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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목마른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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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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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말하자면 그 수가 동네의 우물은 야곱 이래 1천 2백년의 세월을 자랑하는 신앙 전통과 고단한 사마리아 사람들의 애환이 서린 유수한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그리로 물 길러 나온 &lt;우물가 여인&gt;은 그 두 가지 흐름이 하나로 합류된 듯 한 상징적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유서 깊은</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lt;야곱의 우물&gt;이 여인의 곤고함을 전혀 해소해 주지 못했으며 극심한 갈증도 해갈해 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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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 class="Apple-converted-space"><br></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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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어느 날 여인이 그 현장에서 주님과 맞닥뜨렸습니다. 일단 그에게는 주님이 경계의 대상이었습니다. 주님은 남자였고 주위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더욱이 주님은 사마리아인들을 경멸하는 유대인 나그네입니다. 더구나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한 주님이 거꾸로 자기가 물을 주는 자인 양 행세하지 않습니까?</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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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br></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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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lt;내가 누구인 줄 알았다면 네가 도리어 내게 물을 구했을 것이라&gt;(요 4:10).</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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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br></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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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마침내 여인이 반박합니다. &lt;수가 마을 사람들이 이 우물을 마셔 온 지가 얼마나 됐고, 그동안 이 물을 마시며 살아온 사람들, 가축이 얼마나 많은 데 감히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gt; 여인의 말에 주님은 또 이렇게 답하십니다. &lt;이 물을 마시는 자는 또 다시 목마를 것이라!&gt; 무슨 뜻입니까? &lt;그대가 아무리 자랑하고 이 동네 사람들이 아무리 많은 세대에 걸쳐 마셔 온 우물이라 해도 이 물이 지금 그대가 겪고 있는 영혼의 갈증을 궁극적으로 해소해 주지는 못한다&gt;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lt;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gt;(요 4:14)고 하시자, 드디어 여인이 변화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lt;아, 내 인생의 고단함이 이 위대한 전통의 우물로도 해소되지 못하더이다. 주여, 내게 그런 물을 주사 더 이상 목마르지도, 또 이곳에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소서!&gt;</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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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br></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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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오늘 우리도 이 &lt;우물가의 여인&gt;에게서 현재 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역시 신앙의 우물가까지 왔다가 인생의 곤고함은 하나도 해결하지 못한 채 그냥 빈손으로 돌아가는 사람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의 신앙은 옛 수가 동네의 야곱의 우물 만큼이나 오랜 풍상을 겪어온 기독교 역사의 큰 흐름에 그 물줄기를 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습니다. 그간의 교회 생활이 가져다 준 정서적인 안정감과 신앙적 연륜이 내 삶을 상대적으로 성숙하게 하는 힘이 되기도 했을 것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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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br></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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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그러나 우리는 주님이 야곱의 우물가에서 던지신 질문 앞에서 정작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을 빠뜨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냉정하게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즉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만약 우리들의 영혼에 위로와 기쁨이 없다면, 또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자신 있게 결단하고 행동에 옮길 수 없다면 그것은 지금 우리가 주님의 생수를 긷고 있는 자들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생수는 우리 영혼의 기갈을 해소하고 모든 상처를 낫게 하는 묘약입니다. 또한 굳은 마음을 녹이고 편협한 심사를 넓히며 교만했던 자신을 낮추고 식었던 사랑의 열정을 다시 일으키는 무한한 힘입니다. 우리는 다 주님의 샘에서 생수를 긷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생수를 긷는 일에 태만하면 할수록 세상에는 더 많은 영혼들이 목말라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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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3"><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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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부디 주님의 샘에서 퍼 올린 시원한 생수로 연일 주의보가 발령되는 올 여름</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이 폭염을 멀리 날려버리십시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