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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20170430m] 네 앞에 열린 문을 두노라! (계 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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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20170430m</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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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paragraph:p0002 -->
<p class="p1"><span>계 3:7-13</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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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paragraph:p0003 -->
<p class="p1"><span>네 앞에 열린 문을 두노라!</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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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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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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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요한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1세기 말에 에게해라 일컫는 곳에 위치한 밧모섬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쓴 편지입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터키 지방에 흩어져 있던 소아시아 일곱 교회가 등장합니다. 일곱 교회가 요한계시록의 공동 수신자입니다. 이 일곱 교회 가운데는 책망만 들은 교회도 있고, 칭찬과 책망만 들은 교회도, 칭찬만 들은 교회도 있습니다. 칭찬만 들은 교회는 서머나와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본문 7절 이하를 보십시오.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정말 이보다 더 아름답고 희망적이고 복 있는 말씀은 없을 것 같습니다.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주님이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둔다’고 하십니다. 주님이 열어 주신 문은 어떤 문입니까?</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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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기회, 가능성, 희망, 축복, 구원, 천국의 문입니다. 누구도 그 문을 닫지 못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본문을 보면 열린 문뿐만 아니라 주님이 여러 가지 복을 더 약속하십니다. 9절을 보면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 알게 하겠다, 10절은 너로 하여금 혹독한 시련을 면하게 하겠다, 11절을 보면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겠다, 12절을 보면 네가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이보다 더 복 있는 말씀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교회도 바로 이런 복이 절실합니다. 주님이 우리 푸른교회 앞에도 누구도 감히 닫을 수 없는 희망과 기회, 은혜와 복,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주시기를 바라며, 빌라델비아 교회는 어떻게 그런 복을 받을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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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8절 하반절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그렇습니다. 1세기 당시 빌라델비아 교회는 가장 작은 능력을 가진 교회였습니다. 이 교회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 가운데 규모가 가장 작았습니다. 교회 구성원들도 사회적으로 약자요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작은 능력을 가진 교회라고 부르신 겁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로 여성들과 노예 중심의 교회였기에 그만큼 가난하고 초라했습니다. 그럼에도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며 현실이 고되고 힘들어도 최선을 다해 주님 말씀에 순종하는 교회였습니다. 특히 어떤 말씀에 순종했습니까? 10절 하반절을 보면 내 인내의 말씀에 순종했다고 합니다. 당시 주변에서 가장 크고 부요했던 라오디게아 교회를 보십시오. 그 교회는 칭찬은 없고 책망만 들은 교회입니다. 3장 17절입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부요해서 자부심이 대단했는데, 주님은 그들을 향해 네 가련함과 눈멂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또한 사데 교회도 보십시오. 3장 1절 하반절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주님의 혹평입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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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왜 이렇게 큰 능력을 가진 교회가 주님의 혹평을 받았습니까? 무엇보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주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제 편리한대로 제 욕심대로 믿으며 살았기에 책망을 받은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좇기 보다는 세상과 타협하며 세속적 욕구대로만 신앙생활을 했기에 책망을 받은 것입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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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우리 그리스도교와 타종교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세상 종교는 알라딘의 요술램프입니다. 램프를 문지르면 초능력을 지닌 마왕이 나옵니다. 초능력은 마왕이 지녔는데, 그 램프의 주인은 알라딘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램프를 문지르기만 하면 마왕이 소원을 다 들어줍니다. 나의 욕구를 위해 신을 부리고 최대한 이용하는 겁니다. 그래서 세상 종교는 내가 주체고, 내가 중심이고, 내가 주인일 뿐, 신은 내 요술램프의 마왕일 뿐입니다. 요술램프에서 나온 마왕이 알라딘에게 ‘주인님, 부르셨습니까? 제가 무슨 소원을 들어드릴까요?’라고 합니다. 마왕이 초능력을 가진 신임에도 인간인 알라딘에게 주인이라고 부릅니다. 이게 세상 종교의 본질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와 정 반대입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영원한 주체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영원한 주인입니다. 따라서 내 말, 내 소원이 아니라 주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자는 것이 그리스도교입니다. 내 맘에 맞고, 내게 아무리 절실하다 해도 주님 뜻에 맞지 않으면 가차 없이 접고 주님 뜻에 순종하는 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정수입니다. 신의 능력을 이용해 자기 소원을 이루자는 종교와 작은 능력만 지녔지만 어떻게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순종하는 종교가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그리스도교는 결코 착한 사람을 만들자는 단체가 아닙니다. 헌금 많이 해서 가난한 사람을 돕자는 구호나 자선단체도 아닙니다. 오직 나의 복을 위한 구복 집단도 아닙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이 그리스도교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그리스도교의 본질은 아닙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규모가 작고 능력이 적다하여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규모가 크고 능력이 많다 하여 하나님 말씀을 더 잘 지킬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초라했지만 주님이 보실 때는 가장 성실히 주님 말씀에 복종하는 가장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반면에 사데나 라오디게아 교회는 부유한 교회였고, 교세를 자랑하던 교회였지만, 주님이 보시기에 그들은 죽은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8절입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이것이 주님이 그들에게 내린 처방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야말로 우리가 벤치마킹해야 할 이상적인 교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도 작은 능력밖에 없지만 주님 말씀에 순종하는 교회가 됩시다. 특히 인내하라는 말씀을 잘 지키는 교회가 됩시다. 그러면 반드시 주님이 우리 앞에 복과 가능성의 문을 활짝 여실 것입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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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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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빌라델비아 교회는 8절 하반절 말씀처럼 끝까지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은 교회입니다. 당시 빌라델비아 교회는 전에 일제가 우리에게 강요했던 것처럼 황제숭배를 강요당했던 교회입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는 로마의 도미티아누스 황제 시대였습니다. 그는 특히 소아시아에 집중적으로 황제숭배를 강요했습니다. 그래서 이를 거부하던 교회는 혹독한 박해가 가해지던 시기였습니다. 교부 폴리캅은 사도 요한의 수제자였습니다. 그는 이때 빌라델비아 교회와 함께 칭찬을 들은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습니다. 그는 황제숭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결국 화형대 앞에 섰습니다. 지금이라도 예수를 부인하고 황제를 주라 부르면 살려준다고 하자, 폴리캅은 예수를 믿어 온 지난 86년간 주님은 한 번도 나를 모른다고 부인한 적이 없는데 내가 어찌 주님을 부인할 수 있겠냐고 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장렬한 순교를 합니다. 그때 다른 11명의 평신도도 폴리캅과 함께 순교하는데, 그들 가운데 10명이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였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비록 작은 능력을 가진 교회였지만 끝까지 주님을 배신하지 않고 소아시아 일곱 교회 가운데 가장 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교회입니다. 그러니 주님이 빌라델비아 교회를 높이 평가하신 것입니다. 그들 앞에 주님은 희망의 문, 구원의 문을 활짝 여셨습니다. 지금까지는 많은 박해와 순교자를 냈지만, 앞으로는 환난을 면케 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이 작고, 형편이 열악하다며 극심한 패배주의에 빠져 삽니다. 그러나 빌라델비아 교회는 지금 우리보다 훨씬 더 불리한 여건 가운데도 주님을 배신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았습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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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paragraph:p0018 -->
<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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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여러분, 창립기념주일을 맞은 우리도 빌라델비아 교회를 꿈 꿉시다. 빌라델비아 교회를 우리의 롤모델로 삼읍시다. 그래서 우리도 주님의 책망이 아닌 칭찬을 들으며 활짝 열린 문의 복을 누리며 사는 복 있고 건강한 교회가 됩시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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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br></p>
<!-- paragraph:p0021 -->
<p class="p1"><br></p>
<!-- paragraph:p0022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a href="https://www.youtube.com/embed/9_Re0u3luW8" title="미디어 원본"></a></sp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