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70910n] 동행 (창 5:1-7)

20170910n 남선교회 헌신예배

창 5:21-27

동행

 

(창 5:21-27, 개정) [21]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3]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25] 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26] 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7] 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본문의 주인공은 에녹입니다. 그는 이런 사람입니다. 24절입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그는 하나님이 데려가신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11장 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하나님이 에녹을 데려가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에녹을 죽음 없이 이 세상에서 천국으로 옮기셨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초자연적 신비입니다. 성경에는 죽음 거치지 않고 하늘로 간 한 사람이 더 있습니다. 에녹보다 후대 사람인데, 불 수레를 타고 하늘로 승천한 엘리야입니다. 에녹은 어떻게 하여 죽음을 맛보지 않고 천국으로 옮겨지는 전설적인 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까요?

 

22절입니다.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4절입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합니다. 무려 300년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을까요? 동행이란 함께 나란히 서서, 손을 잡고 대화하고 교감하며 길을 같이 가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10년도 하나님과 동행하기 쉽지 않습니다. 아니 몇 개월도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고 계시는 것 같다가도 어떤 때는 나와 동행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늘 그러한 회의와 불신에 시달리며 넘어지느라 한 번도 제대로 하나님과 동행한 적이 없습니다. 에녹은 얼마나 위대합니까? 그는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여러분, 에녹은 천사가 아닙니다. 그는 우리와 똑같은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우리와 얼마나 다릅니까? 하나님은 그런 에녹을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히브리서 11장 5절은 그가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증거를 받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 에녹처럼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런 삶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은 그 어떤 은혜와 복도 아끼지 않고 허락하십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게 잘 안 됩니다. 우리는 고의로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 측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로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함이 오히려 나를 괴롭고 힘들게 하기 때문에 달갑지 않은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지냅니까? 우리는 평소에는 서로 따로 지내다가 주일날만 잠시 뵙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떨어져 각자의 길을 걷습니다. 가끔씩 주일날만 안부를 확인합니다. 동행이란 두 사람이 같은 길, 같은 목적지를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이 안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반면에 우리는 세상과는 호흡이 잘 맞고 정서도 잘 맞습니다. 여러분, 세상과의 동행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슬퍼하시고, 질투하시고, 안타까워하십니다. 기억합시다. 에녹은 장장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남다른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을 믿되 상 주시는 분으로 믿었습니다. 이것은 중요합니다. 에녹이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한 비결이 이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의 아버지와 동행하는 일이 어찌 쉽겠습니까? 더구나 300년을 동행했다는 것인데 현실적으로 가능할 수 있었을까요? 히브리서는 에녹은 하나님을 상 주시는 분으로 믿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현실적으로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위해 희생과 헌신과 봉사의 삶을 의미합니다. 인간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손해입니다. 엄청난 손해와 손실을 감수해야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것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감수하며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을까요? 에녹은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보상해주시는 하나님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당장은 내 시간과 물질이 희생되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갚아주신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우리의 희생을 받기만 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보상하십니다. 이것을 믿고 확신해야 희생하고 헌신하고 손해를 보면서도 낙심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감사하며 희생적인 삶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에녹이나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하며 얼마나 많은 손해를 감수하고, 비웃음을 사며, 얼마나 많이 외로웠을까요? 그들은 한결같이 그 길을 갔습니다. 왜요? 하나님이 반드시 그 길을 보상해 줄 줄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은 본전이 생각나 손을 들고 마는데, 에녹은 300년 동안이나 모든 희생을 감수하며 살았기에 하나님이 유사 이래 단 두 사람만 누린 복을 그에게 베푸셨습니다. 여러분, 에녹처럼 상 주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헌신이 가능합니다. 헌신이 현실적으로 성립됩니다. 보상하시는 하나님이심을 확신해야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헌신과 충성, 희생하며 이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많은 부분을 훗날 천국에서 그 보상을 누리게도 하시지만 이 땅에서도 누리게 하십니다. 특히 말년이 복되게 하십니다. 에녹이나 엘리야처럼 우리를 산 채로 천국으로 데려가시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위해 희생하면 말년이 복 있게 하십니다. 여러분, 끝이 좋아야 합니다. 과정은 고생스럽고 구차하더라도 마지막이 행복하고 복 되어야 합니다. 젊을 때, 아직 기운이 있을 때, 시간과 재능과 물질이 있을 때,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희생하고, 헌신하십시다. 그래서 에녹처럼 상 주시는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의 믿음에 부응하십니다. 이 땅에서도 천국에서도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십니다. 에녹처럼 헌신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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