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70716n] 아삽의 책망 (시 50:8-23)

20170716n 

시 50:8-23

아삽의 책망


(시 50:8-23, 개정) [8] 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는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9]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숫염소를 가져가지 아니하리니 [10]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며 [11] 산의 모든 새들도 내가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12]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아니할 것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13]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16]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17]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18] 도둑을 본즉 그와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들과 동료가 되며 [19] 네 입을 악에게 내어 주고 네 혀로 거짓을 꾸미며 [20]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머니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21]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눈 앞에 낱낱이 드러내리라 하시는도다 [22]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편은 전체가 150편인데, 그 가운데 정확히 72편이 다윗의 시이고, 그 다음으로는 아삽의 시가 많습니다. 시편 73편부터 83편까지는 모두 아삽의 시입니다. 시편 전체에서는 아삽의 시가 12편 정도입니다. 본문인 50편도 아삽의 시입니다. 


아삽은 레위인 출신으로 성가대장이었습니다. 다윗왕 때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가대가 세 개 있었는데, 아삽은 헤만, 에단과 더불어 그 세 성가대 중 하나를 지휘했습니다. 본문의 경우는 성가대 지휘자의 시로서는 내용이 격하고, 그 주제도 서정적이지 않고 성전을 드나드는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적 모순과 문제를 지적하고 고발하는 거친 내용입니다. 3절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오사 잠잠하지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삼키는 불이 있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6절입니다. “하늘이 그의 공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 아삽이 대체 무엇을 지적하고 책망하려고 삼키는 불, 광풍, 공의로운 재판장을 언급합니까?


그는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식적 예배를 문제 삼았습니다. 8절입니다. “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는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당시 예루살렘 사람들이 제사를 안 드린 것은 아닙니다. 예배를 안 드리는 것은 아닌데 문제는 9절 이하입니다. “[9]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숫염소를 가져가지 아니하리니 [10]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며 [11] 산의 모든 새들도 내가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12]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아니할 것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13]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인데 무엇이 아쉬워 고기와 피를 원하겠느냐고 하십니다. 정작 원하는 것은 따로 있다고 하십니다. 14절 이하입니다. “[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형식적 제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수소의 고기나 염소의 피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런 데 굶주린 분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실제로는 많은 사람이 그것으로 하나님을 달래려고 합니다. 형식적 제사로 하나님께 바칠 것, 의무를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착각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감사요, 서원을 갚는 것이요, 환난 날에 하나님께 간절히 비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의식으로 수선을 떨고 요란을 피웠습니다. 


번제란 짐승을 잡아 터럭 하나 남기지 않고 숯불에 살라 바치는 제사입니다. 그것은 내 몸, 생명, 존재 전체의 헌신을 상징합니다. 그럼에도 정작 헌신이나 희생은 없었다는 게 문제입니다. 짐승은 잘 바쳐도 자신을 드리는 헌상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책망하실 때도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마 23:23)고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사 1:11)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예배의 근본정신을 평가하시고 받으십니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만 붙잡고 있었습니다. 무늬만으로 예물을 드리고 안심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삽이 격렬한 언어로 신랄하게 책망합니다. 


아삽의 지적은 형식적 믿음입니다. 이스라엘은 예배만 아니라 믿음도 형식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17절 이하입니다. “[17]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18] 도둑을 본즉 그와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들과 동료가 되며 [19] 네 입을 악에게 내어 주고 네 혀로 거짓을 꾸미며 [20]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머니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말뿐인 믿음, 허울뿐인 신앙, 전혀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이 당시 이스라엘의 믿음이었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렸더니 이제는 하나님마저도 자기들과 같은 존재로 생각합니다. 21절입니다.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눈 앞에 낱낱이 드러내리라 하시는도다.” 여러분, 행함이 없는 허울만의 믿음은 주님의 징계를 자초합니다. 누구도 하나님의 눈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럴 듯한 몸짓과 표정을 지으며 경건한 척 해도 주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주님이 여전히 잠잠하신 것은 주님이 내게 속아서가 아니라 오래 참고 계신 겁니다. 주님이 즉각 징계하지 않으시는 것은 내 믿음이 제대로 되었다는 뜻이기보다는 이제나 저제나 하며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게 속고 계시기보다는 내가 내 자신에게 속고 있는 겁니다. 주님은 우리의 예배와 믿음을 훤히 다 들여다보고 계십니다. 우리의 예배가 형식뿐인 줄을 주님이 우리보다 먼저 아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허울뿐이라는 사실을 주님이 알고 계십니다. 다만 주님이 오래 참으실 뿐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23절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더는 하나님의 인내심을 시험치 말고 속히 감사의 제사와 행함 있는 믿음을 회복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구원을 보이시리라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아직도 회복의 여지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예배의 정신과 믿음의 내용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조금만 긴장을 풀어도 자칫하면 근본 정신과 내용을 놓치기 쉽습니다. 예배를 회복합시다. 형식주의나 의식주의 말고 예배의 참된 정신을 되찾읍시다. 믿음의 내용을 회복합시다. 행함이 있는 산 믿음을 되찾읍시다. 하나님은 그런 자에게 분명 구원을 보이겠다고 하셨습니다. 진정한 예배, 참된 믿음으로 여러분이 반드시 주님의 구원을 만나는 복 있는 성도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