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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20170730m] 세미한 소리 (왕상 19: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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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 class="s1">20170730m</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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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 class="s1">왕상 19:9-14</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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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 class="s1">세미한 소리</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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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 class="s1">(왕상 19:9-14, 개정) [9]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4]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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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 class="s1"><span>먼저 오늘 본문 바로 앞장인 18장을 보십시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바알 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 총 850명과 세기의 대결을 벌입니다. 18장 28절 이하입니다. “[28] 이에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더라 [29] 이같이 하여 정오가 지났고 그들이 미친 듯이 떠들어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르렀으나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나 돌아보는 자가 아무도 없더라.” 그다음엔 엘리야 차례입니다. 32절 이하입니다. “[32]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제단을 쌓고 제단을 돌아가며 곡식 종자 두 세아를 둘 만한 도랑을 만들고 [33]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 하고 [34] 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째로 그리하라 하여 세 번째로 그리하니 [35] 물이 제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 찼더라.” 37절 이하도 보십시오.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39]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홀홀단신으로, 850대 1로 엘리야가 우상의 선지자들과 맞서 싸워 이긴 통쾌한 결과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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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 class="s1"><span>이 진검 승부에서 승리한 후 엘리야는 우상으로 혹세무민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한 명도 도망가지 못하게 한 다음 기손 시내로 가서 처단합니다. 18장 40절입니다. “엘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그들 중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그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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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 class="s1"><span>그런데 그 소식을 아합 왕의 왕후요 열렬한 바알 신봉자인 이세벨이 듣습니다. 그녀는 이를 갈며 복수를 맹세합니다. 19장 2절입니다.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이세벨은 즉각 전국에 엘리야를 체포하라는 수배령을 내립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 기개가 하늘을 찌르던 엘리야가 두려움에 사로잡혀 미친 듯이 광야로 도주합니다. 몇 날 며칠 먹지도 못하며 도망하다가 로뎀나무 아래 쓰러져 하나님께 떼를 씁니다. 엘리야가 차라리 죽여달라고 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 물과 떡을 주시며 위로하시고 기력을 회복케 하십니다. 그러고 나서 엘리야를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인도하십니다. 본문이 바로 여호와의 산인 호렙에서 엘리야가 받은 계시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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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 class="s1"><span>11절 이하를 보면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었다고 하는데, 그 바람이 얼마나 거세었던지 바위를 부수었다고 합니다. 이 현상이야말로 하나님의 무한하신 권능과 위엄을 나타내기에 대단히 적절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거기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바람과 함께 하나님이 나타나실 줄 알았는데 거기엔 안 계셨다는 겁니다. 그 다음에는 천지가 뒤흔들리며 땅이 벌어지는 무시무시한 지진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거기에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다음은 이 세상 모든 것을 순식간에 삼킬 듯한 강력한 불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이 무시무시한 불을 통해 역사하시나보다 싶었는데 그 불에도 하나님은 없었습니다. 그러면 언제 하나님이 나타나십니까? 전혀 크지도 요란하지도 신비하지도 않은 세미한 소리와 함께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12절 이하입니다. “[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세미한 소리와 함께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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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 class="s1"><span>여러분,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는 강력한 바람이나 가공할 지진, 무시무시한 불로 나타나셔서 한 방에 아합 왕궁을 박살내시고, 이세벨을 한 입에 삼키시길 바라지만, 정작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기대와 바람과는 달리 하나님은 세미한 소리,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는 자만 들을 수 있는 소리로, 아주 미미하게, 아주 작은 소리로 역사하고 계시하십니다. 사실 누가 잘못을 하면 당장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불로 심판하신다면, 감히 누구도 더는 그렇게 하지 못할 겁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 안 믿을 사람이 없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세미한 소리로 말씀하십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 계시의 비밀이고 함정입니다. 이게 바로 믿는 사람들이 형편없이 살고, 세상 사람들이 겁 없이 사는 이유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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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 class="s1"><span>마태복음 13장을 보면 주님이 여러 가지로 천국을 비유하십니다. 거기 보면 우선 천국이 얼마나 하찮고 연약하고 우스운 모습으로 나오는지 모릅니다. 씨 뿌리는 비유를 보십시오. 뿌려진 씨를 악한 자가 와서 빼앗습니다. 이게 분명 천국 말씀인데 사탄이 와서 그걸 우리에게서 빼앗아 갈 수도 있습니다. 또 환난이나 박해가 올 때는 넘어지는 게 천국입니다. 이래서 사람들이 천국 알기를 우습게 압니다.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세상 유혹에 막혀 결실하지 못합니다. 천국이 얼마나 우스웠으면 사람들이 돈 몇 푼에 천국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강한 바람이나 지진이나 불이라면 절대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겁니다. 천국은 세미한 소리이기에, 하나님은 세미한 소리로 계시하시기에, 하나님은 세미한 소리로 우리에게 다가오시기에 우리는 모두 무시하고 하찮게 생각합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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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 class="s1"><span>역시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가라지 비유입니다. 가라지와 밀, 피와 벼, 깜부기와 보리, 잡초와 채소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잘 자랍니까? 가라지 쪽입니다. 잡초는 그렇게도 잘 자랄 수 없습니다. 뽑고 돌아서면 또 시퍼렇게 돋아납니다. 논에서 피 뽑기 할 때, 피가 어떤 것인지 몰라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면 무조건 벼보다 더 큰 녀석은 다 피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이 늘 속상해 하고, 약 올라하는 게 이겁니다. 왜 저 쪽이 훨씬 더 잘 되냐는 겁니다. 왜 가라지가 더 잘 되고, 잡초가 더 무성하냐는 겁니다. 믿는 사람은 왜 늘 잘 안 되냐는 겁니다. 알곡이 더 강해서 나보란 듯 잘 돼야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신자들 체면도 서고, 전도에 도움이 될 터인데, 현실은 언제나 그와는 정반대입니다. 알곡 쪽이 열세고, 가라지 쪽이 훨씬 강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시험에 들고 낙심합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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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 class="s1"><span>엘리야도 지금 바로 그런 겁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이 우상 믿는 사람에게 쫓겨 비굴하게 숨어 다니며 목숨을 부지하느니 차라리 하나님 손에 지금 여기서 죽는 편이 낫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흔히 키 크고 잘 생겼는데 공부를 못하면 욕을 더 많이 합니다. 차라리 키나 크지 말고 잘 생기지나 말지 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아닙니다. 공부 못하는데 키라도 커야지 라고 말씀합니다. 생각할수록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입니다. 저 사람은 죽으면 지옥 밖에는 더 갈 데가 없는데 살아서라도 잘 먹고 잘 입고 큰 집에 살고 돈이라도 원 없이 써봐야 하지 않겠냐? 네가 이해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도 고생하고 거기 가서도 영원히 고통당하면 너무 불쌍하지 않느냐? 잠시 이 땅에서라도 낙을 누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십니다. 못 난 사람들 좀 더 잘 사는 것을 조금만 견디라고 하시며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악한 사람들이 잠시나마 이 세상을 휘젓고 다니는 이유요, 가라지들이 훨씬 더 웃자라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절대 부하고 흥하고 더 크게 자라는 가라지를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가라지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있습니다. 주인이 말하기를, 추수 때까지만 그대로 두어라고 합니다. 지금은 가라지들이 더 성하고 흥하고 부해서 알곡들에게 기고만장을 부리지만, 메뚜기도 한 철이듯 그들은 오직 추수 때까지만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악인의 영화도 잠깐이고, 의인의 고난도 잠깐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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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paragraph:p0023 -->
<p class="p1"><span class="s1"><span>마태복음 13장에는 겨자씨 비유도 나옵니다. 겨자씨는 눈에 띄지도 않는 가장 작은 씨앗인데 주님은 하필이면 천국이 그 겨자씨와 같다고 하십니다. 겨자씨가 나중에 크면 큰 나무가 되지만, 처음에는 눈에 띄지도 않는 작은 씨앗입니다. 작은 씨가 자라 큰 나무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하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천국은 세미한 소리로, 가장 작은 겨자씨 한 알로 우리 곁에 와 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지금도 우리의 허를 찌르고 있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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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 class="s1"><span>마태복음 13장에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가 있습니다. 보화는 보화인데, 밭에 감추인 보화입니다. 우리 옛 시조에도 비슷한 게 있습니다. 옥에 흙이 묻었으니 오는 이, 가는 이가 다 돌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게 돌이 아니라 보화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당장 가서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그 밭을 산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은 그런 모습을 보며 미쳤다고 합니다. 왜 그 척박한 돌밭을 집 팔아 사느냐고 손가락질합니다. 천국은 지금도 그렇게 천국 같지 않은 모습, 황당한 모습, 초라하고 왜소한 모습으로 밭에 묻혀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잘 발견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발견했다는 사람도 그 가치를 몰라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겠다는 사람도 적습니다. 우리 가운데 과연 몇 명이나 자기 재산을 팔아 그 밭을 사겠다고 결단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의 태도가 아주 애매하고 모호합니다. 정말 목숨까지라도 내놓고 기어이 사야하는 게 천국이라는 보물임에도 누가 과연 그렇게 합니까? 그런 의미에서 천국은 아직도 제 주인을 못 만난 채 밭에 묻혀 있습니다. 지금도 천국은 흙 속에 묻힌 진주로 남아 있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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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 class="s1"></span><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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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 class="s1"><span>한 번은 옥에 갇힌 세례 요한이 그의 제자들을 주님께 보내 물었습니다. “당신이 정말 오실 그분 맞습니까?” 그 질문이 무슨 뜻입니까? 세례 요한 조차도 주님이 헛갈렸다는 겁니다. 달리 말하면 사실 주님이 세례 요한의 기대에도 못 미쳤다는 뜻입니다. 산을 가르는 바람 소리를 기대했는데, 제대로 들어야 들릴까 말까한 세미한 소리라는 겁니다. 그래서 실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천국 때문에 실족하는지 모릅니다. 주님이 “누구든지 나로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해야 주님 때문에 시험에 들지 않을까요?</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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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 class="s1"></span><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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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 class="s1">엘리야처럼 세미한 소리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세미한 소리에서 주님의 육성을 들어야 합니다. 세미한 소리에서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거창한 것을 생각합니다. 유명한 기도원, 명성 자자한 목사님의 설교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하나님이 안 계실지 모릅니다. 큰 사건, 위대한 목사, 유명 기도원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일상에서 만나는 사소한 사건, 세미한 소리, 전혀 유명하지 않은 이웃, 가난한 이웃, 허기진 이웃을 통해 주님은 여러분에게 계시합니다. 주님은 그런 일상의 소리에서 우리를 만나십니다. 허영을 버립시다. 허세를 버립시다. 탐욕을 내려놓읍시다. 거창한 것, 화려한 것, 대단한 것은 다 가짜일지 모릅니다. 부디 올 여름에는 바위를 부수는 강한 바람이나, 땅의 모든 것을 삼키는 지진이나, 불이 아니라 세미한 소리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엘리야처럼 하나님의 위로로 기력도 회복하시고, 사명도 되찾는 복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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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 class="s1"><br></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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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 class="s1"><br></span></p>
<!-- paragraph:p0032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a href="https://www.youtube.com/embed/L-3AFEP37Ms" title="미디어 원본"></a></sp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