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70709n]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왕하 2:8-14)

20170709n

왕하 2:8-14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왕하 2:8-14, 개정) [8] 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 위로 건너더라 [9]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10] 이르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고 [11]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12] 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로 찢고 [13]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 가지고 돌아와 요단 언덕에 서서 [14]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이르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그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오전에는 엘리야를 함께 생각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엘리야의 제자요 후계인 엘리사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12절입니다. “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로 찢고.” 스승 엘리야가 죽음을 맛보지 않고 불수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엘리사는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라고 외칩니다. 그 광경이 신비롭고 압도적이어서 비몽사몽간에 그렇게 외친 겁니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내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이는 육신의 아버지라기보다는 믿음의 아버지를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인은 아브라함이 조상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육신의 조상이라기보다는 믿음의 조상을 가리킵니다. 엘리사가 승천하는 엘리야를 믿음의 아버지라고 부른 겁니다. 가톨릭에서는 사제를 신부라고 하는데, 신부라는 말도 아버지란 뜻입니다. 우리는 교황이라 부르지만, 다른 나라 말로는 아버지입니다. 영어로는 holy father, 독일말로는 Papst인데 다 아버지란 뜻입니다.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그 사람들의 오랜 역사와 문화 속에서는 아버지란 말이 자연스럽습니다. 엘리사가 믿음의 스승 엘리야를 내 아버지여라고 부른 것도 같은 뜻입니다.


엘리야를 8년간 따라다니며 그가 승천한 후에 그의 사역을 승계해서 활동했던 엘리사의 믿음, 엘리사라는 인물, 그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엘리야는 대단합니다. 그는 구약의 선지자를 대표할만한 위대한 인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산상회담을 하실 때 엘리야와 모세가 나타납니다. 모세는 율법을,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합니다. 그만큼 엘리야는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의 후계인 엘리사도 엘리야와 막상막하입니다. 우선 그는 갑절의 성령의 능력을 구한 사람입니다. 9절입니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이것은 대담하고 당돌하기 짝이 없는 요구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도 네가 참 어려운 일을 구한다고 했습니다. 결국 엘리사는 갑절의 능력을 받습니다. 그래서 그는 온갖 기적을 다 행합니다. 수넴 여인의 아들도 살리고, 보리떡 스무 개로 백 명이 넘은 허기진 사람을 먹입니다. 이방인 나아만 장군의 나병도 고칩니다. 


성령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한 영이고,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성령의 능력이나 역사는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를 바 없고, 변한 게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능력으로 얼마든지 놀라운 권능을 행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성령은 우리를 통해 얼마든지 놀라운 역사를 드러내실 수 있습니다. 문제는 성령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엘리사처럼 갑절의 능력을 구하지도 않고, 성령의 능력을 사모하지 않기에 우리에게서 그런 역사가 일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와 권능을 구합시다. 우리도 엘리사처럼 갑절의 은사와 능력을 구합시다. 우리를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의 기적을 구합시다. 그러면 얼마든지 우리도 이 시대의 엘리사의 후예가 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엘리사는 엘리야의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14절입니다.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이르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그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이것은 엘리사가 자기의 스승이요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을 부른 것입니다. 자기의 믿음의 아버지인 엘리야 선지자를 불수레에 태워 데려가신 하나님, 바로 그분을 부르고 찾은 겁니다. 파스칼도 그랬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옛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 모세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 엘리야와 엘리사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 다윗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 그분이 그대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얼마나 실감하십니까? 얼마나 생생하게 체감하십니까? 


그 기라성 같은 믿음의 선진들과 함께하시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그들을 통해 숱한 기적을 행하셨던 하나님이 오늘 그대로 우리의 하나님이란 사실이 얼마나 위대하고 소중합니까? 그럼에도 우리의 하나님은 너무도 무력하고 무능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에게 문제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선배나 선진들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엘리사처럼 위대한 선진들의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엘리야의 하나님, 엘리사의 하나님을 되찾아야 합니다. 야곱의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엘리야의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엘리사의 하나님,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그래서 우리 모두가 가장 역동적이신 하나님을 모시고 옛 믿음의 선진들처럼 늘 승리하며 사는 성도가 됩시다. 


엘리사는 믿음으로 요단강을 쳤습니다. 14절 하반절입니다. “그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엘리사는 지난 8년간 스승 엘리야를 모시고 다니며 온갖 하나님의 능력을 현장에서 목격했습니다. 8절을 보면 좀 전에도 스승 엘리야가 겉옷으로 요단강을 쳐서 강물을 가르는 기적을 곁에서 보았습니다. 그랬기에 엘리사에겐 불같은 확신이 솟아 올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엘리사가 남긴 겉옷으로 요단강을 쳤고, 그 믿음대로 요단강이 갈라졌습니다. 영적 체험이 우리를 담대하게 하고, 확신에 찬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기적을 체험하게 합니다. 지금도 우리가 믿음으로 요단강을 치면 강물이 갈라집니다. 우리가 지금도 믿음으로 홍해를 치면 홍해가 갈라집니다. 하나님이 여전히 그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우리 앞에서 요단강이 갈라진 놀라운 기적을 체험합시다. 


우리가 엘리사에게서 배우고 그의 기적에서 받아야 할 도전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부디 엘리야와 엘리사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갑절의 은혜를 베푸사 우리도 우리의 두 눈으로 하나님이 우리 앞에 펼치시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는 복 있는 성도가 됩시다. 



원문 자료와 첨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