의 특징입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얻는 기쁨의 특징입니다. 그만큼 그 기쁨이 참되 기쁨이고 안전하고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누구십니까? 주님보다 더 크고 강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 주님이 주신 기쁨인데, 누가 그것을 유린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이 주는 기쁨은 이와 같지 않습니다. 그것은 얄팍하고 감각적이고 선정적이고 피상적입니다. 그 순간에는 좋지만 그 후에는 더 허무하고 고통스럽습니다. 쾌락, 술, 마약 같은 것들이 다 그런 것입니다. 그 순간에는 정말 좋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나락을 떨어뜨립니다. 이것이 세상이 주는 즐거움의 본질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참 기쁨을 누구도 해치지 못합니다. 그런 기쁨으로 충만한 사람이야말로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주님이 약속하신 기쁨으로 충만하여 늘 감사하며 생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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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24절에서 주님은 오늘의 주제를 마치십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주님은 너희가 구하면 너희 기쁨이 충만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제 너희는 나의 이름으로 구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무슨 낙으로 살아가고 계십니까? 갈수록 사람들은 낙이 없다고 합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허무에 빠지고 우울증에 시달리고 죽음에까지 이르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하루에 37-8명씩 죽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신령한 기쁨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주님의 기쁨으로 충만하면 우리 삶의 하루하루가 보람과 감사로 충만할 것입니다. 부디 주님이 주신 이런 참 기쁨으로 올 추석 연휴도 더욱 보람 있고 기쁨으로 충만한 나날이 되길 빕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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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 class="Apple-converted-space"><br></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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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 class="Apple-converted-space"><br></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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