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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1m] 독신과 이혼에 대한 바울의 편지 (고전 7:7-20)

20170521m 

고전 7:7-20

독신과 이혼에 대한 바울의 편지


[7]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8]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9]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10]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11]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12]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13]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14]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15]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16]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17]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18] 할례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19]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20]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2015년 현재 우리나라 1인 가구 비율은 전체 가구의 27.2%입니다. 이것은 35%에 달하는 일본보다는 낮습니다만, 미국이나 캐나다와는 비슷한 수준입니다. 부부와 자녀 한둘로 구성된 가구가 32.2%, 그다음이 1인 가구이고, 2인 가구(부부)가 15.5% 수준인데, 이게 2019년부터는 역전됩니다. 1인 가구, 부부, 부부자녀 가구 순으로 재편된다는 겁니다.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이유는 젊은 독신자의 증가가 가장 큰 요인입니다. 우리나라도 고령화 사회이기에 고령층의 독신가구도 빠른 속도로 늘지만, 더 큰 요인은 젊은 사람의 1인 가구입니다. 젊은 사람의 1인 가구가 모두 독신주의는 아닙니다. 오히려 아직은 여러 여건 때문에 본의 아니게 독신 가구로 사는 게 더 많습니다. 우리나라도 갈수록 독신가구가 늘어나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옛날과는 인식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독신과 독신주의는 다릅니다. 독신주의는 무언가 나름대로 철학과 신념에 따라 혼자 사는 것입니다. 이런 젊은이들이 급격히 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가톨릭 사제와 개신교 목사 가운데 어느 쪽이 더 경건하고 종교적일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아무래도 사제 쪽일 겁니다. 결혼한 목사보다는 사제 쪽이 더 세속적이지 않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주님도 독신이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연애나 결혼을 했다는 주장은 몇몇 위경의 주장이거나 소설가 니코스 카잔카스키의 주제일 뿐입니다. 바울도 독신이었습니다. 그는 마치 독신주의의 전도사처럼 보입니다. 바울은 목사보다 오히려 사제 쪽에 더 가까운 사람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이 독신 문제에 어떻게 말씀하는지, 독신주의자처럼 보이는 사도 바울의 진의는 무엇인지를 고린도교회에 보낸 바울의 편지를 통해 확인해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 1절입니다.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이것은 고린도교회가 바울에게 질의한 혼인문제에 대한 답입니다. 얼마나 금욕주의적입니까? 7절 상반절도 보십시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모든 사람이 독신으로 살기를 원한다는 겁니다. 이어지는 8절도 보십시오.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8절은 더 노골적입니다. 반면에 혼인에 대해서는 아주 소극적이고 부정적입니다. 7장 2절입니다.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남편과 아내를 두는 이유를 음행을 피하기 위해서 라고 합니다. 9절도 보십시오.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이 구절도 심하기 그지없습니다. 결혼한 사람들은 다 불 같이 타오르는 정욕을 절제하지 못해서 결혼한 것입니까? 바울 자신은 정욕을 절제할 수 있어서 독신으로 산다는 것입니까? 


우리는 성경의 이런 대목을 만나면 난감해집니다. 처음부터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는 것인지, 사제처럼 금욕주의로 사는 것이 더 성서적이라는 것인지, 결혼한 목사들은 정욕을 참지 못해 결혼한 속물들이라는 것인지, 지금이라도 빨리 배우자와 헤어지는 것이 더 좋은지 헷갈립니다. 어떤 것이 고린도전서 7장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일까요? 여러분이 고린도전서 7장을 금욕주의나 독신주의나 고행주의 등으로 해석한다면, 그것은 오해입니다. 바울의 진의를 왜곡하는 것입니다. 


7절을 다시 보십시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바울은 개인적으로는 자기처럼 독신으로 살기를 바라지만, 중요한 것은 결혼이나 독신의 문제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모두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견해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은 이상형을 두고 있습니다만, 늘 이상형과 만나 결혼하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사가 그 사람의 결혼이나 독신을 결정하는 것이지, 자기가 독신을 주장한다고, 결혼을 주장한다고 그렇게 살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17절도 보십시오.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이어지는 18절 이하도 보십시오. “[18] 할례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19]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20]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24절도 보십시오.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할례도 좋고, 무할례도 상관없다고 합니다. 결혼을 해도 좋고 독신도 좋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은사를 존중해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살되 하나님과 함께 살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얼마든지 그 삶의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할례냐 무할례냐, 결혼이냐 독신이냐, 가톨릭 사제냐 목사가 더 경건하냐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습니다. 바울이 독신주의자였다거나 금욕주의자였다고 단정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 은사대로, 자기 소명대로 산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독신주의도 금욕주의도 없습니다. 성경에는 결혼도 독신도 둘 다 있습니다. 둘 모두 하나님의 은사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은사대로 살지 않고 탐욕을 부려 자기 팔자를 고치려 한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해마다 혼인은 줄고 이혼은 늘고 있습니다. 작년에도 결혼 대비 이혼율이 37%입니다. 100쌍이 결혼하면 37쌍이 이혼했다는 수치입니다. 5월은 사랑과 혼인의 달입니다. 오늘도 전국 예식장에서는 수많은 커플들이 예식을 올리고 있습니다만, 이미 그중의 37%는 결혼과 함께 이혼을 예약하고 있습니다. 이혼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어떤 것입니까?


주례자가 선언하는 구절인 마태복음 19장 6절입니다.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어떻습니까? 정말 그렇습니까? 맞습니다. 사람이 나누면 안 됩니다. 결혼은 창조의 섭리요 은사이기에 성경은 원칙적으로 이혼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본문 10절 이하도 보십시오. “[10]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11]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말라기 2장 16절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옷으로 학대를 가리는 자를 미워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의 기본 견해입니다. 사람들은 지금도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고 하거나 불행한 결혼보다는 행복한 이혼이 낫다며 지금도 하루에 300쌍씩 다투어 이혼합니다. 


그러면 성경은 어떤 경우에도 절대 이혼하면 안 된다고 합니까?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성경은 때로 불가피한 이혼을 인정합니다. 성경은 원칙상 이혼을 금하지만 예외를 두고 있습니다. 예외는 이런 경우입니다. 배우자가 나의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유린할 때입니다. 옛날 고린도교회에는 둘 다 예수를 안 믿었는데, 부부 중 하나가 기독교 신자가 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짝가정이 생긴 겁니다. 그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바울에게 질의했는데, 그에 대한 대답이 오늘 본문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배우자가 상대방에게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라고 압력을 넣습니다. 본문 12절 이하가 바로 그런 사례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럴 때는 이혼할 수 있다고 합니다. 본문 15절입니다.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만약 믿지 않는 배우자가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며 이혼을 강요할 때, 누구나 구애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도 내가 믿는 자인데 하는 양심상의 부담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주님 사랑을 배신하라는 것이기에 그때는 이혼이 아니라 순교적인 각오로 맞서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런 말이 자칫 안 믿는 배우자와의 이혼을 쉽게 생각하는 오류에 빠지게 할까봐 바울은 우선 좀 참고 견디라고 합니다. 16절입니다.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서둘러 이혼하기보다는 배우자의 구원을 위해 기도부터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 이혼한다고 해도 신앙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합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배우자의 탈선입니다. 성경이 부부관계를 깨는 가장 큰 이유로 이것을 듭니다. 주님도 마태복음 19장에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일단 배우자가 음행을 했다고 해도 일단 기다려 주라고는 하십니다. 호세아를 보십시오. 아내가 가출하고 바람을 피웁니다. 그때마다 호세아는 아내를 찾아 나섭니다. 이것이 신앙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음행만큼은 성경이 인정하는 정당한 이혼사유가 되기에 참고 견딜 수 없으면 이혼해도 괜찮다고 합니다. 따라서 배우자의 음행이 도저히 용납되지 않거나 또 아무리 기다려도 배우자가 돌아오지 않을 때 이혼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대단히 위태로운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문화가 우리를 전방위적으로 시험하고 위협합니다. 우리 중 누구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누구든 자기 관리에도 철저해야겠지만 배우자에 대해서도 관용과 이해가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배우자는 서로에게 큰 힘이 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가장 큰 짐, 아픔, 절망이 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함부로 가정을 깰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게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환상은 금물이라는 것이 성경의 경고입니다. 


결론입니다. 본문 17절과 20절입니다.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24절도 보십시오.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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