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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금식이냐 (슥 7:1-7)

누구를 위한 금식이냐

슥 7:1-7

 

이스라엘에게서의 <금식>은 중요한 연례행사였습니다.

<... 내가 여러 해 동안 행한대로 오월 중에 울며 근신하리이까>(3절).

그런데 하나님은 <너희가 칠십 년 동안 ... 그 금식을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5절)고 되물으십니다. <너희가 먹고 마실 때에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먹고 너희를 위하여 마시는 것이 아니냐>(6절)고 하십니다.

신앙은 언제나 형식과 삶이 같이 가야 합니다. 금식이나 애통은 잘못된 것이 아니고 신앙생활의 소중한 요소들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흔히 본질보다는 형식이나 의식에 빠져 살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보다는 경건 자체에 집착해 위선이나 외식으로 흐르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스바냐 시대 이스라엘의 경건이 바로 그랬습니다. 금식이나 애통하는 모양은 있었으나 그 생명이나 영혼이나 능력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게 정말 나를 위한 것이었느냐며 반복해서 물으신 겁니다. 경건의 의식이나 형식은 반드시 말씀을 규범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그 목적으로 삼아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그 동기와 의도가 진실함을 드러내어 하나님께 인정받고자 힘써야 합니다. 만약 그런 것들이 다 결여된 채로 행해진다면 그 금식과 의식은 한갓 하나님을 희롱하는 짓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세벨처럼 금식을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한 포장으로 사용하거나 바리새인들처럼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 하거나 아합처럼 마음은 전혀 아니면서 겉으로만 낮아진 체하기 위해 하는 금식이라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금식이 아닙니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남을 치는도다 ... 그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 여호와께 열랍될 날이라 하겠느냐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4-7).

 

<적용>

-당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금식을 정의해 보십시오.

-이사야 58:8-9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한 자들에게 약속하신 축복입니다. 적어 보십시오.

-지금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지나치게 형식화되고 의식화된 것을 지적한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기도>

주님, 일찍이 주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을 책망하시며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도다>고 하셨고, <너희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하시며 그들의 의식과 위선을 고발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형식보다도 의식보다도 겉모습보다도 내용이 있고 내실이 있고 속이 깨끗한 저희들이 되게 하사 주님으로부터 <겉은 깨끗하고 옳게 보이되 속은 외식과 불법으로 가득하다>는 책망을 듣지 않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