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01m] 기적의 본질 (행 1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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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1m
행 12:1-12
기적의 본질
(행 12:1-12, 개정) [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6]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7]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8]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대 [9]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10]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저는 기적을 믿습니다. 기독교 신앙에는 기적이 있습니다. 기적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상식을 초월하고 자연의 법칙을 벗어난 사건이나 현상을 가리킵니다. 요술이나 마술은 속임수이지 기적이라 하지 않습니다. 귀신도 신기한 일을 행합니다. 귀신의 그런 행위는 모두 기만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사람을 해치려고 쇼를 벌이는 겁니다. 마귀도 영적 존재이기에 우리는 못 하지만 마귀는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들도 예언하고 점도 칩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로 사람을 꾀어 실족하도록 하고, 파멸에 이르게 하고, 자기 수하에 영원히 묶어두려는 수작입니다. 기적이란 그 동기부터 과정과 결과까지 모두 아름다워야 합니다. 우리에게 도움이 되고, 우리에게 덕이 되고, 우리에게 복이 되어야 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복이 될 때만 기적을 베푸십니다. 준비 안 된 사람에게는 기적이 저주가 될 수도 있습니다. 졸지에 돈벼락 맞으면 대부분 망하고 맙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적을 남발하시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고, 복이 될 때만, 우리에게 기적을 베푸십니다. 본문이 말씀하는 기적을 살펴보겠습니다.
헤롯왕이 유대인들의 지지와 환심을 사려고 당시 유대교가 이단으로 규정하여 박해하던 기독교 지도자 중 야고보를 체포해 전격 처형합니다. 야고보는 요한의 형제입니다. 그는 주님의 측근 가운데 측근입니다. 그래서 헤롯이 그를 체포해 참수합니다. 야고보는 12제자 가운데 첫 순교자가 됩니다. 교회사적으로는 스데반 집사가 1호 순교자입니다. 야고보 사도가 전격 참수형에 처해지자 당초 헤롯왕이 기대한 이상으로 유대인이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내친 김에 베드로까지 체포합니다. 그런데 그때가 유대인들의 최대 절기인 무교절, 다시 말해 유월절 기간이었습니다. 7일 동안 계속되는 그 기간 동안을 피하려고 일단 감옥에 가둡니다. 그 감옥으로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 베드로를 구출하시는 사건이 오늘 본문입니다.
7절입니다.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얼마나 놀랍고 신비한 사건입니까? 이것은 환상도 꿈도 아니라 현실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극적 사건이 언제 일어났습니까? 6절입니다.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처형 전날 밤입니다. 밤이 지나고 날이 새면 형장으로 끌려 나가 참수를 당하는데 그 마지막 밤에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이처럼 언제나 마지막 순간에 일어납니다. 죽느냐 사느냐하는 절박한 최후의 순간에 일어납니다. 그래야만 기적의 효과가 극대화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기적의 타이밍은 늘 최후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마지막 순간까지 참고 견디다가 우리가 인간적 수단을 다 포기하고 하나님만을 바랄 때 비상 개입을 하십니다. 홍해의 기적을 보십시오. 정말 그런 위기도 없었습니다. 뒤에서는 성난 바로의 전차 군단이 추격해오며 거리를 좁혀 옵니다. 좌우는 온통 가파른 바위산이고, 앞은 검푸른 홍해입니다. 얼마나 완벽합니까? 그야말로 진퇴양난이고 사면초가입니다. 절체절명의 독 안에 든 쥐입니다. 그런 최후의 순간에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이 발생합니다. 얼마나 극적입니까? 여리고 함락도 보십시오. 여리고성은 그야말로 난공불낙의 천연요새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로서는 반드시 그 성을 함락하고 가나안 정복의 교두보를 마련해야 할 절박한 상황입니다. 군대도 없는 오합지졸 이스라엘이 어떻게 그 성을 함락했을까요?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작전대로 날마다 그 성을 한 바퀴씩 돌았고, 이레째는 일곱 바퀴를 돕니다. 이레 째 여섯 바퀴를 돌 때까지도 멀쩡하던 성벽이 일곱 바퀴를 돌고 함성을 지르자 굉음을 내며 무너진 것입니다. 기적은 마지막 순간에 일어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던 장면도 보십시오. 정말 이삭을 잡아 바치려고 칼로 아들의 목을 따려는 순간 하나님이 다급히 아브라함을 제지하십니다. 하나님이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 했습니다.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적은 최후의 순간에 극적으로 발생합니다. 더는 피할 데도, 대안도 없을 때 기적은 일어납니다. 우리에게는 왜 기적이 없을까요? 우리는 언제나 끝까지 가보지 못하고 중간에 다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미리 항복을 선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가지 못하기에 기적도 못 만납니다. 미러클 존(zone of miracle)은 최후입니다. 기적은 최후까지 가야 합니다.
기적은 모든 것이 불가능할 때 발생합니다. 베드로 갇혀 있던 감옥의 경비상황을 보십시오. 4절입니다.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4인 1조로 4개조 군인들, 곧 16명이 베드로를 지킵니다. 그런데 베드로를 바깥에서만 지킨 게 아니라 두 군인을 감방에 넣어 두 군인과 베드로를 묶어 놓았습니다. 절대 탈옥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다음 날 아침이면 처형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그런 때에 기적이 발생한 것입니다. 완벽한 불가능이 하나님께는 기적을 베풀 최적의 조건이자 환경입니다. 인간적으로는 최악의 상황이 하나님으로서는 최적의 여건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우리의 모든 가능성과 길이 막힌 그곳에서 발생합니다. 우리 사정이 아무리 절망적이어도 절대 포기하거나 희망을 접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적은 최악의 상황에서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꼼짝할 수 없었던 몸이었는데, 졸지에 하나님의 사자 천사가 나타나 은혜를 베풀자 그 순간부터 모든 결박, 옥문, 군사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립니다. 베드로를 채우고 있던 것들이 다 풀어지고 옥문이 열리고, 군사들은 잠에 빠지고, 성문이 열려 어떤 장애도 받지 않고 시내까지 나옵니다. 베드로도 꿈인가 생시인가 했습니다. 천사가 떠나자 베드로도 비로소 실제임을 깨닫습니다. 그동안은 모든 게 불가능하고, 절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상황들이 눈 녹듯 사라집니다. 주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던 대목을 기억하십시오. 죽은 지 나흘이 되어 부패가 상당히 진행되어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부패가 진행되던 나사로가 무덤에서 걸어 나올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거기서 기적을 베푸십니다. 나사로는 베를 전신에 동인 채 그 무덤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어도 우리가 절대 포기하거나 체념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죽으면 다 끝난다고 생각하지 죽은 지 나흘이 지난 시신도 주님이 기적을 베푸시면 저 무덤에서 걸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알량한 우리의 상식, 이성 때문입니다. 기적은 우리의 이성과 상식을 비웃는 사건입니다. 우리가 믿지 못하니까 기적이 없습니다. 세상이 부정해도 나는 믿는다고 하면 그런 사람에게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조바심을 내고, 기적을 믿지 못하기에 기적이 없는 이유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기적을 베푸시는 분임을 믿읍시다.
기적은 갑자기 일어납니다. 7절 상반절입니다.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홀연>이라는 말씀을 주목하십시오. 하나님의 기적은 예고, 전조 없이 발생합니다. 자연현상은 다 전조가 있습니다. 태풍이 오거나 지진이 발생하거나 화산이 폭발해도 전조현상이 있습니다. 고대 로마의 폼페이시를 보십시오. 79년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해 도시가 완전히 매몰됩니다. 이미 63년부터 대규모 화산폭발의 징후가 이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대피하지 않다가 도시 전체가 매몰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적은 예고나 조짐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홀연히 발생합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갑자기 일어나기에 경이롭습니다. 여리고성 함락도 보십시오. 마지막 날 일곱 바퀴를 돌아야 하는데, 여섯 바퀴를 돌 때까지도 아무 징후가 없었습니다. 일곱 바퀴를 돌고 나니까 철옹성 여리고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합니다. 순식간에 사태가 반전된 겁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창 한 번 안 쓰고 여리고를 접수한 것입니다. 조짐이 없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원래 하나님의 기적은 졸지에 임하는 것입니다. 사태를 극적으로 반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극대화하는 것이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절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철저히 기도의 응답입니다. 성도들의 기도에 응답하사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기적입니다. 5절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12절도 보십시오.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베드로는 옥에 갇혀서도 군인들 틈에서 자고 있었는데, 성도들은 비밀리에 모여 베드로의 석방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성도의 기도가 하나님의 천사를 부른 겁니다. 성경에 나오는 기적은 언제나 기도 응답의 결과입니다. 성도들이 마리아의 집에 모여 밤을 새며 몇날 며칠 기도하자 주님이 기적을 베푸십니다. 주님이 오병이어 기적을 베푸실 때도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셨습니다. 나사로를 살릴 때도 울며 기도하셨습니다. 엘리야가 3년 반 동안 내리지 않던 비를 바랄 때도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기적의 통로입니다. 기도 없는 기적은 없습니다. 기도하면 우리도 마지막 순간에 홀연히 기적을 만납니다. 이것이 기적의 공식이고 기적의 정석이고 기적의 본질입니다.
여러분이 겪고 있는 최악의 어려움, 절망, 고통이 하나님의 기적으로 모두 해소되고 수습되는 극적 반전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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