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와 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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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Luther, Martin: 1483.11.10.-1546.2.18.)는 독일 작센 안할트주의 아이슬레벤(Eisleben)에서 아버지 한스 루터와 어머니 마가레테 린데만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의 권유로 에어푸르트(Erfurt) 대학 법학과에 진학한 루터는 교양과정을 마치고 법률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모님을 찾아 뵙고 친구와 함께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던 길에 갑자기 드넓은 벌판이 캄캄해지며 폭우가 쏟아지고 무시무시한 천둥과 번개가 치더니 옆에서 함께 걷던 친구가 벼락을 맞아 루터의 눈앞에서 새까만 숯덩이로 변해버린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실로 눈 깜짝 할 사이에 벌어진 믿을 수 없는 비극이었습니다.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 루터는 그 자리에 털썩 엎드려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저를 구해주시면 수도사가 되겠습니다!>
벼락으로 졸지에 친구를 잃고 혼비백산한 루터의 입에서 터져나온 이 서원이야말로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고 인류의 역사와 1500년 기독교 역사를 새롭게 쓰는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강렬한 빛과 음성으로 바울을 부르셨던 주님이 1505년 7월 2일 폭풍과 벼락으로 22세의 루터를 부르사 당신의 교회를 새롭게 하신 것입니다. 2주 후 루터는 법학도의 꿈을 접고 가족들의 만류도 뿌리친 채 전격 에어푸르트에 있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에 들어갑니다.
독일의 구동독 지역인 에어푸르트 근교 스토테른하임(Stotternheim), 지금도 그 곳은 드넓은 벌판인데 그 한가운데 <루터 슈타인>(Luther Stein)이라는 돌비가 하나 서 있습니다. 그 지점이 바로 개신교의 발원지요 원적지와도 같은 루터가 벼락을 만나 친구를 잃고 법학도에서 신학도로 전향했던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곳을 잘 모릅니다. 루터의 수많은 연고지가 관광지처럼 개신교의 성지로 개발되어 해마다 순례객들이 늘고 있지만 루터의 그 원초적인 경험과 회심이 시작된 자리는 아직도 그냥 스토테른하임 벌판에 외로운 돌비석 하나로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입니다.
<나는 수도사로서 흠 없이 살았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하나님 앞에서 지극히 어지러운 양심을 가진 죄인임을 느꼈다. 그래서 때로 큰 소리로 중얼거리며 이렇게 묻곤 했다. “하나님은 원죄로 인해 비참한 죄인들이 율법에 따른 온갖 재앙으로 말미암아 산산조각이 나고 의와 진노로 우리를 위협하는 복음으로 인해 고통을 더해 가는데도 아직 충분하지 않으신 것 같군요?” 나는 맹렬하고도 고달픈 양심으로 분노를 토해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바울이 깨닫고자 했던 것을 나도 아주 열렬히 알고 싶어 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고 한 말씀에 주목하게 되었다. 나는 거기에서 하나님의 의가 하나님의 선물, 곧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 활짝 열린 문을 통해 낙원으로 들어가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루터의 일기 중에서)
묘하게도 저는 요즘처럼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우는 여름철이면 꼭 루터가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