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10619n: 악령에 사로잡힌 세대(막 5:1-15)

2011년 6월 19일 주일오후예배
본문: 막 5:1-15
제목: 악령에 사로잡힌 세대

[1]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2]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3]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4]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5]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6]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7]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8]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9]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10] 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11]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12] 이에 간구하여 이르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13]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매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14]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여러 마을에 말하니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러 와서 [15]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우리가 잘 아는 본문입니다. 악령의 역사와 성령의 역사가 얼마나 분명히 대비되는지를 잘 말씀하는 본문입니다. 귀신들린 거라사인의 모습을 통해 악령의 역사가 어떤 것인지 확인하겠습니다.

우선 악령은 더러운 귀신입니다. 2절입니다.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8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악령이 임하면 말, 행동, 인격이 더러워집니다. 이것이 악령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악령에 쓰이면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오늘 본문도 악령에 사로잡힌 거라사인이 옷을 벗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에게서 악령이 떠나자 옷을 입습니다(15). 요즘은 거의 하의실종입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귀신이 쓰인 겁니다. 사회가 귀신에 쓰이면 천박해지고 뻔뻔해집니다. 더러운 귀신 때문에 그렇습니다. 영적인 현상, 문화 자체가 아주 천박해집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은 무턱대고 세상 문화에 타협하면 안 됩니다. 그야말로 영안이 열려야 합니다. 이 사회 현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영안 말입니다. 이 문화가 어디서 온 것인지 배후가 무엇인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하여간 악령은 근본적으로 더러운 귀신이기에 이 귀신에 붙잡힌 사회는 반드시 치사하고 더러운 모습을 보입니다.

악령은 사람을 끊임없이 방황하게 합니다. 5절입니다.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집에서 살아야 하는데 무덤 사이에서 소리지르며 헤매고 있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의 또 다른 특징은 헤매고 다니며 의미없는 소리를 지르고 다닙니다. 미친 개처럼 말입니다. 악령에 쓰이면 그 인격과 삶이 더러위지고 천박해질 뿐만 아니라 밤낮 산 사람이 무덤 사이를 다니며 괴성을 지르고 다닙니다. 요즘 얼마나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까? 무덤 사이를 헤매고 다니며 뜻도 모를 소리를 지르고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특히 청소년들 말입니다. 그 배후가 있습니다. 우리 문화 자체가, 이 시대의 모든 가정이 악령의 지배를 받기 때문입니다. 평온한 정서를 가지고 안정적으로 살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집을 뛰쳐나가 헤매고 다니게 만듭니다. 

뿐만 아니라 악령은 끊임없이 자해하게 합니다. 거라사 광인을 보십시오. 무덤 사이에서 소리지르며 돌로 자기 몸을 해치고 있습니다. 이것도 귀신 들린 사람의 특징입니다. 악령은 자기도 해치고 남도 해칩니다. 악령은 어떻게든 사람을 파멸하려고 합니다. 이게 악령의 사명입니다. 악령은 절대 행복하게 살지 못하게 합니다. 얼마나 섬뜩한지 모릅니다. 밤낮 소리지르며 돌로 자기 몸을 해칩니다. 현대인은 담배, 술, 마약, 도박으로 자기 몸을 자해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병적으로 자기를 해칩니다. 이게 자해행위인 것을 알면서도 마귀가 조종하기에 그만 두지를 못합니다. 끝까지 가는 겁니다. 망할 때까지 말입니다. 우리 사회가 마귀에 쓰여서 그렇습니다. 우리 사회 배후에 더러운 귀신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악령은 굉장히 종교적입니다. 6-7절입니다. “[6]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7]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그는 누구보다 주님을 먼저 알아봅니다. 또한 정확한 호칭으로 말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악령은 다 압니다. 성경도 훤히 꿰고 있습니다. 그런데 악령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라고 해놓고, 순종하거나 결단하지 않고 당신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하는 겁니다. 악령은 항상 이렇습니다. 그런데 막판에 가서 당신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묻는 겁니다. 우리 사회와 대중이 마귀에 쓰였습니다. 배후에 악령이 있습니다. 악령은 항상 양의 탈을 쓴 이리로 나타납니다. 얼마나 많은 이단들이 우리를 미혹하고 있습니까? 신천지를 보십시오. 이제는 큰 교회를 드나들고 있습니다. 교회 게시판에다가 신천지를 바로 알자고 글을 올립니다. 영락교회, 연동교회는 초비상입니다. 

여러분, 이게 더러운 악령의 정체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은 어떤 분입니까? 무엇보다 성령은 사람을 깨끗하게 합니다. 악령은 성경이 더러운 귀신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거룩하고 깨끗한 신입니다. 그래서 성령에 사로잡히면 그 인격에서 향기가 납니다. 그러므로 악령에 붙잡히면 악취가 나고, 성령에 붙잡히면 우리 인생이 행복해 집니다. 어떻게든 성령에 사로잡혀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삶이 고상해집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은 사람을 안정시킵니다. 악령은 사람을 헤매게 하지만, 성령은 온전하게 하고 정신을 차리게 합니다. 그래서 성령에 붙잡히면 분수를 알고 부끄러움을 알게 합니다. 악령은 모든 것을 병들게 하고 파괴하지만, 성령은 회복시킵니다. 세우고 살게 합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충만하면 몸도 마음도 영혼도 온전하게 됩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살게 합니다. 주님과 함께 살게 합니다. 악령은 주님이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란 것을 다 알면서도 주님과 자기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묻습니다. 마가복음 5장 18절입니다.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이렇게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은 주님과 함께 살기를 바랍니다. 악령이 떠나고 성령에 사로잡히니 주님을 따르길 원합니다. 

우리 각 개인은 성령으로 온전케 해야 합니다. 성령만이 살 길입니다. 우리 사회 배후에서 우리 사회를 조종하는 악령을 이겨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고 성령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모두가 온전하게 살 수 있습니다. 단정하게 옷 입고 부끄러움과 염치를 갖고 살 수 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여러분과 가정이 복 되게 사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