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권정생 10주년


<강아지 똥>, <몽실 언니>의 작가인 권정생은 우리나라 아동문학계의 성자로 일컬어지는 분입니다. 전신 결핵이란 천형을 지고 칠십 평생 외롭게 가난하게 고통스럽게 살다 지난 2007년 5월 17일 <어매! 어매!>하며 늘 그리워하던 어머니를 부르다 그 어매가 계신 천국으로 떠난 분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슬픈 동화만 쓰겠습니다. 눈물이 없다면 이 세상은 살아갈 가치가 없습니다. 산다는 건 눈물 투성이입니다. 인간이란 한순간도 죄짓지 않고는 살 수가 없는데, 어떻게 행복하고 즐거울 수만 있겠습니까...! 결국, 또 울 수밖에 없습니다.>


권정생은 1937년 일본 도쿄 혼마치 빈민촌에서 태어나 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 귀국, 외가가 있는 경북 청송에서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합니다. 그때부터 그는 각 처를 떠돌며 나무장수, 고구마 장수, 담배 장수, 재봉틀 상회 점원 등을 하는데 이 시절 신문연재 소설이며 시장 바닥의 삼류 대중잡지 등을 닥치는 대로 읽으면서 글과 문학에 눈을 뜨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오랜 떠돌이 객지 생활은 그 19세의 문학청년에게 몹쓸 병을 안겨다 줍니다. 늑막염과 폐결핵이 마침내는 신장 결핵과 방광 결핵으로 번졌고 어머니는 아들의 병구완을 하다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 후 권정생은 시집갈 나이가 된 여동생과 늙은 소작농 부친께 짐이 될까 집을 나와 대구와 상주, 점촌, 문경 등지를 전전하며 거지로 사는데, 1967년 그 꺼져가는 생명을 쉴 수 있도록 받아 준 곳이 바로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에 있는 조그만 함석지붕의 <일직교회)였습니다. 그는 그때부터 예배당 문간방에서 살며 어두움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뎅그렁, 뎅그렁>하며 종을 울리는 <종지기>가 됩니다. 스물아홉 살부터 16년 동안 일직교회 문간방에서 종기기로 산 그는 교회의 타종이 차임벨로 바뀌면서 교회 뒤 언덕 아래에 다섯 평짜리 흙집을 짓고 일직교회 집사로 봉사하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일직은 안동시에서 오십 리 길, 약 20km정도 떨어진 작은 시골 마을입니다. 마을 뒷켠 작은 개울가에 자리한 그의 남루한 오두막은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가슴속에서 뭔가가 울컥 솟구칠 만큼 쓸쓸하고 먹먹하기 짝이 없습니다. 안동에 가면 선산과 함께 으레 들렀다 오는 제 마음의 성지 권정생 생가.


가장 그늘진 음지에서 일생 병고를 지고 살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그 영혼의 순수함을 잃지 않았던 분, 그런 순수한 영혼으로 아이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가장 깨끗한 언어로 동시를 쓰고 또 동화를 지었던 사람, 이 땅의 문인들, 아동문학을 하는 이들이 가장 존경한다는 작가, 말과 삶과 글이 온전히 하나였던 분, 가장 외롭고 가장 아프고 가장 가난하게 살았던 청빈의 화신 같았던 분, 이름 없는 시골 교회 종지기로 살았지만 이 시대 우리 모두의 참된 스승이었던 분, <몽실 언니>와 <강아지 똥>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최고의 작가로 호사스러움을 누리며 살 수도 있었으나 그런 것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여전히 가난하게 처절하게 살았던 사람, 한 번 선정되는 것만으로도 최소한 수십만 부에서 많게는 백만 부 이상도 팔린다는 MBC의 느낌표 선정조차 단박에 거절했던 작가, 절름발이 <몽실 언니>와 자신을 해체해 고운 민들레꽃을 피운다는 <강아지 똥>은 다른 이가 아닌 바로 권정생 작가 그 자신이었습니다.


유언장에서 <천국가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고 말한 그대로,  삼가 선생의 안식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