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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8n] 평화 (엡 2:14-18)

20170618n

엡 2:14-18

평화


(엡 2:14-18, 개정)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4절 상반절입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주님이 우리의 평화시라는 말씀인데, 화평은 히브리말로 샬롬이고, 헬라어로는 에이레네입니다. 사사기 6장 24절에서는 여호와 샬롬이라는 말씀이 나오고, 히브리서 13장 20절에는 평화의 하나님이란 표현이 나옵니다. 주님이 산상수훈에서 ‘화평케 하는 자, 평화를 만드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가 평화이시기에 평화를 도모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라는 겁니다. 


오전예배 때 자유라는 개념도 그렇습니다만, 평화라는 말도 자칫하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말이 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관계적인 개념으로 이 말을 파악해야 비로소 그 실체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자유도 평화도 관계적 개념이란 말입니다. 평화에는 그 대상이 있어서 마치 둘 사이의 막힌 담을 헐 듯 상대와 소통할 때 진정한 평화가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평화는 누구와의 관계에서 이해해야 할까요?


먼저는 하나님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나 사이에 화해하고, 막힌 담을 헐면, 진정한 평화가 이룩됩니다. 하나님과의 평화가 내가 이 땅에서 추구하는 모든 평화의 근본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불편하면 다른 모든 관계도 망가지고 맙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아담이 범죄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평하지 못하니까 하와와의 관계도 깨지고 맙니다. ‘하나님이 제게 주셔서 함께 살게 한 여자가 나로 하여금 선악과를 범하게 했다’는 게 아담의 말입니다. 또한 자연과의 관계가 깨지고 맙니다. 그때부터 자연이 타락하기 시작합니다. 계속해서 가인과 아벨의 형제관계도 파탄 나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다른 모든 관계가 정상화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평하도록 잘 관리하고, 최선을 다해 아름답게 보존해야 합니다. 


다음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입니다. 현대인의 가장 심각한 병이 분열증입니다. 분열은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소외라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소외는 결국 자신에 대한 회의, 불신, 하여간 자신과의 불화에서 옵니다. 자기 자신을 긍정하지 못하고 용납하지 못하고 믿지 못해서 날마다 자학하고 비관합니다. 자신에 대한 불만과 불신에 가득 차서 늘 짜증과 회의와 초조함 속에서 삽니다. 자신이 불만스럽고 증오하다보면 자살까지 이르고 맙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화해해야 합니다. 자신을 용납하고 긍정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과 잘 지내야 합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에는 이웃 사랑 이전에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과 사랑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이웃 사랑의 기준이 자기 사랑입니다. 자기와의 화평, 화해가 이웃 사랑, 이웃과의 평화에 전제가 모범, 기준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긍정하고 용납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웃과도 화평할 수 없습니다. 이웃을 긍정하거나 수용하거나 용서하고 사랑할 수 없습니다. 자기와 잘 지내십시오. 자기와 화해하십시오. 자기 자신을 용납하고 사랑하십시오. 언제까지 자신을 미워하고 자신을 소외하며 분열 가운데 사실 겁니까? 


그 다음은 이웃과의 화해입니다. 우리는 이웃과 잘 지내지 못합니다. 이웃과의 관계에서 평화가 실종된 상태입니다. 모든 인간관계가 불안하고 위태롭기 짝이 없습니다. 화평보다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불화가 나와 이웃 사이에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북한 동포들이 있습니다. 오늘이 북한선교주일이고, 다음주일이 6.25 66돌입니다. 우리는 남북이 형제자매인데 지난 70년 동안 가인과 아벨처럼, 야곱과 에서처럼 서로 증오하며 오늘까지 살아왔습니다. 어떻게든 이것을 풀어야 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미래나 번영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독일처럼 우리도 교회가 앞서서 남북 화해와 평화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도 취해야 합니다.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평화를 위해 부름 받은 평화의 사도요 peace maker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떤 말로 치장한다 해도 본질상 죄의 종들이기에 peace보다는 trouble maker입니다. 정치가라고 예외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진정한 피스 메이커입니다. 교회가 남북 화해와 통일의 문제를 절대 도외시하면 안 됩니다. 이 문제를 정치인에게만 맡겨 두지 맙시다. 


자연과의 화해입니다. 인간은 타락하고 범죄 하는 과정에서 자연과 적대관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자연은 원래 인간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요, 인간 생존의 요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서로 천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인간은 끊임없이 자연을 철저히 유린해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자연이 반격을 시작해왔습니다. 자연에게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자연은 인간의 영원한 이웃이고 영원히 함께 해야 할 공동 운명체입니다. 자연은 인간의 횡포의 대상이 아니라 영원한 반려입니다. 우리는 인간만 구원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연도 사랑하시고 구원하십니다. 그게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그러므로 자연이 지금도 탄식하며 어떻게든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로마서 8장에 보듯 제대로 된 피스 메이커, 하나님의 아들들이 출현해서 자연과 화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성도라고 하지만 아직도 자연의 기대에는 한참 미치지 못합니다. 아무튼 자연과의 평화와 화해 없이는 절대 인류의 미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자기 자신과 이웃과 자연과의 평화를 도모하고 화해하고 화평해야 할 막중한 사명과 과제를 지닌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여기에 최선을 다하는 평화의 전사들이 됩시다. 그래서 모두가 영원한 평화의 나라인 천국에서 평화를 누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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