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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9w] 사무엘하 강해 11 (삼하 9:1-13)

20170809w 사무엘하 강해 11

삼하 9:1-13


(삼하 9:1-13, 개정) [1] 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2] 사울의 집에는 종 한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시바라 그를 다윗의 앞으로 부르매 왕이 그에게 말하되 네가 시바냐 하니 이르되 당신의 종이니이다 하니라 [3] 왕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다리 저는 자니이다 하니라 [4] 왕이 그에게 말하되 그가 어디 있느냐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나이다 하니라 [5] 다윗 왕이 사람을 보내어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그를 데려오니 [6]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매 다윗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하니 그가 이르기를 보소서 당신의 종이니이다 [7]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 하니 [8] 그가 절하여 이르되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하니라 [9] 왕이 사울의 시종 시바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사울과 그의 온 집에 속한 것은 내가 다 네 주인의 아들에게 주었노니 [10]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들은 그를 위하여 땅을 갈고 거두어 네 주인의 아들에게 양식을 대주어 먹게 하라 그러나 네 주인의 아들 므비보셋은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으리라 하니라 시바는 아들이 열다섯 명이요 종이 스무 명이라 [11] 시바가 왕께 아뢰되 내 주 왕께서 모든 일을 종에게 명령하신 대로 종이 준행하겠나이다 하니라 므비보셋은 왕자 중 하나처럼 왕의 상에서 먹으니라 [12] 므비보셋에게 어린 아들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미가더라 시바의 집에 사는 자마다 므비보셋의 종이 되니라 [13] 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사니라 그는 두 발을 다 절더라


지난 주에 함께 상고한 8장 14절 하반절입니다.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다윗은 그 어떤 전쟁이든 하나님이 이기게 하셨기에 승리했습니다. 15절도 보십시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다윗이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 다윗은 밖으로 전쟁을 해도 이기고, 내치에도 성공적이었습니다. 공의와 정의를 원칙으로 삼아 나라를 다스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억울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떤 계층도 소외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다윗은 공정하게 인재를 발굴했습니다. 16절 이하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지역, 전문성 등을 충분히 고려하여 인사정책을 잘 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태평성대를 맞이합니다. 


오늘 본문은 나라가 안정되자 다윗은 요나단을 떠올립니다. 1절입니다. “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흔히 성공한 사람을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합니다. 하나는 자기의 성공을 제 혼자 누리는 사람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성공의 열매를 남과 나누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후자에 속합니다. 다윗처럼 자신의 성공을 나누는 사람도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훗날을 위해 투자하는 심정으로 열매를 나누는 사람입니다. 다른 하나는 보상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성공의 열매를 나누는 사람입니다. 이런 유형의 나눔을 우리는 은총이라 부릅니다. 본문을 보면 은총이란 말이 자주 나옵니다. 다윗은 요나단의 핏줄에게 값없이 선의를 베풉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은총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배은망덕하다는 사실을 알고도 선의를 베푸십니다. 그래서 은총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누리는 성공의 열매를 요나단의 혈육과 나누고자 합니다. 


다윗은 사울의 신하였던 시바를 부릅니다. 시바는 요나단의 아들 가운데 다리 저는 므비보셋이 있다고 합니다. 다윗이 당장 그를 데려오라고 합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과 사랑은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깊습니다. 요나단이 죽었을 때 다윗이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삼하 1:26)고 하며 애도합니다. 사울은 집요하게 다윗을 추적했는데, 그 아들 요나단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다윗을 지키고 사랑했습니다. 요나단이 아니었으면 다윗은 사울에게 잡혔을지도 모릅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사울의 계획을 다 알려주었습니다. 사무엘상 20장 17절입니다.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이 그를 다시 맹세하게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 사무엘상 20장 마지막 42절도 보십시오.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이제 다윗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습니다. 므비보셋이 5살 때 할아버지 사울과 아버지 요나단이 죽습니다. 블레셋이 쳐들어와 왕궁을 초토화할 때 므비보셋의 유모가 아이를 안고 가다 떨어뜨립니다. 그래서 그는 다리를 절게 된 겁니다. 게다가 비참한 것은 평생 숨어살아야 할 폐족의 후손이 된 겁니다. 그런데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 7절입니다.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 하니.” 파격도 이런 파격은 없습니다. 다윗이 떨고 있는 므비보셋을 안심시키고, 두 가지 복을 약속합니다. 할아버지 사울의 재산을 돌려주고, 그 땅을 관리하는 데 필요한 전 사울의 종 시바를 붙입니다(10절). 또 하나는 므비보셋으로 하여금 왕의 식탁에 앉게 합니다. 이때부터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다윗의 식탁에서 다윗의 왕자들과 함께 식사합니다. 사실 이때만 해도 장애인이나 신체의 결함을 가진 이는 왕 앞에 나설 수 없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므비보셋은 왕의 식탁, 가장 복된 식탁에서 식사했습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을 자식처럼 여긴 것입니다.


이 사건을 굳이 복음적으로 해석해보면, 다윗은 주님을 가리킵니다. 장애를 가졌지만 왕의 식탁에 앉는 므비보셋은 우리를 가리킵니다.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비참하게 살아야 했는데 주님은 우리를 당신의 식탁으로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식탁에서 감사기도를 하는 것은 이를 테면 우리를 왕의 식탁으로 초대해 주셔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사울의 모든 밭을 돌려준 것처럼 주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베푸셨습니다. 우리는 이 은총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선의를 베푸셨습니다. 


기억합시다. 우리가 누리는 신분, 식탁, 재산 등은 모두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총입니다. 우리는 전혀 그런 은혜와 복을 누릴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을 부른 것처럼 주님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므비보셋이 얼마나 몸둘 바를 모를 정도로 감사했겠습니까? 우리도 그렇게 처신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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