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가화만사성(잠 17:1-7)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잠 17:1-7
2011.06.23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1절).
이는 가정이 <화목>하면 만사가 형통하다는 뜻입니다. 나아가서는 한 가정의 행복이란 결코 <물질>이나 <소유>에 있지 않다는 교훈입니다. 그렇습니다. 한 가정의 행복은 <가득한 제육>이 아니라 사랑에 있고, <화목>에 있습니다. 비록 마른 떡 한 조각뿐이라 해도 서로 다투지 않고 사랑하고 화목하면 거기에 아름다움과 만사형통이 있습니다. 돈 때문에, 재산 때문에 서로 다투고 불화한다면 그 가정의 부란 축복이 아니라 저주에 다름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연단하시는 여호와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3절).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실 뿐 아니라 연단하시는 분이십니다. 도가니는 은을 연단하고 풀무불은 금을 연단할 뿐 사람의 마음을 연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더욱 강인하게, 더욱 순전하게, 더욱 순수하게 연단하시는 분이십니다. 시편도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은같이 단련하신다>(66:10)고 했습니다. 이사야서는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느니라>(48:10)고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연단하시는 여호와의 은혜로 더욱 정련되고 정화되셔서 순도 높은 정금으로 거듭나십시오. 뜨거운 풀무불이 모든 불순물을 태워 없애고 나를 더욱 빛나게 할 하나님의 축복임을 깨닫고 감사하십시오. 마른 떡 한 조각을 앞에 놓고도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란 바로 이런 풀무불 연단을 거친 사람입니다.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주를 멸시한 자요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할 자니라>(5절). 가난한 자들을 짓밟고 그들의 궁핍함과 초라한 행색을 비웃으며 조롱하는 자들은 결국 그들을 지으신 하나님을 멸시하고 모욕하는 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옳은 지적입니까?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분신들입니다. 그만큼 존귀하고 또 평등한 존재들입니다. 그럼에도 소유를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고 가난하다는 이유로 사람을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큰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형벌에 처하신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부한 자도 가난한 자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평등한 하나님의 형상일 뿐입니다. 가난한 자를 무시하고 차별하는 것과 또 남이 당한 재앙을 보고 기뻐하는 것은 곧 이웃의 하나님의 형상성을 범하는 짓이고 따라서 그것은 하나님의 형벌을 자초하는 꼴이므로 결코 그 가정의 행복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6절).
부모가 늙어 손자를 보며 또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가운데서 잘 자라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대단히 영예로운 일이요 보람과 기쁨의 면류관을 쓰는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또 그렇게 3대가 함께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나란히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이야 말로 더없이 아름답고 복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앙의 대물림에 더욱 힘쓰십시오. 부모님께 하나님을 잘 섬기는 손주를 선물하는 일이 곧 그분들의 머리에 면류관을 씌워드리는 일임을 기억하십시오. 3대가 하나님을 섬기며 화목하는 가정에는  반드시 만사형통의 축복이 보장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