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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7m] 큰 잔치 (눅 14:16-24)

20170917m 

눅 14:16-24

큰 잔치

 

(눅 14:16-24, 개정) [16]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17]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18]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19]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20]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22] 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본문은 어느 잔치 자리에서 말씀하신 잔치 비유입니다. 어떤 사람이 잔치를 앞두고 사람들에게 초청장을 돌립니다. 마태복음 22장에도 이 비유가 나오는데, 거기에는 임금이 자기 아들의 혼인을 위해 베푸는 잔치로 나옵니다. 임금이 개최한 아들의 혼인잔치였으니 얼마나 큰 잔치였겠습니까? 잔치 당일이 되어 주인이 다시 종들을 보내 사람들을 청합니다. 17절입니다.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마태복음에서는 좀 더 구체적입니다.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당시에는 두 번 초대를 했다고 합니다. 잔치 전에 초대하고, 당일에 또 초대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왕의 잔치 자리임에도 사람들은 그 초대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18절 이하입니다. “[18]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19]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20]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밭과 소를 사고, 장가들었다는 것이 그들의 왕의 잔치 거절의 이유입니다. 당시는 경제력이 허락하는 만큼 일부다처가 법적으로 보장되던 시대였기에 실은 여성도 돈으로 산 것이 됩니다. 마태복음에는 더 노골적입니다. 그들이 돌아보지도 않고 자기 사업하러 갔다고 나옵니다. 

 

주님의 이 비유는 누가와 마태복음에만 나오는 게 아닙니다. 도마복음에도 나옵니다. 도마복음에는 네 사람이 나옵니다. 첫 번째 사람은 상인과 거래가 있어서 안 된다고 했고, 두 번째 사람은 집을 사러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고, 세 번째 사람은 친구 장가 때문이라고 했고, 네 번째 사람은 토지 소작료 수금날이 어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 어쨌든 모든 내용이 소유 때문에 왕의 초대에 응하지 못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 얼마나 인간 현실을 꿰뚫어 본 통찰입니까?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 잔치에 오지 못하는 이유는 모두 소유 때문입니다. 지금도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밭 사고, 소 사고, 결혼하는 데 정신이 없습니까? 아무리 청해도 얼마나 냉담한지 모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뒤도 안 돌아보고 갔다고 합니다. 

 

물론 이 모든 게 우리에게는 소중한 일상사입니다. 특히 결혼은 인륜지대사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이 비판하고 고발하신 것은 아무리 소중한 일상사라 해도 주님이 초대하신 천국 잔치에 임하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무엇도 주님 초청에 응하는 것보다 우선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의식주가 긴박합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그것보다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어떤 경우에도 천국 잔치가 우선이라는 뜻입니다. 주님 초대에 응하는 일이 우리 삶의 0순위라는 뜻입니다. 주님이 초대하시면 어떤 일을 하던 중이라도 다 제쳐두고 주님 초대에 먼저 응해야 합니다. 

 

열심히 장사합시다. 열심히 사업합시다. 결혼도 합시다. 그러나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우리는 결코 그런 것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천국이 목표이고 천국 잔치에 참여하는 일이 우리 인생의 최대 일이자 소망입니다. 그럼에도 오늘날도 사람들은 집 사고 결혼하느라 정작 천국 잔치는 외면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밥과 소와 결혼과 천국을 맞바꾸고 있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팥죽 한 그릇에 영원한 천국을 팔아버립니다. 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노아 시대도 마찬가집니다. 마태복음 24장 38절 이하입니다.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노아가 아무리 사람들을 방주로 초대해도 소용없었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홍수가 나서 다 수장되는데 누구도 그 죽음의 비밀을 몰랐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다고 하십니다. 이 세상 마지막 때, 주님의 재림 때도 사람들이 소 사고, 밭 사고, 결혼하느라 아무 이유도 깨닫지 못한 채 멸망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자기 죽음의 비밀을 모르고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준엄한 하나님의 심판인 줄도 모르고 죽는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어이없습니까! 정신 차립시다. 

 

주인이 화가 나서 다시 종들에게 명합니다. 시내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 불구자들을 데려와서 자리를 채우라고 합니다. 종들이 그대로 시행했지만 여전히 빈자리가 있습니다. 주인이 다시 명합니다.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주인은 전에 청하였던 사람들은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결론입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전에 초대를 받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역사적으로 보면 유대인들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주님을 믿지 않습니다. 주님은 그들이야말로 한 사람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 초대 받은 사람들은 21절에 따르면 거리와 골목에서 초대 받은 사람들입니다. 제1세계 사람들입니다. 서방의 여러 기독교 국가들입니다. 그런데 그들로도 자리를 다 채우지 못합니다. 주인이 산울가로 가서 사람들을 채우라고 합니다. 이들은 제3세계인 아시아, 아프리카 등을 말합니다. 제1세계의 피선교국들입니다. 우리가 여기에 속합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자리가 다 차지 않았습니다. 

 

왜 이럴까요? 왜 자리가 다 차지 않을까요? 그 비밀이 마태복음에 나옵니다. 마태복은 이 비유를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마태복음 22장 14절입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어느 시대나 청함을 받은 사람은 많으나 택함을 받은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전도도 마찬가집니다. 그러니 자리가 비었다고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청함은 누구나 받을 수 있습니다. 청함 받은 사람이 택함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왜 청함 받은 사람이 핑계를 대며 청함에 응하지 않을까요? 실은 택함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청함에 응하지 않아서 택함을 받지 못한 게 아니라 택함을 받지 못했기에 청함에 응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천국 잔치는 청한다고 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나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잔치에 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믿고 천국 잔치에 참여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는 물증입니다. 우리는 다 주님의 초대에 응했기에 택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먼저 택함을 받았기에 주님의 초대에 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우리처럼 택함을 입은 사람이 생각만큼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종들로서는 택함을 받은 소수가 누구인지 알 수 없기에 일단 다 청해야 합니다. 이렇게 전도와 선교를 통해 소수의 택함 받은 자들이 선별됩니다. 이것이 청함 받은 자는 많되 택함 받은 자는 적다는 말씀의 비밀입니다. 택함 받은 자만 청함에 반응할 수 있습니다. 물론 택함 받지 않은 사람도 청함에 응할 수 있지만 그것이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들은 사울처럼, 가룟 유다처럼 되고 맙니다. 

 

그런데 주님이 산울타리가로 나가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고 했습니다. 구속사적으로 보면 지금이 바로 여기에 해당되는 시대입니다. 이 시대는 아무리 택함을 입은 사람이라 해도 쉽게 청함에 응하지 못합니다. 세상 문화에 너무 절어서 그렇습니다. 세상이 그를 발목 잡아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강제라도 끌고 오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깊은 고민과 현실적 한계입니다.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굳이 전도하지 않아도 제 발로 나와야 하는데, 전도해도 나오지 않습니다. 신사적으로 해서는 아예 씨도 안 먹힙니다. 주님도 강제하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강제로 이웃들을 끌고 나올 수도 없는 그런 난감한 상황입니다. 이미 주님도 다 알고 계십니다. 마지막 시대에는 억지로라도 끌고 와야 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택함 받은 자도 안 나온다는 사실 말입니다. 

 

오늘 주일은 지난 2000년부터 지켜온 교단이 정한 외국 근로자 선교주일입니다. 120만 정도로 추정되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자는 취지입니다. 그들도 우리의 선교 대상입니다. 그들이 바로 본문이 말씀하는 산울타리로 나가 강권해야 할 마지막 선교의 대상일지도 모릅니다. 외국이 근로자와 다문화 가정의 선교를 위해 기도하고, 기회가 닿는 대로 전도하고 강권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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