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새 질서

요즘 같은 포도 철이었습니다.

어떤 포도원 주인이 이른 아침 일꾼들을 구하기 위해 모란이나 복정같은 인력시장으로 나가 일당 한 데나리온에 여러 사람을 고용했습니다. 그 후에도 주인은 여러 차례 나가 할 일이 없어 서성대는 일꾼들을 모아 포도원으로 들여보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해질 무렵인 오후 5시에도 또 한 차례 고용이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드디어 해가 저물어 작업이 종료되었습니다. 그런데 주인의 비상식은 여기서도 계속됩니다. 겨우 한 시간 정도 일했을 뿐인 맨 나중 온 사람들부터 불러 한 데나리온의 삯을 지불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를 지켜 본 먼저 온 일꾼들이 신이 났습니다. 자기들의 삯은 당연히 그보다 더 많을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인은 그들에게도 똑같이 한 데나리온만 지불합니다. 당장 원망과 불평이 터져 나왔습니다. <불과 한 시간 밖에는 일하지 않은 사람들을 하루 종일 무더위 속에서 수고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 비유는 노사문제를 다룬 한 리얼 드라마와도 같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먼저 온 노동자들의 항의는 이를테면 주인의 분배 불균등에 대한 쟁의였던 셈입니다. 그럼에도 주인은 노동자들의 그 같은 항의를 깨끗이 일축합니다. <당신들은 나와 한 데나리온을 계약하지 않았소? 당신들의 삯이나 가지고 돌아가시오! 나중 온 사람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준 것은 내 맘이오! 왜, 내 돈 가지고 내가 선을 베푸는 것도 잘못이란 말이오?>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인의 이런 처사와 항변이 사회정의라는 측면에서 과연 정당한 겁니까? 오히려 노동자들의 문제제기가 더 옳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주인이 분배균등의 원칙을 깨지 않았습니까. 물론 주인도 내 돈 가지고 내 마음대로 한 것뿐이며 소유권 역시 신성불가침의 주권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비유에서 사회문제의 해법을 찾고 사회정의의 근거를 밝히려 들면 결국 딜레마에 빠지고 맙니다. 이 비유는 본디 사회문제 프로그램이나 기존의 질서가 아니라 전혀 다른 하나님 나라의 새 질서를 전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한 것과는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한 데나리온이 주어지는 은혜의 세계, 공로나 업적과는 관계없는 새 질서, 의무와 권리를 근간으로 하는 세상 질서를 완전히 초월한 새로운 현실, 받았기 때문에 줘야하고, 제3자의 기준이 개입하여 심판함으로써 계급이 생기고, 이해관계에 얽혀 서로 싸우고, 그래서 이기느냐 지느냐 손해냐 이익이냐 먹느냐 먹히느냐의 긴장이 발생하는 따위의 현실이 아니라 너와 나 사이에 그 어떤 관념이나 기준도 끼어들지 않고 인격과 인격이 서로 신뢰와 사랑으로 만나는 현실이며, 주는 자유와 사랑하는 자유만이 지배하는 세계, 그런 하나님 나라의 새 질서가 노동과 대가, 의무와 권리라는 교환시장의 현실에 날카로운 대척점을 이루며 제시된 게 바로 오늘 이 비유의 취지요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가을은 은총의 계절이요 감사의 계절입니다. 우리에게는 늘 진심으로 감사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일한 것과는 상관없이 한 데나리온을 받은 나중 온 일꾼의 감격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게 주어지는 모든 것을 당연한 권리로 생각하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의 선물로 받습니다. 그리고 나 역시 계약의 의무만을 다 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남에게 베풉니다. 나도 주인에게 거저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반드시 먼저 온 일꾼들의 항의와도 같은 기존 질서의 저항이 따릅니다. 오늘 우리가 이 포도원 주인에게서 배워야 할 소중한 지혜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기존 질서를 파괴하거나 기존 질서의 의무로부터 도피하지 않으면서 그와는 상반된 또 하나의 새 질서를 실현했다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 나라의 새 질서를 증거하고 앞당겨 실현하는 당신에게 성큼 찾아 온 이 가을이 더욱 북 되고 풍성하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