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문턱에서
읽기 설정
미리보기 인용
복사되는 내용은 인용 정보와 미리보기 주소다.
현재 미리보기 주소:
하늘을 바라봅니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고 높고 깊어졌습니다. 새벽 공기도 소슬하다 싶더니 어느새 <백로>(白露)가 지난 목요일이었습니다. 처서와 추분 사이의 <맑은 이슬>이라는 서정적인 절기, 이제 밤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 풀잎에 하얀 이슬이 맺히기 시작한다는 뜻인데 봄이 엊그제 같더니만 이렇게 가을이 왔습니다.
며칠 전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예쁜 여자 아이를 만났습니다. 나를 한 번 흘깃 보더니 내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갈 때 그 아인 그대로 뒤에 남았습니다.
우리는 엘리베이터 안팎으로 갈라섰고, 막 문이 닫히는 짧은 순간 제가 바라 본 그 아이의 눈빛에는 살짝 안도감이 비쳤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가슴이 아리고 쓸쓸한 생각이 들던지 하마터면 눈물까지 날 뻔했습니다. 확실히 가을인가 봅니다.
대체 우리는 누구를 믿을 수 있을까요? 요즘 들어 부쩍 절실해진 생각입니다.
모든 문제가 사람으로부터 시작되고, 그걸 수습하느라 더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고, 그리고 그 상처가 아물기까지 또 긴 시간이 필요하고 ... 그래서 이제 우리는 누구도, 아무도 믿지 못하는 철저한 불신의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베드로와 갈릴리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뵀지만 그것으로는 아직 충분치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사람 낚는 일을 포기하고 다시 <고기 잡으러 가노라>며 낙향한 것인데 그러나 그 일도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밤새 수고 했으나 아무런 소득이 없어 허탈해하는 현장에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배 오른쪽에 그물을 던지라!> 밤이 새도록 그물질을 한 사람들이 배 오른쪽이라고 안 던져 봤겠습니까만 그들은 주님의 그 말씀에 다시 그물을 내렸습니다. 이는 자신들의 경험이나 경력, 재능을 고집하지 않고 스스로의 한계를 겸허하게 인정했다는 뜻입니다. 대체로 교만한 사람들은 오직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만을 최고로 여기며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감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반면 제자들은 그 실패의 수렁에서 곧바로 벗어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그 실패의 경계선을 훌쩍 뛰어넘는 신앙, 그리고 자신의 경험 속으로만 움츠러들지 않는 열려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요구하십니다. 그게 바로 매사에 점점 더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 인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진정한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그렇게 다가오십니다. 그동안 우리가 어떤 실패를 했건 간에, 그간 우리의 삶에 어떤 쓰라림이 있었건 간에, 지금도 어떤 좌절의 고비를 맞아 고통하고 있건 간에, 그것을 핑계 삼지 말고 그것에 볼모잡히지 말고 무엇보다 먼저 주님의 말씀에 겸허히 귀를 기울이라고 하십니다. 한계가 뻔한 자신의 지식과 경험, 그리고 늘 우리를 초조하게 할 뿐인 탐욕을 온전히 내려놓고 주께서 우리 영혼에 속삭이시는 세미한 음성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미명에 맑은 이슬(白露)처럼 맺히는 그분의 음성을 듣고 또 한 번 온갖 좌절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재기의 길을 발견하라는 것입니다.
이 가을 주님이 우리에게 그런 용기를 불어 넣으사 소망이 꺾이지 않게 하시고 기도가 폭포수처럼 터지게 하시고 시든 영혼에 다시금 뜨거운 열정을 되찾게 하시길 진심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