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마음으로
읽기 설정
미리보기 인용
복사되는 내용은 인용 정보와 미리보기 주소다.
현재 미리보기 주소:
대선이 열흘도 안 남았는데 <투표할 사람이 없다>거나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어 투표하기가 싫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보통은 투표일이 다가오면 부동층이 줄어드는데 이번 대선은 갈수록 투표할 후보를 정하지 못한 부동층이 늘고 있다니 참 묘한 노릇입니다. 역대 최다 후보군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비전이나 정책보다는 오직 상대방을 흠집 내 그 반사이익을 챙기겠다는 치졸한 네거티브만 난무하는 탓입니다. 이번은 여느 때와 달리 현직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 이후 치러지는 선거인만큼 뭔가 종전과는 다른 기대가 있음에도 유권자들의 그런 욕구를 채워 줄 후보가 도통 안 보인다는 뜻입니다. 제발 이번에는 누가 덜 썩었는가 혹은 누가 덜 보기 싫고 덜 비호감인가가 후보 선택의 기준이 되지 않길 바래봅니다. 사실 저는 그동안 몇 차례 선거에서 꼭 누구를 뽑아야겠다거나 누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보다는 누구는 꼭 안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투표에 임했는데 그러다 보니 그동안 제가 찍은 후보들은 한결같이 다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선거야말로 정말 누구는 절대 뽑아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투표에 임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고, 또 그게 바로 <투표는 꼭 해야겠는데 누굴 찍지?> 하는 고민을 더 깊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하면 그동안 하도 많이 속아서 사실 이제는 누가 돼도 달라질 건 없다는 체념과 함께 상위권 주자들의 급조된 공약들도 다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냉소주의도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왕 한 표를 행사할 바에야 당선될 가능성이 있는 후보에게 투표하는 게 옳고, 낙선될 게 뻔한 후보에게 내 한 표를 던지는 것은 고의로 사표를 만드는 어리석은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때로 여론조사가 엉터리라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히 왜곡되고 조작되기도 한다는 사정 때문만은 아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선거란 어차피 한 명의 당선자와 여러 명의 낙선자를 생산합니다. 그렇다면 그 한 사람의 당선자로 하여금 여러 낙선자들을 지지한 유권자들의 뜻도 존중하도록 강요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당락에 연연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소신대로 한 표를 행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와 헌법 조문에도 불구하고 정말 국민이 주인 행세를 할 수 있는 기회란 결코 흔치 않습니다. 어쩌면 몇 년 주기로 실시하는 선거가 거의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칼 맑스는 <피지배자들에게는 몇 년에 한 번씩 자신들을 지배할 인물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며 민주주의의 선거 방식을 조롱했지만 이번 대통령 탄핵심판에서도 봤듯이 처음부터 아예 뽑지 않는 것이 잘못된 지도자를 중간에 몰아내는 일보다 훨씬 쉬운 일일진대 모두가 이번 투표에 꼭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최근 미국에는 전쟁을 부추기고 정당화하는 분위기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더 이상 말로만 엄포 놓지 않고 총 쏘는 일에 주저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하면서 전격 시리아를 공습하여 재미를 봤습니다. 추락하던 지지율을 반등시킨 것입니다. 지금 미국의 항공모함들과 핵잠수함들이 속속 한반도 주변으로 모여들며 전쟁의 북소리를 울리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핵실험을 장착한 채 기회를 노리고 있고, 중국과 일본은 모두 전투준비의 깃발을 올리고 있습니다.
참으로 엄혹한 순간에 맞은 비상한 대선입니다. 전쟁의 바람이 부는 거친 광야에서 평화의 기도를 올리는 심정으로, 이 위기의 시대를 구하는 일에 내 소중한 한 표가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모두가 꼭 투표장으로 나갈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