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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3m] 주님의 리얼리즘 (마 10:16-31)

20170813m

마 10:16-31

주님의 리얼리즘

 

(마 10:16-31, 개정) [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17]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18]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21]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22]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3]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24]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25]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26]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주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리얼리스트셨습니까? 이상주의자셨습니까? 아무래도 주님은 이상주의자에 가깝습니다. 주님의 공생애 일성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발로 땅을 딛고 계시면서도 하늘나라를 처음부터 전파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3절입니다.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주님이 부활하신 후 40일간 계셨는데 그때도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다가 승천하셨습니다. 주님은 공생애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오직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고, 그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지독한 이상주의자이셨습니다. 

 

마태복음 5~7장이 유명한 산상수훈입니다. 산상수훈은 그야말로 주옥같은 주님의 교훈입니다. 그래서 산상보훈이라고도 합니다. 누가 오른뺨을 치면 왼뺨을 돌려대고, 겉옷 달라면 속옷도 주고, 5리를 가자고 하면 흔쾌히 10리도 가고, 돈을 꿔달라고 하면 이자 받지 말고 꿔주고, 악한 자를 위해 기도하고 원수 갚지 말고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것이 산상보훈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현실성이 있습니까? 주님은 분명 이상주의자가 맞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이상주의가 맹목적이거나 터무니없는 이상주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상주의자일 뿐 아니라 무섭도록 현실주의자였습니다. 본문 16절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주님이 세상을 양의 천적인 이리들이 득실거리는 현장으로 보신 것입니다. 과소평가도 과대평가도 하지 않고 주님은 세상을 현실 그대로 꿰뚫어보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세상에 나가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격겨하며 당부하신 말씀이 본문입니다. 

 

16절 하반절입니다.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뱀은 지혜의 상징입니다. 왜 뱀이 지혜의 상징입니까? 뱀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 가운데 가장 지혜로운 사람을 미혹해서 타락에 빠뜨렸습니다. 물론 마귀가 뱀의 형상으로 나타나 그들을 실족하게 한 것이지만, 그때부터 뱀은 지혜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요즘도 마찬가집니다. 지혜롭지 못하고 미련하고 우둔하면 날마다 마귀에게 당합니다. 도처에 잠복해 있는 이리들의 타겟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신자는 늘 주님이 주시는 신령한 지혜와 투명한 영성으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바르게 판단하고 제대로 대처하며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다. 정말 뱀처럼 지혜롭게 살아야 마귀의 밥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혜가 다는 아닙니다. 주님은 비둘기처럼 순결하라고도 하셨습니다. 비둘기는 순결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을 비둘기에 비유합니다. 주님도 세례요한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받을 때 성령이 비둘기처럼 그 위에 임했습니다. 그러면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너희가 비록 세상에서 살지만 함부로 세상과 수작하지 말고 신앙의 정절을 지키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상실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세속 한복판에서 살망정 성도답게 거룩한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뱀과 비둘기를 꼭 기억합시다. 지혜와 순결로 세상을 사십시오. 뱀과 비둘기처럼 자신의 영혼을 관리합시다. 

 

17절 상반절입니다. “사람들을 삼가라.” 주님의 입에서 어떻게 이런 말씀이 나올 수 있을까요? 이 말씀은 사람을 조심하라, 경계하라, 의심하라, 믿지 말라는 뜻입니다. 주님이 제자들을 세상으로 내보내시며 이런 당부를 하셨다니 얼마나 놀랍습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주님은 사람을 믿으라, 끝까지 신뢰하라, 다 포용하고 품으라고 하셔야 훨씬 더 주님 답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사람을 믿지 말라고 하십니다. 내가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고 하시면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세상에 나가면 특히 사람을 조심하라고 하십니다. 사람이 곧 이리고, 사나운 짐승에 다름 아니기에 함부로 사람을 믿거나 경계심을 풀면 당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냉철한 현실주의이십니까! 정말 무섭도록 투철한 주님의 현실감각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경계대상 1호는 호랑이도 사자도 아니고 이리입니다. 사람입니다. 이리가 사람의 천적입니다. 사람이 원수고, 사람이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는 이리입니다. 사람이 내게 상처를 주고, 배신하고, 뒤통수를 치고, 발목을 잡습니다. 사람이 나를 법정에 세우고 채찍질합니다. 17절 하반절 이하입니다.“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18]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배제해서도 안 되지만, 필히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에 대한 맹목적인 낙관주의, 온정주의는 금물입니다. 주님이 누구보다 사람을 깊이 이해하신 분인데 사람을 경계하고 의심하라고도 하셨습니다. 이리가 양의 탈을 쓰고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방심하면 언제 우리를 해칠지 모릅니다. 

 

주님은 한 가지 더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본문의 마지막 당부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리가 득실거리는 세상에 나가 살아야하지만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6절 상반절입니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31절도 보십시오.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주님은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사람을 경계하라고 하시면서 그러나 두려워말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이리가 득실대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는 세상보다 더 두려워해야 할 분이 계십니다. 우리의 영과 육을 지옥에 던지실 수 있는 분이 있습니다. 28절입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우리가 세상에서 두렵다는 것은 우리의 궁극적 두려움의 대상인 하나님을 불신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두려움을 불신앙의 소치라고 합니다. 우리 영혼과 육을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우리의 육만 죽일 수 있는 세상이 주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기억합시다. 우리가 이리가 득실대는 세상을 담대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이 세상보다 훨씬 크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사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세상이 주는 두려움을 상대화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우신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십니다. 디모데후서 1장 7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신 정서가 아니라 마귀가 우리를 파멸하기 위해 준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형벌과 심판이 따를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움 대신 성령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두나미스라고 합니다. 두나미스는 다이너마이트의 어원입니다만, 실은 그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무기이고, 초자연적 파괴력입니다. 핵보다 더 파괴력이 있는 것이 두나미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두나미스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강력한 파괴력, 성령의 능력, 두나미스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담대함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의 가진 사람은 주님이 세상을 이기신 것처럼 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부디 우리의 육신과 영혼을 지옥에 던질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세상이 주는 상대적 두려움을 이깁시다. 성령의 두나미스를 가슴에 품고 살아서 그 어떤 위협도 다 물리치고 당당하게 담대하게 용감하게 세상을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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