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우리나라와 유대 민족은 여러 면에서 참 닮았습니다. 

역사적으로, 지정학적으로, 심지어는 분단사까지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일제로부터 1945년에 해방됐는데, 유대 민족도 1948년 독립하여 나라를 재건했습니다. 우리가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함께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분단됐는데 유대 민족도 BC 932년 8월 15일, 북위 32도선을 경계로 남북으로 분단됐습니다. 우리나라가 남으로 일본, 북으로 중국, 러시아 사이에 끼어 늘 눈치만 보며 기죽어 살았듯이 유대 민족도 남쪽에는 애굽, 북쪽에는 앗수르와 바벨론 같은 대국들이 있어 항상 그들에게 당하거나 경계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BC 721년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망할 때 남왕국 유다는 재빨리 애굽에 줄서기를 해 겨우 목숨을 연명합니다. 그러나 애굽의 국력은 갈수록 쇠약해져간 반면 신흥 강국 바벨론의 기세는 나날이 높아져만 갔습니다. 그럼에도 국제 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했던 유다 왕 시드기야는 여전히 친애굽 정책만을 고집하다 결국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공격을 당합니다. 느부갓네살은 유다를 마치 고양이가 쥐를 다루듯 했습니다. 단번에 멸망시킬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기보다는 심심하면 한 번씩 쳐내려와 유다를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고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며 금으로된 성전의 기물들을 약탈해 갔습니다. 그때마다 느부갓네살은 너희가 믿는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는 듯 마음껏 조롱하고 온갖 모욕을 다했지만 유다는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유다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손을 놓고 각자도생의 길을 찾아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예레미야는 유다의 패망을 예언했다는 이유로 시드기야 왕에 의해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촌 하나멜이 감옥으로 찾아와 자신의 아나돗 밭을 사라고 합니다. 나라 전체가 곧 바벨론의 손아귀에 들어갈 게 뻔한 전쟁통에 밭을 사라니... 그러나 놀랍게도 예레미야는 사촌 하나멜의 강매에 응해 은 17세겔을 주고 그 밭을 삽니다. 아마도 하나멜은 속으로 <세상 물정 모르는 이 바보!>하며 욕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누가 봐도 그건 미련하고 어리석은 짓이었으니까요. 물론 예레미야 역시 그걸 훗날 누구에겐가 되팔아 한 몫 잡겠다는 투기 심리로 그런 미치광이 짓을 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 땅을 결코 버리지 않으실 거라는 믿음을 실천적으로 고백한 것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이미 <사람들이 이 땅에서 다시 집과 밭과 포도원을 사게 되리라>(렘 32:15)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터였습니다. 믿는 자들이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도무지 돈이 되지 않을 듯 보이는 무망한 일에 은 17세겔을 아낌없이 쏟아 붓는 존재들입니다. 모두가 탐을 내며 서로 사려고 몰려드는 땅이 아니라 오히려 다들 쓸모가 없다며 버리고 떠나는 땅을 사려고 자신의 전 재산을 투자하는 황당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세월이 바뀌고 시대가 달라지면 그 땅의 당당한 주인으로서 가난한 이웃들에게 집과 밭과 포도원을 나눠주는 꿈을 꾸며 그런 미래를 내다보는 자들입니다. 모두가 팔고 떠나는 분위기가 대세인 와중에도 예레미야가 굳이 사촌 하나멜의 밭은 산 것은 사실 밭이 아니라 불굴의 희망을 산 것입니다. 언젠가는 하나님이 아나돗의 사래 긴 밭을 기쁨으로 갈게 하실 거란 비전을 본 것입니다. 

이번 대선은 전쟁의 소문에도 불구하고, 주변 강대국들이 저마다 우리를 윽박지르며 위협하는 와중에도 불구하고 아나돗의 밭을 사는 행위에 다름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더 이상 밭이 아니라 우리의 희망입니다.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대한민국의 희망을 사는 것입니다.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면서도 끝끝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예레미야처럼 우리도 그렇게 아나돗의 밭을 사는 것입니다.

내일 모레 투표장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