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id": "xe-53555",
  "title": "[20170716m] 은혜의 강에서 헤엄치라! (겔 47:1-5)",
  "authors": [],
  "category": "sermon",
  "dates": {
    "registered_at": "2017-07-16T19:57:22",
    "original_updated_at": "2017-07-16T19:57:22",
    "published_on": null,
    "delivered_on": null
  },
  "tags": []
}
---
<!-- paragraph:p0001 -->
<p class="p1"><span>20170716m</span></p>
<span>
</span><!-- paragraph:p0002 -->
<p class="p1"><span>겔 47:1-5</span></p>
<span>
</span><!-- paragraph:p0003 -->
<p class="p1"><span>은혜의 강에서 헤엄치라!</span></p>
<span>
</span><!-- paragraph:p0004 -->
<p class="p2"><br></p>
<span>
</span><!-- paragraph:p0005 -->
<p class="p1"><span>(겔 47:1-5, 개정) [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2]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3]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 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span></p>
<span>
</span><!-- paragraph:p0006 -->
<p class="p2"><br></p>
<span>
</span><!-- paragraph:p0007 -->
<p class="p1"><span>금주로 장마가 끝나면 휴가철이 시작됩니다. 취업 포털사이트인 잡코리아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올해 우리나라 직장인 78.4%가 여름휴가를 계획하고 있고, 그 가운데 국내여행이 약 82.4%, 해외여행을 준비하는 사람은 17.6% 라고 합니다. 올해는 제가 추천하는 곳으로 가보십시오. 믿는 사람들은 오늘 제가 말씀하는 곳으로 가는 게 복됩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span>
</span><!-- paragraph:p0008 -->
<p class="p2"><br></p>
<span>
</span><!-- paragraph:p0009 -->
<p class="p1"><span>주전 597년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만여 명의 예루살렘 사람을 포로로 잡아갔는데 에스겔도 25세 청년으로 잡혀갑니다. 에스겔은 그때는 선지자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포로생활 5년차가 접어들던 해에 바벨론 포로지에서 그는 선지자 소명을 받습니다. 바벨론은 그 후에도 한 차례 더 예루살렘을 초토화하고 유다 시드기야 왕을 잡아와 두 눈을 뽑고 온갖 욕을 보이다가 유다 포로들 앞에서 처참히 살해합니다. 그러니 당시 유다 포로들의 절망감과 비통함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에스겔은 가정적 불행도 겪습니다. 포로지에서 만난 아내가 현지에서 세상을 뜹니다. 그럼에도 에스겔은 그런 개인적 불행에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충실히 응답합니다. 점점 지쳐가는 유다 포로들에게 위로하며 하나님의 묵시를 전합니다. 오늘 본문도 에스겔이 포로지에서 본 환상을 유다 포로들에게 전달한 내용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span>
</span><!-- paragraph:p0010 -->
<p class="p2"><br></p>
<span>
</span><!-- paragraph:p0011 -->
<p class="p1"><span>그는 환상 중에 하나님의 성전 문지방 밑에서 샘물이 솟아나는 걸 봅니다. 그게 드넓은 강을 이루는 것도 봅니다. 이 샘물은 무엇을 가리킬까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반드시 성전을 통해, 제단을 통해 흘러내립니다. 성전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뜻하는 지성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와 말씀, 기도와 찬양, 감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은혜의 강물이 하나님의 성전 문지방 아래에서 시작된다는 말씀은 지극히 당연하고 옳습니다. 47장 12절에도 보면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온다고 합니다. 은혜의 강물이 발원지가 성전의 성소라는 겁니다. 하나님 은혜의 원천이 요즘말로는 교회라는 겁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span>
</span><!-- paragraph:p0012 -->
<p class="p2"><br></p>
<span>
</span><!-- paragraph:p0013 -->
<p class="p1"><span>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다음 장면입니다. 에스겔이 하나님 사자의 지시로 그 은혜의 강물에 들어갔더니 처음에는 그 강물이 발목까지 오릅니다(3절).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가 다 같은 교회와 환경, 조건에서 신앙생활합니다만, 그렇다고 모든 성도가 똑같은 수준의 은혜를 체험하며 사는 건 아닙니다. 각자가 체험하는 하나님 은혜의 정도가 다릅니다. 발목까지 은혜의 강물이 찼다는 것은 그 은혜의 수위가 발목 수준이고, 그는 발목 신자라는 겁니다. 발목 신자는 오직 발목으로 신앙생활합니다. 발목을 사용해 교회를 드나드는 사람입니다. 예수를 믿은 지 5년, 1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발목 수준이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발목 신자의 특징은 툭하면 발목을 삔다는 겁니다. 삐끗하면 발목을 다칩니다. 이런 분이 가장 난감합니다. 그래서 그가 어떤 행태를 하든 가만히 두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교회 안 다니는 걸 우유나 신문 끊듯 합니다. 이런 신자는 늘 위태롭고 아슬아슬합니다. 발목 신자로 만족하지 마십시오. 더 깊은 데로 나아가십시오.</span></p>
<span>
</span><!-- paragraph:p0014 -->
<p class="p2"><br></p>
<span>
</span><!-- paragraph:p0015 -->
<p class="p1"><span>에스겔이 다시 강물에 들어갑니다. 이번에는 강물이 무릎까지 오릅니다(4절).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무릎 수준으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무릎 신자입니다. 이들은 발목 신자와는 달리 스스로 무릎을 꿇고 주체적으로 기도하는 신자입니다. 발목 신자보다는 진일보한 겁니다. 원래 신자들은 무릎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동생 야고보가 있습니다. 그가 야고보서를 썼습니다. 그는 베드로와 함께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유력한 지도자였는데, 그의 별명이 낙타무릎이었습니다. 신자는 무릎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스스로 기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아직도 스스로 기도할 줄 모르는 신자가 많습니다. 이것은 절대 자랑이나 세련된 신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큰 부끄러움입니다. 무릎 신자라 해서 다 된 것은 아닙니다. 무릎 수위의 은혜가 다는 아닙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span>
</span><!-- paragraph:p0016 -->
<p class="p2"><br></p>
<span>
</span><!-- paragraph:p0017 -->
<p class="p1"><span>4절 하반절을 보니 물이 허리에 찹니다. 에스겔이 더 깊은 데로 들어간 겁니다. 허리 신자입니다. 허리 신자, 하나님의 은혜를 허리 수준으로 체험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구체적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할 뿐만 아니라 허리를 굽혀 남을 섬기며 봉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희생하며 헌신할 줄 아는 신자입니다. 종들은 늘 허리로 삽니다. 그래서 허리 신자는 주님의 신실한 종, 선한 청지기로 삽니다. 발목으로 겨우 교회를 오가던 사람이 언젠가부터 무릎을 꿇고 기도하다가 이제는 허리를 굽혀 봉사하며 삽니다. 이 얼마나 장하고 아름답습니까? 이제는 그가 주님의 종으로 사는 것입니다. 교회의 직분자들, 사역자들이 이를테면 허리 신자입니다. 아니 그들은 허리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교회 직분자들이 가장 못하는 게 허리 굽히는 일입니다. 제일 어려워하는 것이 남 섬기는 일입니다. 평소나 이전에는 잘했는데, 장로가 되면 허리가 뻣뻣해지고 나중에는 목까지 뻣뻣해져 허리나 고개를 숙일 줄 모릅니다. 주님도 친히 허리를 굽혀 제자들의 발을 씻기며 너희도 이렇게 나를 섬기라고 했는데 우리는 그게 잘 안 됩니다. 허리를 굽히십시오. 진정한 허리 신자들이 되십시오. 허리가 뻣뻣하면 못 씁니다. 하다못해 서비스업 종사자들도 아침마다 허리 굽히는 연습을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집니다. 직분자들의 허리가 유연해야, 제대로된 허리 신자가 많아야 합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span>
</span><!-- paragraph:p0018 -->
<p class="p2"><br></p>
<span>
</span><!-- paragraph:p0019 -->
<p class="p1"><span>그럼에도 이 허리 수위마저도 다는 아닙니다. 5절을 보면 헤엄칠 만한 물이 있습니다. 강물의 수위가 높아져 걸어서는 건널 수 없고 헤엄쳐야만 건널 수 있는 수준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충만, 은혜충만의 경지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바라시는 은혜의 최종 수위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절대 발목이나 무릎, 허리 수준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헤엄칠 수 있는 수준으로 은혜가 충만하고,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47장 9절을 보십시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2절도 보십시오.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은혜의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함이 있고, 실과가 맺히고, 실과나무 잎사귀는 약재료가 된다고 합니다. 번성, 건강, 풍성함, 넉넉함, 다양함, 풍요로움, 이런 온갖 복이 은혜의 강을 헤엄치는 사람의 몫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풍성하고 싱그럽고 건강합니까!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은혜의 강물을 헤엄쳐야 합니다. 제발 은혜 충만하십시다. 날마다 얕은 물가에서 첨벙대지 말고 깊고 넓은 은혜의 강과 바다를 마음껏 헤엄칩시다. 거기에 건강하고 풍성하고 넉넉한 삶이 있습니다. 온갖 물고기와 실과가 넘치고 귀한 약재가 지천이라고 합니다. 현재 자신의 은혜생활의 현주소를 짚어봅시다. 올 여름에는 모두가 보다 깊은 은혜의 강에서 마음껏 헤엄치며 주님이 약속한 온갖 복을 누리기를 기원합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20 -->
<p class="p1"><span class="Apple-converted-space"><br></span></p>
<!-- paragraph:p0021 -->
<p class="p1"><span class="Apple-converted-space"><br></span></p>
<!-- paragraph:p0022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a href="https://www.youtube.com/embed/lma_MlkAUKk" title="미디어 원본"></a></sp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