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70611m] 왜 스데반인가? (행 7:54-60)

20170611m

행 7:54-60

왜 스데반인가?


(행 7:54-60, 개정) [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제가 스사모 회장, 스데반 팬클럽 회장입니다. 아직 회장뿐이지만 제가 회장입니다. 모세나 엘리야, 바울 같은 수퍼 스타들은 팬이 많습니다만, 스데반은 저 혼자입니다. 저는 정말 스데반을 존경하고 사랑하고 부러워합니다. 훗날 천국 가면 반드시 스데반부터 면회할 겁니다. 


스데반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2000년 기독교사의 최초 순교자입니다. 많은 분이 야고보를 꼽지만 그는 사도 가운데 가장 먼저 순교한 사람일 뿐, 교회사적 첫 순교자는 스데반입니다. 스데반은 사도행전 7장에 나오고, 야고보 사도는 사도행전 12장에 나옵니다. 야고보는 제2호 순교자입니다. 


대체 스데반은 어떤 사람이었기에 주님이 그를 기독교사의 첫 순교자로 택하셨을까요? 그는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6장 3절을 보면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남의 칭찬을 받는 사람, 5절을 보면 일곱 집사 중 수석 집사였습니다. 8절을 보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많은 표적을 행하던 사람, 15절을 보면 그 얼굴이 천사처럼 빛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대단한 설교가였습니다. 사도행전 7장 2절 이하 53절까지 보면, 그가 산헤드린 공회에 끌려가 심문 당하다가, 거기서 그는 설교를 합니다. 그 내용과 기승전결이 가히 최고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사도행전에는 베드로, 바울의 설교도 나오지만 스데반의 설교가 가장 돋보입니다. 


베드로가 한창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하루에 3천, 5천씩 회개하도록할 때, 스데반은 산헤드린에 끌려가 최고의 설교를 하지만, 단 한 명의 회심자도 얻지 못하고 돌에 맞아 죽습니다. 주님은 첫 순교자를 12사도 가운데서가 아니라 일곱 집사 가운데서 뽑습니다. 사도들 가운데는 첫 배신자, 자살자만 배출했을 뿐입니다. 그는 최측근 사도가 아니라 집사였던 스데반을 순교의 첫 제물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이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성령충만, 지혜, 믿음, 은혜, 권능으로 볼 때 당시로서는 스데반보다 더 준비된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순교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스데반만큼 순교자로서의 소양이나 자격을 갖춘 이가 없었기에 그가 제1호 순교자가 된 겁니다. 본문 55절 이하입니다.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주님이 돌에 맞아 죽어가는 스데반의 순교현장을 차마 앉아 보실 수 없어 벌떡 일어나 내려다 보셨습니다. 59절과 60절도 보십시오.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이것은 주님이 십자가상에서 드렸던 최후 기도인데, 스데반도 주님 기도를 그대로 드리고 있습니다. 스데반도 주님처럼 죽었습니다. 


이런 스데반의 순교에 뜻밖에도 깊이 연루된 사람은 바울입니다. 58절입니다.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8장 1절 상반절도 보십시오.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사울이 스데반 살해의 주동이었다는 겁니다. 스데반과 사울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순교자와 처형자로 만납니다. 스데반의 피를 본 사울은 이때부터 더욱 호전적으로 날 뛰며 기독교 박멸의 선봉장이 됩니다. 8장 1절 하반절 이하입니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그리고 9장에 가면 사울이 믿는 자들을 색출해 처형하기 위해 지금 오랜 내전으로 수십 만의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 곧 다메섹으로 가다가 그 도상에서 극적으로 주님을 뵙고 전격 기독교로 전향하는 초유의 회심 사건이 발생합니다. 사울이 회심하는 대목입니다. 9장 1절 이하입니다.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사울이 극적으로 회심한 후에 제일 먼저 한 일이 개명부터 합니다. 큰 자라는 뜻의 사울을 작은 자라는 뜻의 바울로 바꿉니다. 기고만장, 안하무인이었던 사울에서 작은 자인 바울로 살겠다는 결단입니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만삭되어 나지 못한 자, 덜뻘어진 사람이라고 자칭했습니다. 또한 죄인 중의 괴수라고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력을 다 똥오줌처럼 내버린다고도 했습니다. 그는 유대교 시절에는 극단적으로 교만했던 사람이 기독교로 개종한 후에는 극단적인 겸손의 화신으로 살았습니다. 이것은 바로 그가 스데반을 죽인 전력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가 과거 유대교 전사로 살던 시절에 스데반을 죽인 아픔을 그는 평생 지고 살았습니다. 


우리는 그토록 은혜가 충만하고 기사와 표적에 능했던 스데반이 그렇게 허무하고 비참하게 돌에 맞아 죽을 수 있단 말인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돌에 맞아 죽는 일에서 구해주셨어야 옳지 않습니까? 저도 처음에는 스데반의 순교에 실망했었습니다. 성령충만해도 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아무리 기사와 표적에 능해도 돌 맞으면 죽는 사실은 변함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돌을 다 맞게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승리요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지독한 역설이지만 그것은 사실입니다. 우리가 겪는 시련, 아픔, 고난, 병마와의 싸움이 어떤 의미로든 우리에게 필요하고 약이 되고 복이 되기에 하나님이 허락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해가 되거나 저주가 되면 그 어느 것도 우리에게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덕이 되기에 우리에게 고난을 겪게 하시고, 남의 욕을 먹게 하시고, 돌을 던지면 맞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비참하게 목숨을 잃은 스데반의 최후도 결코 무의미한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으로 2000년 기독교사의 위대한 인물 바울이 나온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데반의 순교가 사도행전을 가능하게 했고, 초대교회의 밑거름, 2000년 기독교사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큰 능력을 곧 돌에 맞아 죽을 사람에게 왜 주셨을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정말 그런 능력이 필요했던 사람은 스데반이었습니다. 능력과 재주는 자기 이름을 날리라고 주신 게 아닙니다. 십자가를 잘 지고, 주님의 영광을 잘 드러내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라고 주신 은사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순교하라고 주신 재능이요 은사입니다. 스데반은 자기가 가진 많은 능력과 재능을 제대로 펼쳐 보지도 못한 체 아깝게 죽은 사람이 아니라 가장 복 받은 사람입니다. 가장 성령이 충만할 때, 가장 지혜로울 때, 가장 능력이 있을 때, 가장 영안이 열려 주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신 것을 볼 때,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셨습니다. 스데반보다 아름다운 최후를 맞은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게 절정일 때 냉큼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습니다.


바울은 어떻게 죽었습니까? 바울 역시 순교했습니다. 바울은 훨씬 더 힘들고 고된 길을 한참 가다가 순교합니다. 바울도 순교했지만 죽도록 고생하다가 순교합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순교하고, 바울은 여러 해 로마 감옥에 갇혀 지내다가 네로에게 참수를 당합니다. 그가 갇혔던 감옥에서 나와 2,30미터 떨어진 곳에서 목베임을 당합니다. 목이 잘려나간 바울의 머리가 크게 세 번 튀었다고 합니다. 그때마다 거기에 샘이 솟았다 하여 지금은 거기를 <트레 폰타나>, 곧 세 우물이라고 합니다. 그의 시신은 오스티안 거리에 살던 루치나 부인에 의해 장례가 치러집니다. 바울이 처형된 폴레 타운타나 형장에는 바울 순교기념 교회가 섰습니다. 왼쪽 벽면에는 바울의 순교 장면이 부조되어 있고, 오른쪽 벽에는 베드로 순교 장면이 부조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순교자들을 기억합시다. 순교자들의 믿음과 희생을 기리며 계승합시다. 우리가 그들의 후예들입니다. 그들의 치열한 믿음과 주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오늘 우리에게 깨달음과 영적 도전과 소중한 믿음의 자산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