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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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듬 해 6월, 한 부부가 북쪽에서 38선을 넘어 남으로 내려오다 그만 소련군에게 잡히고 말았습니다. 소련군들은 아내만 데려가고 남편은 총으로 위협하며 쫓아 버렸습니다. 남편은 살기 위해 홀로 달음질치다 순간 아내가 생각나 발길을 멈췄습니다. <다시 돌아가 아내를 구해야 한다!> 그러나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고 숲 저 편에서는 잠시 아내의 비명소리가 들렸으나 이내 잠잠해지고 말았습니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남편의 머릿속은 몹시 복잡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죽지는 말아다오!> <아니, 차라리 죽어라!> <불쌍하다!> <더럽다!> 그 짧은 시간에 온갖 상념이 다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얼마나 흘렀을까 옷이 찢기고 온통 흙투성이 피투성이가 된 아내가 흐느적거리며 유령처럼 남편 앞에 나타났습니다. 남편은 뛰어가 아내를 끌어안고 목 놓아 울었습니다.
그렇게 간신히 목숨을 구하고 겨우 남쪽으로 내려와 거처를 마련한 다음부터 남편의 아내 고문이 시작됐습니다. 남편은 날마다 똑같은 소리로 아내를 추궁하고 아내는 벙어리라도 된 듯 아무런 말이 없었습니다. <몸을 버렸어? 아니야? 어서 대답해!> 아무런 쓸 데도 없고 잘잘못의 문제도 아닌 걸 추궁하며 남편은 날마다 밤마다 그렇게 아내를 못살게 굴었습니다. <차라리 죽어버리지, 강간을 당해? 소련놈들은 죽은 시체도 강간한다더냐? 세 놈 다 했어?> <더럽다! 퉤! 퉤!> 그 해 가을 초입 아내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어느 월남 작가가 쓴 <어떤 强姦>이라는 단편인데 오래 전에 읽은 내용이라 대충 적어봤습니다. 그 부부는 비운의 사슬에 묶여 함께 희생된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그들 부부만의 시비거리가 아니었습니다.
남편인들 왜 그걸 몰랐겠습니까? 우리의 역사는 늘 그래왔습니다. 언제든 강간당할 수 있는 실로 위태로운 역사였습니다. 그럼에도 법과 도덕과 종교는 항상 개인의 죄만 묻고 벌했을 뿐 시대의 희생자들에 대한 포용과 용서에는 인색했을 뿐 아니라 또 재기의 길을 열어주는 배려에도 무심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강간당한 자를 정죄하고 배제하는 일이 아니라 강간한 자를 색출하고 강간자들을 양산하는 시대와 그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혁파하는 일입니다.
주님이 당시 유대 사회의 죄인 계급이었던 창녀, 세리, 불치병자들을 무조건 용서하시고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친구로 지내신 것은 그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사회적 아픔을 깊이 이해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은 그들을 단순히 종교적 윤리적 측면에서만 보신 게 아니고 사회적 역사적 구조적 측면에서 보셨다는 얘기입니다.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간음한 여인에 대해서도 1차적으로는 그 시대의 구조악을 물으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치라!> 그러나 개인적인 허물도 놓치지 않으셨기에 <나도 너를 용서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셨던 겁니다.
오늘이 6.25 67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장미의 가시만큼이나 아픈 기억이 많은 우리 민족의 모진 상처, 따뜻한 마음과 사랑으로 보듬고 채워가야겠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두 번 다시 그런 전쟁의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뜨겁게 기도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