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푹염보다 더 뜨거운 ...


일본에서는 초판 130만부, 우리나라에서는 선인세 30억을 주고 30만부를 찍어 지난 수요일부터 서점가에 깔기 시작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 열풍 말입니다. 가히 신드롬이라 할 만합니다. 

아내의 갑작스런 이혼 통보 후 집을 나온 삼십대 중반의 초상화가 <나>는 친구의 도움으로 그의 아버지요 유명한 화가인 아마다 도모히코가 사용하던 산속 아틀리에에서 지내게 됩니다. 어느 날 그는 아틀리에 천장에서 아마다 도모히코의 어느 화첩에도 수록되지 않은 미발표작 <기사단장 죽이기>를 발견합니다. 그런데 모짜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의 등장인물을 일본의 아스카 시대로 옮겨 놓은 듯한 그 한 폭의 그림이 졸지에 <나>를 둘러싼 주위 모든 환경을 충격적으로 바꿔놓습니다. 

한밤중 <나>는 방울소리를 듣습니다. 방울은 집 뒤편 사당의 돌무덤 속에서 울리고 있었습니다. 돌무덤을 파헤치자 원형의 석실이 드러나고 얼마 후 거기서 아마다 도모히코의 그림 속에 있던 기사단장이 나타납니다. 

주로 초기 작품들에서 사용하던 일인칭으로 돌아와 하루키의 매력이 한층 짙게 느껴지는 이번 작품은 현실과 비현실이 절묘하게 융합된 그의 세계관의 결정판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오페라와 클래식, 재즈와 올드팝에 이르기까지 여러 장르의 음악을 적절히 배치하여 인물의 심상을 대변한 것이며, <이데아>와 <메타포>라는 추상과 관념적 개념 등을 주요 모티브로 사용하는 등 하루키 작품에 등장하는 단골 코드가 여기에도 거의 망라됩니다. 

소설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상실의 계기로 등장하는데 오스트리아 빈에서의 유학시절 도모히코는 나치 저항운동에 참여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사랑하는 연인을 잃습니다. 또한 피아니스트였던 동생은 강압에 의해 난징대학살에 가담하는데 그 후 극심한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해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어떤 의도로 창작했는지, 왜 발표를 하지 않고 천장 위에 숨겨두었는지 수수께끼로 가득했던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작품에는 그런 거대한 부조리와 폭력에 맞서려한 노화가의 의지가 생생히 드러나 있었던 것입니다.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데뷔한 이래 한 때는 개인주의와 허무주의를 대표하는 청춘의 전유물로 여겨지기도 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은 이제 세대와 국경을 아우르는 하나의 엄청난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기사단장 죽이기>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지금까지 구축해온 작품 세계를 가장 다양하게 변주하며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내면 깊은 곳까지 내려가 그의 모든 것을 농축한 결과물입니다. 일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지만 그의 문체는 여전히 날카롭고 유려합니다. 프롤로그만으로도 이미 긴장으로 가슴을 가득 차게 만듭니다.


아직은 장마철이라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기 전인데도 연일 폭염이 기승입니다. 현금 지구촌에서 가장 큰 소설 시장을 점유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로 <무더위 죽이기>,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