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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4m]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창 3:17-19)

20170604m

창 3:17-19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


(창 3:17-19, 개정)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세기 1장과 2장을 보면 천지창조의 과정이 나오는데, 하나님이 다른 피조물은 말씀으로 창조하시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창세기 1장 26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 2장 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말씀이 아니라 흙으로 지으십니다. 히브리말로 흙과 사람은 어원이 같습니다. 흙은 <아다마>이고 사람은 <아담>입니다. 본문 19절 하반절입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이것은 허무를 노래하자는 게 아니고 인간도 자연이라는 것입니다. 흙이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은 흙입니다. 동의보감에 나오는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말은 우리의 전통 사상이자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성경은 늘 아담과 아다마의 운명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맞물려 있다고 합니다. 그 둘은 공동운명체라는 것입니다. 본문 17절도 보십시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절 상반절도 보십시오.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아담인데, 왜 땅이 저주를 받습니까? 실제 이때부터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기 시작했고, 누구도 땀 흘리지 않고서는 소산을 얻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텃밭을 가꿔보신 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심은 적도 없는데 채소보다 풀이 훨씬 더 잘 자랍니다. 한여름에 한창 자랄 때는 무서울 정도입니다. 그게 다 인간의 죄 때문에 땅이 저주를 받은 결과라는 것입니다. 노아 때도 그렇습니다. 창세기 6장 5절 이하를 보십시오.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사람의 죄가 세상에 가득하여 하나님이 사람 지으신 것을 후회하셨다면, 사람들만 쓸어버리실 일이지 왜 가축과 공중의 새까지도 다 멸절하겠다고 하십니까? 창세기 6장 17절도 보십시오.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하나님이 왜 이렇게 하시겠다고 하십니까? 


처음부터 자연과 사람, 아다마와 아담이 둘이 아니고 하나여서 그렇습니다. 신토불이(身土不二)여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타락하면 자연도 타락하고, 사람이 저주를 받으면 자연도 함께 저주를 받습니다. 바울의 사상도 마찬가집니다. 로마서 8장 19절 이하입니다.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바울은 한 송이 장미꽃에서 자연을 예찬한 게 아니라 그 한 송이 장미꽃에서 자연의 비명소리를 들었습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쓴 때는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입니다. 그때 무슨 오염이나 생태학적 위기라는 개념이 있었겠습니까? 모든 자연과 환경이 그야말로 원시적인 모습 아니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바울은 자연이 하나님 자녀들의 나타남을 고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구약 창세기로부터 온 사상입니다. 요즘은 우리가 생태학적 파국 속에서 사니까 공감이 가겠지만, 바울 시대 사람들은 바울의 이런 논조를 이해하지 못했을 겁니다. 흙에서 온 아담이 죄를 짓자 흙도 함께 저주를 받아 지금도 하나님의 자녀들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자연도 새로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연은 인간이 타락하면 할수록 더 황폐해지고, 환경문제는 더욱 심각한 파국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이 인간의 운명과 맞물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귀에는 들리지 않습니다만, 지금도 하나님의 귀에는 자연의 비명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립니다. 영의 귀가 밝았던 사도 바울도 이미 2000년 전에 들었는데, 하물며 하나님이야 어떻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만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고, 위하신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오해입니다. 그것은 아전인수식 이해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사람만이 아니라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만 아니라 자연도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사람 중심으로만 성경을 해석해 적용해 왔습니다. 창세기 1장 28절만 해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지금까지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가 자연의 정복자가 되라고 이해해왔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말씀은 관리하고 가꾸라는 뜻이지 자연에 대해 폭군이 되라는 뜻이 아닙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좋았더라는 상태를 지키고 보존하라는 뜻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인간 못지않게 자연도 사랑하십니다. 노아의 방주를 보십시오. 축구장 크기의 유조선처럼 생긴 배인데, 내부가 3층이기에 연면적은 축구장 세 배입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구원받은 사람은 노아 8식구뿐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이 120년간이나 그 큰 배를 건조하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그 큰 배를 통해 자연도 구원하십니다. 당시 노아의 방주 1, 2층은 각종 동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3층에는 노아 가족의 양식과 짐승의 사료가 적재되어 있었고, 그 한켠에 노아 가족의 거주 공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 가족뿐 아니라 자연도 함께 구원하십니다. 주님은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왜 새를 보라고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너희들 못지않게 저 날아가는 새도 먹이고 입힌다는 사실을 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자연 사랑을 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 허락 없이는 절대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관리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카락도 다 세고 계시지만, 이름 없는 새 한 마리의 깃털도 다 세고 계십니다. 


자연은 숭배의 대상도 아닙니다만, 절대 파괴나 학대, 약탈의 대상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들을 잘 보호하고 지키고 사랑하라고 당부하며 명령하신 우리의 영원한 이웃입니다. 인간의 천적이 아니라 저주도 축복도 구원도 심지어 영생까지도 함께 할 우리의 영원한 반려입니다. 우리는 훗날 주님 재림으로 성취될 영생의 세계를 인간 중심으로 해석합니다만, 성경은 자연 중심으로 말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묘사합니다. 이사야 11장 6절 이하입니다.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요한계시록 22장 1절 이하입니다. “[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여러분, 장차 도래할 새 하늘과 새 땅은 우리도 부활체로 거주하는 완벽한 곳이겠지만, 자연도 그렇게 거주하는 곳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영원히 살 세계는 자연이 배제된 곳이 아닙니다. 인간의 죄 때문에 자연이 저주 받았다는 말씀이나 지금도 자연이 신음하며 인간이 거듭나기를 바라고 있다는 말씀을 진지하게 새겨 들읍시다. 더욱 자연에 대해 책임적으로, 따뜻한 이웃으로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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