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크게 질투하노라 (슥 8:1-8)

크게 질투하노라

슥 8:1-8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그를 위하여 크게 분노함으로 질투하노라>(2절).

<질투>란 히브리어로 <카나>입니다. 그리 어감이 좋은 단어가 아닙니다. 

남을 시기하거나 남녀간의 사랑 때문에 등장하는 다소 부정적인 어휘임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거침없이 <내가 크게 질투하노라, 크게 분노함으로 질투하노라>고 하십니다. 출애굽기에서는 자신을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14:14), <엘 카나>라고 하셨습니다.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실 때도 자신을 일컬어 <질투하는 하나님>(출 20:5)이라고 명명하셨습니다. 모세가 얼마나 민망했을까요? 


하나님의 질투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극단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말에 다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듯 부정적인 어감의 단어를 동원할 만큼 역설적이고 지독하고 철저합니다. 질투하지 않는 사랑은 담백한 사랑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가 우상에게 곁눈질하고 추파를 던지고 절하고 따라가는데도 질투하지 않고 진노하지 않는다면 그건 쿨한 게 아니라 사랑하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체면 불구하시고 질투하십니다. 

오죽하면 하나님 스스로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이시라>고 하셨겠습니까? 

<질투>나 <시기> 같은 우아하지 않은 정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기꺼이 그런 감정들을 자신의 본성으로 차용하시며 당당히 <나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밝히셨습니다. 


감사합시다. 황송해 합시다. 

감격하며 그 무서운 사랑에 응답합시다. 

<질투>야말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가장 원색적인 민낯입니다. 

질투하는 자만이 자신의 남편, 혹은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적용>

-<질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당신의 소견을 적어보십시오.

-<질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구약 성경의 말씀을 찾아 적어보십시오.

-<질투>와 <사랑>의 관계를 설명해 보십시오.


<기도>

주님 다시 한 번 하나님 사랑의 철저하심과 그 깊은 진정성을 깨달으며 무한한 감사와 영광을 바칩니다. 

그렇습니다. 

결코 아름다운 언어가 아님에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은 자신을 <질투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부디 저희로 하여금 하나님 사랑의 이 역설을 제대로 체험하며 그 사랑에 더욱 바르게 응답하고 결단할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