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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20170723m</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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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벧후 1:4-7</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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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영성훈련</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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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벧후 1:4-7, 개정)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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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7,8월이 방학이고 휴가철이고 피서철입니다. 교회적으로는 이때가 경건과 영성훈련의 성수기입니다. 교회마다 각종 수련회며, 워크샵, 캠프, 여름성경학교 같은 프로그램이 이 기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이제는 옛날 말이 되었습니다. 요즘은 어느 교회나 고민이 깊습니다. 아무리 프로그램을 짜고, 장소를 섭외하고, 일정을 잡고, 광고해도 등록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큰 교회는 큰 교회대로,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대로 고민이 많습니다. 우리가 왜 무더운 여름철에 휴가보다 피서나 해외여행보다 영성훈련에 더 많은 관심과 주의를 기울여야 할까요?</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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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디모데전서 4장 8절입니다.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경건훈련, 영성훈련은 금생과 내생에 다 유익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과 자녀들의 영성과 경건훈련에 소홀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올 여름에도 나름대로 영성훈련에 애써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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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4절 하반절입니다.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이게 영성훈련의 목적입니다. 5절도 보십시오.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 기독교 영성훈련은 믿음에 덕을 더하는 훈련입니다. 덕의 원어의 뜻은 고상한 인격입니다. 믿음에 덕이 더해지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영성훈련입니다. 믿음에 고상한 인품으로 옷을 입히는 것이 영성훈련입니다. 아름다운 인품으로 믿음을 포장하라는 것이 영성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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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우리나라 교회의 영성은 천해졌습니다. 믿음에 덕을 더해야 품위가 있고 진정한 영성인데, 우리에겐 믿음만 있지 덕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남에게 거부감과 혐오감을 주는 종교가 되고 말았습니다. 원래 기독교는 성스럽고 품위 있고 격조 있는 명품 신앙, 명품 종교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턴가 너무 천박하고 부끄러운 딴따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할렐루야 아멘만 부르짖었지, 그 믿음에 덕을 입히는 영성훈련에 태만하고 무책임했기 때문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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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하나님의 가장 큰 특징이 무엇일까요? 그분은 인격적인 분입니다.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인격의 본체입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이 사람을 지을 때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고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십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특정한 형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창세기에서 말씀하신 우리의 형상이란 그분의 인격, 지성과 감성과 의지라는 하나님의 품격의 형상을 뜻합니다. 우리는 입체지만 하나님은 입체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격체입니다. 우주에는 수많은 피조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인격을 가진 존재는 사람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완전한 인격의 본체이시고 사람은 그 하나님의 인격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격체입니다. 사람이 비록 유한하고, 죄로 말미암아 그 형상이 훼손되었지만 사람은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격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격적이어야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됩니다. 우리가 인격적이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격적이어야 우리는 하나님과 그리고 이웃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처럼 믿음에 덕을 더하십시오. 영성훈련을 통해 신앙에 더하라고 한 덕, 하나님의 형상성, 곧 인격을 더합시다. 믿음에 덕을 갖춘 성도가 됩시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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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다음으로 믿음에 더해야 할 것은 지식입니다. ‘덕에 지식을’ 더하라고 합니다. 믿음은 무조건 아멘이 아닙니다. 믿음은 절대 자기 암시나 최면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근본적으로 지성적입니다. 많은 사람이 믿음을 반지성적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또한 신자들이 잘못 각인시킨 것입니다. 우리가 무식하게 굴어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을 반지성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무조건 믿으라고 윽박지르고, 무조건 아멘 하라고 강요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우리는 상대방을 모르고 신뢰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모르기 때문에 억지, 강요, 협박, 공갈이 나옵니다. 로마서 10장 17절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믿음이 들음에서 난다는 것은 앎에서 난다는 말입니다. 알아야 믿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알아야 신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무턱대고 믿을 수는 없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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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성경은 어디에서도 맹신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 백성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망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피를 토하듯 ‘우리가 여호와를 알되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외쳤습니다. 호세아 6장 6절입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이것은 하나님이 스스로 표명하신 말씀입니다.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제사를 원하는 줄 알지만, 하나님은 그런 것 원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이후에 제사도, 제물도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지식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예배 한 번 참석하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때우려고 합니다. 이것은 재래종교에서 온 습성입니다. 무속이나 미신에는 지식이 필요 없습니다. 치성만 드리면 됩니다. 주님이 누구시고, 나와 어떤 관계인지, 나를 향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알고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알고 믿으라고 합니다. 모르면 모르는 만큼 제대로 믿지 못한다고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근본적으로 지성적입니다. 각 교회에서 실시하는 여름 수련회 때 가장 많이 할애하는 시간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공부하는 성경공부 시간입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건강하고 건전하고 흔들리지 않는 신앙이 가능합니다. 올 여름에는 좀 더 하나님을 알아가는 노력을 기울입시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만큼 우리의 신앙이 더욱 깊고 성숙해지기를 바랍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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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다음은 절제입니다. 6절입니다. “지식에 절제를...” 절제는 신앙생활의 필수덕목입니다. 주일이나 방학, 휴가 때 가족과 함께 나들이하고 여행하고 피서 가서 남들처럼 즐기며 쉬다 오고 싶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런 욕망을 절제하지 않으면 사실상 어렵습니다. 실제로 믿지 않던 분들이 신앙생활하려고 할 때 가장 걸리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절제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는 경우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제약 받는 부분이 많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자기 욕구대로 다하며 살지 못합니다. 때론 과감하게 포기해야 하고, 개인적인 기호도 미련 없이 뭔가를 깨끗이 버리기도 해야 합니다. 자제와 절제를 요구당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도 시간도, 봉사할 시간도, 헌금이나 헌신할 시간을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누구도 남 하는 것 다 하면서 신앙생활 할 수는 없습니다. 가톨릭에서는 금욕과 고행도 장려합니다만, 개신교는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습니다. 절제와 자제는 영성훈련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25절 이하에서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절제하라고 했습니다. 자기 관리, 자기 통제가 있어야 이길 수 있고, 훗날 주님께 상 받을 수 있다고 한 겁니다. 우리는 바울의 말씀처럼 아직 다 얻은 게 아닙니다. 다만 앞의 것을 향해 달리는 도상의 존재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자기를 통제하고 절제해야 합니다. 절제하면서 끝까지 뛰어야 합니다. 주저앉고 싶고 포기하고 싶은 유혹과 자기 몸을 쳐서 싸우며 계속 뛰고 있는 존재가 그리스도인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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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부디 아름다운 영성을 가진 아름다운 성도가 됩시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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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 class="Apple-converted-space"><br></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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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 class="Apple-converted-space"><br></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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