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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20170806m] 종말 불감증 (마 24: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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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20170806m</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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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마 24:3-18</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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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종말 불감증</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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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마 24:3-18, 개정) [3]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16]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17]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 가지 말며 [18]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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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요즘은 신자들도 종말에 대한 위기의식이나 긴장이 거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너무 오랜 세월 이미 2000년 전 초대교회 시절부터 말세나 종말, 재림을 들어왔는데 역사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고, 주님의 재림은 여전히 감감하니까, 이제는 사람들이 내성이 생겨 매너리즘에 빠졌습니다. 종말에 대한 별다른 감흥을 못 느끼는 겁니다. 그야말로 다들 종말 불감증에 걸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야말로 말세를 살아가는 이 시대 신자들의 큰 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종말이라는 주제에 지나치게 집착해 열광적인 종말론자가 되어 극단적으로 빠지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무디어 종말에 대해 아무런 대비 없이 살아가는 것도 무책임하고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은 무엇으로 보나 말세 중 말세입니다. 종말에 대한 영적 관심을 환기하시기 바랍니다. 때에 대한 영적 감수성, 시대에 대한 영적 분별력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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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종말에 대한 우리의 최대 관심은 무엇일까요? 주님이 과연 언제 오시는가?일 것입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1장 7절입니다.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종말은 하나님의 권한에 속하는 것이기에 비밀이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 36절을 보면 더욱 극단적입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주님이 분명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재림의 구체적 일정은 특급 보안사항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하셨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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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그런데도 이단, 사이비, 시한부 종말론자들은 끊임없이 특정 날짜에 주님이 재림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그 날과 그 때를 모른다고 했지 언제 주님이 년도를 모른다고 했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바울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알려줄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그날이 도적같이 임한다고 했습니다. 모든 이가 평안하다 할 때 그날이 해산의 고통처럼 임한다고 했습니다. 아무런 위기의식 없이 안정적이다고 할 때 불현 듯 종말이 온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1장 34절은 그날이 덫과 같이 온다고 했고, 마태복음 24장 37절에서는 노아의 때처럼 임한다고 했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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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주님의 재림이 철저히 특급 보안사항으로 관리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로 하여금 늘 깨어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근신하며 살게 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문단속을 잘 해야 하는 이유가 밤손님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도 우리가 긴장을 다 풀고 안일하고 나태하고 무책임하게 살기를 원하지 않고 늘 긴장하며 살기를 바라시기에 재림의 시기를 절대 공개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흐트러진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못 봐주십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재림의 시기를 비밀에 부치셨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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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그러면 종말의 시간은 비밀입니까? 이것은 일급비밀이지만 말세의 징조는 누구나 알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습니다. 본문 3절입니다.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주님은 4절 이하에서 그 징조를 길게 말씀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2-33절입니다. “[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주님은 마지막 시기는 비밀에 부치셨으나 그 마지막 징조는 오히려 제대로 알라며 밝히 알리셨습니다. 주님의 경고를 들어보십시오. 47절 이하입니다.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48]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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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여기서 말씀하시는 종말의 징조 가운데 주님이 가장 많이 언급하며 강조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본문 4-5절에서 말씀하신 내가 그리스도라 하며 사람들을 미혹하는 이단 사이비의 출현입니다. 24절 이하입니다. “ [23]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26절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주님이 종말의 징조로 가장 많이 언급하신 것이 적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것은 사탄이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기에 최후의 발악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가용 자원을 다 동원해 집중적으로 이 세상과 신자들을 어지럽히고 교란합니다. 적 그리스도가 종말의 징조의 가장 확실한 표징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다. 본문 15절입니다.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이때가 말세지말의 때임을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구약 다니엘서 9장 이하에 나오는 내용인데 주님이 다시 인용하신 겁니다. 다니엘서의 그 말씀은 주전 167년에 수리아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성전 제단에 제우스 신상을 세워 숭배를 강요한 것을 가리킵니다. 요즘은 교회가 경매에 나오면 그건 다 이단들 차지입니다. 요즘은 이단들이 기존 교회를 접수합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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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우리는 이런 때에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주님은 어떻게 권면하고 계십니까? 16절입니다.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여기서 말씀하는 산은 무슨 산입니까? 시온산입니다. 예루살렘 성이 있고, 성전이 있는 성산 시온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멸망의 가증한 것들이 거룩한 곳에 서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가로채는 환난 때는 마치 도피성으로 가듯 시온산으로 피해서 보다 철저한 성전 중심의 생활, 교회 중심의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종말이 임박할수록 더욱 교회를 구심으로 살라는 권면입니다. 마지막 시대에 우리가 피할 곳은 오직 시온산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사람들이 교회로부터 달아날 궁리만 찾습니다. 성산으로 피해야 합니다. 더욱 교회를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환경이 쾌적하지 못해도 교회가 최후의 방주요 도피성이지 세상 어디로 피할 곳은 없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절대 쾌적하지 않았습니다. 그 큰 배에 창은 딱 하나였습니다. 노아의 가족들이 짐승들과 함께 1년을 살았으니 거기가 얼마나 소란하고 공기가 탁했겠습니까? 그러나 그 배가 구원의 방주였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집니다. 세상이 우리의 안녕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시온산으로 도망하라는 주님의 이 당부의 말씀을 잊지 마십시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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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다음은 이렇게 당부하십니다. 17절입니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 가지 말며.” 유대인들의 가옥은 지붕이 평평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 기도하고, 무슬림은 하루에 다섯 번 기도합니다. 유대 시간으로는 3시, 6시, 9시입니다. 원칙상 성전에서 기도해야 하는데, 현실상 그렇지 못하니까 늘 지붕에 올라가서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9절입니다.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6시면 현재로는 12시입니다. 집 안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라는 것은 기도처를 떠나지 말라는 당부입니다. 교회 중심의 생활 뿐 아니라 기도 중심의 생활에 매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생활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모두 물건 때문입니다. 소유 때문이고 물질 때문입니다. 재산 때문에 시간과 마음을 다 빼앗겨 기도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는 주님의 당부입니다. 지금은 비상한 말세지말입니다. 종말의 말기에는 기도가 소유보다 훨씬 더 소중합니다. 하나님과의 교감, 소통이 물질보다 훨씬 더 소중합니다. 물건과 기도를 바꾸지 맙시다. 물건 때문에 기도를 유보하지 맙시다. 귀 있는 자는 이 말씀을 들으시고 반드시 실천하십시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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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마지막으로 18절입니다.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이것은 내게 주어진 사명, 은사, 달란트에 최선을 다 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미련 때문에 자기가 맡은 일에 소홀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 심판의 날, 결산의 날이 박두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오시면 우리는 주님 앞에서 삶의 모든 내용을 정산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세에는 앞만 바라보며 쟁기질해야 합니다. 충성과 헌신을 다해야 합니다. 주님은 평소에도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 겉옷은 개인 자산 1호였습니다. 그럼에도 이 마지막 시대에는 겉옷에 대한 미련이나 애착, 집착마저도 버리고 오직 밭가는 일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 해야 맞습니다. 구원의 성 소알만 바라보고 뛰라고 했음에도 불 타는 재물 때문에 뒤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를 기억합시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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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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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주님이 말씀하신 이 마지막 시기를 사는 비상한 지혜의 말씀이 우리에게 경계의 말씀이 되기를 기원합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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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27 -->
<p class="p1"><span class="Apple-converted-space"><br></span></p>
<!-- paragraph:p0028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a href="https://www.youtube.com/embed/GLhm_mDmzyY" title="미디어 원본"></a></sp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