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03n] 내게 나와 들으라! (사 5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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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3n
사 55:3-9
내게 나와 들으라!
(사 55:3-9, 개정)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4] 보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인으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았나니 [5]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로 달려올 것은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라 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우리가 왜 하나님께 나아와 귀를 기울이고 들어야 할까요? 3절입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우리의 영혼이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육신보다 영혼이 시들지 않고 건강해야 합니다. 주일마다 하나님께 나와 말씀을 듣는 것은 우리 육신보다는 영혼을 위해서입니다. 말씀이 바로 우리 영혼의 만나요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 말씀을 들으면 일찍이 다윗에게 약속한 은혜를 누립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다윗의 후손으로 메시아를 보내사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생하도록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으면 구속과 영생에 대해 바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기억해야 할 몇 가지 착안점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선 때와 시기입니다. 6-7절입니다.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는데, 그것도 다 때가 있습니다. 이것을 모르면 실패하기 싶고, 낙심하고 좌절하며 시험에 들기 쉽습니다. 만사에 때가 있듯이 은혜와 구원의 날도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게 내 편리한대로 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시간표대로 봐야 합니다. 성경은 카이로스, 즉 때에 대한 말씀이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성경은 카이로스에 대해 우리에게 진지하게 가르칩니다. 카이로스는 하나님의 때입니다. 우리는 카이로스에 대해 감각이 예민해야 합니다. 고도의 영적 감수성이 있어야 하나님의 때를 바르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영성이 탁해져서, 영적 감각이 무뎌지면 늘 하나님과의 교감에 엇박자가 납니다. 하나님과 호흡이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에 우리 시간을 맞춰야지, 그 반대가 되면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내 영적 감각이 예민해져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때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기억하십시다. 하나님의 시간, 때를 분별하는 힘은 그분의 말씀을 들을 때 배양됩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내 생각이 다릅니다. 8절 상반절입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9절 하반절도 보십시오.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을 좇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내 영혼이 삽니다. 그래야만 다윗에게 약속한 확실한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내 생각, 판단이 얼마나 내 편리한대로 입니까? 언제 우리가 한 번이라도 괜찮은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내 뜻을 맞추어야 합니다. 내 뜻을 주님의 뜻이라 합리화할 줄은 알았지, 주님의 뜻에 복종할 줄은 모릅니다. 로마서 8장 7절 이하입니다. “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교는 절대 맹목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생각하는 종교입니다. 그러나 내 맘대로 생각하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을 좇고, 추구하는 종교입니다. 주님은 평생 그렇게 사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38절입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주님은 겟세마네에서는 주님의 뜻을 찾으셨고, 십자가에서는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죽고 사는 문제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하나님의 생각과 뜻에 순종하여 복을 누리는 성도가 됩시다.
여호와의 길과 내 길이 다릅니다. 8절 하반절입니다.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9절 상반절입니다.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우리 인생은 도상의 존재입니다. 우리가 어떤 길을 가야 할까요? 마태복음 7장 13절 이하입니다.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세상에 길이 많아 보이지만 길은 두 개뿐입니다. 좁은 길과 넓은 길입니다. 주님의 길은 좁은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이요 골고다의 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좁은 문만 통과하면 큰 길이 나올 줄로 기대합니다. 신자의 길은 끝가지 좁은 문에 좁은 길입니다. 입문은 좁아도 여정은 헐렁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보십시오. 주님은 말구유에 오셔서 좁고 험한 골고다의 길을 걸으며 살다가 결국 처참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도 다 그런 길로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라오기를 주문하셨습니다. 포장된 길, 많은 사람이 걷는 길이라고 함부로 남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진리는 결코 다수결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교는 하나님 절대주의이지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선택한다고 그 길이 진리라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주님이 걸으신 진짜 길은 좁은 길입니다. 성서적으로 말하면, 다른 길은 다 가짜요 사이비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가신 길을 좇아야 합니다. 속지 마십시오. 길은 하나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르고 높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들읍시다. 아무리 좁고 거칠어도 끝까지 주님이 가신 길을 걸읍시다. 거기에 생명과 영생의 복이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깊이 깨달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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