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02m] 비아 돌로로사 (막 15:16-23)
읽기 설정
미리보기 인용
복사되는 내용은 인용 정보와 미리보기 주소다.
현재 미리보기 주소:
20170402m
막 15:16-23
비아 돌로로사
[16]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18]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19]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20]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22]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23]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주님은 십자가를 지고 형장인 골로다로 출발하기 전에 이미 탈진 상태이셨습니다. 고난주간 목요일 저녁 겟세마네에서 체포되신 후 밤새 이리저리 끌려다니셨습니다. 처음에는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으로 끌려갔다가, 거기서 빌라도에게로 보내졌다가, 다시 헤롯 왕에게로 갔다가 다시 빌라도에게로 갑니다. 가는 곳마다 온갖 조롱과 모욕과 고문을 당하셨기에 성금요일 새벽 빌라도에게 십자가형을 선고받을 때는 이미 주님의 심신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16절 이하입니다. “[16]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18]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19]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20]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이것은 빌라도에게 십자가형을 선고 받은 직후 장면인데, 사실은 밤새도록 여기 저기에서 이런 일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로마법에 따르면 사형수는 자기가 달릴 형틀을 직접 지고 형장까지 가야 합니다. 비아 돌로로사는 사형수가 십자가를 지고 형장까지 행진해야 하는 죽음의 길, 최후의 길을 말합니다. 빌라도 법정에서 골고다까지는 약 1.5km 입니다. 그 도로 폭은 2m 밖에 안 됩니다. 게다가 골고다는 언덕이기에 오르막입니다. 사형수는 누구나 그 무거운 십자가 형틀을 직접 지고 그 좁고 긴 비아 돌로로사를 거쳐 골고다까지 가야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여러 번 쓰러지셨습니다. 그때마다 로마군인들의 무자비한 채찍이 가해졌습니다.
후대 사람들은 비아 돌로로사 전체를 14구간으로 나누었습니다. 주님은 다섯 번째 구간에서 쓰러지셨습니다. 그러자 백부장이 주변을 살펴 거기에 있던 건장한 흑인을 붙잡아 주님 대신 십자가를 지게 했습니다. 그가 바로 구레네에서 온 시몬이었습니다. 21절 이하입니다. “[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22]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구레네는 지금의 북아프리카 리비아를 말합니다. 2011년에 40년 간 권자에 있다가 쫓겨나 반군에게 살해당한 카다피가 리비아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면 왜 그 때 북아프리카 사람이 예루살렘에 있었습니까? 이 사람의 이름이 전형적인 유대식 이름입니다. 아마 그는 유월절을 앞두고 순례객으로 예루살렘에 왔던 것 같습니다. 마침 주님의 십자가 형이 있었기에 구경하다가 졸지에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된 겁니다. 처음에는 그도 매우 황당했을 겁니다. 구경하다가 졸지에 붙잡혀 사형수의 형틀을 지고 갔으니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그러므로 그가 지고 간 십자가는 본문 21절의 표현대로 억지 십자가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십자가는 다 그런 겁니다. 십자가를 즐겁고 기쁘게 지고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십자가는 십자가이기에 고통스럽고, 누구나 힘들고 수치스런 겁니다. 오죽하면 주님도 가능하다면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해달라고 했겠습니까. 주님도 십자가만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면 그것은 복 된 일입니다. 조선 제17대 왕 효종의 일화입니다. 왕이 민정시찰을 나갔는데 어떤 사람이 팔순 노모를 업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에게 묻습니다. 왜 노모를 업고 있는가? 예. 저의 모친의 평생 소원이 임금님의 용안을 뵙는 건데 소문을 듣고 30리 길을 걸어와 노모의 소원을 풀어드리게 되어 저의 마음의 큰 짐을 덜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효종이 그의 효심을 가상히 여겨 후한 상을 내립니다. 이후에 어떤 이가 그 이야기를 듣고 똑같이 합니다. 그도 같은 질문을 받고, 모범 답안을 말합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저 사람은 불효막심하다는 겁니다. 효자인 채 하며 임금님의 상을 받으려고 한다는 겁니다. 상보다는 벌을 내리라고 합니다. 효종이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당장 저 놈을 잡아 곤장을 치고 하옥하라고 했을 것 같지만, 뜻밖에도 효란 남의 흉내라도 내는 것도 좋으니 똑같이 상을 주라고 했습니다. 효뿐만 아니라 십자가도 마찬가집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흉내 내는 것도 귀한 일이고, 억지 십자가를 지는 것도 복 된 일입니다. 우리 시대 그리스도인의 최대 위기는 누구나 십자가를 보면 달아나기 바쁘지 억지로라도 그 십자가를 지겠다는 사람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기독교의 상징이 십자가인데도 말입니다. 요즘은 교회 선택의 기준인 단 하나입니다. 십자가 없는 교회가 그것입니다. 아무 부담 없고, 희생 없이 편하게 예수 믿을 수 있는 교회, 교회 아닌 교회를 찾습니다. 누구도 주님 가신 비아 돌로로사를 걷겠다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길은 고난, 죽음, 십자가의 길이기에 그렇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고,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넓어 그리로 가는 자가 많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져야 하고, 사서라도 좁은 비아 돌로로사를 통해 골고다 언덕까지 올라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은혜를 입습니다. 본문의 구레네 시몬을 보십시오. 졸지에 진 억지 십자가를 진 것으로 말미암아 일생일대의 은혜를 입습니다. 21절을 다시 보십시오. “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구레네 시몬을 소개하기를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고 소개합니다. 유대 사람들은 성이 없기에 누구의 아들 누구라는 식으로 소개합니다. 그런데 아들의 이름을 먼저 대고 아버지의 이름이 나옵니다. 박성종씨를 아십니까? 모르시지요? 그러나 박지성씨의 아버지 박성종이라고 하면 다 아시지요? 손정웅씨 아십니까? 손흥민씨의 아버지 손정웅씨라고 하면 압니다. 아들이 아버지보다 더 유명해서 그런 겁니다. 마가복음이 기록된 때에 구레네 시몬의 아들들은 그 사회 지도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시몬의 두 아들은 박지성이나 손흥민처럼 그 사회의 스타가 되어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두 아들의 이름을 대면서 그들 아버지인 시몬이라고 소개한 겁니다. 로마서 16장 13절입니다. “]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바울이 로마교회에 편지하며,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는 겁니다. 루포의 어머니가 내 어머니라는 겁니다. 사도행전 13장 1절에 보면 안디옥 교회 제직 명단이 나옵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여기에 나오는 니게르 시므온이 바로 구레네 사람 시몬을 가리킵니다. 시므온은 시몬을 헬라식으로 표기한 겁니다.
억지로 십자가를 진 구레네 시몬이 회심하여 예수를 믿고, 그 이후 주님의 십자가를 증거하며 살게 되었고, 후에는 로마교회와 안디옥 교회에서도 존경과 사랑을 받는 초대교회의 훌륭한 지도자가 되고, 심지어 그의 아내까지도 바울이 내 어머니라고 할만큼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의 두 아들은 아버지보다 더 훌륭한 당시의 지도자가 되어 마가복음에 알렉산더와 루포라고 소개할만큼 큰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게 다 억지로나마 십자가를 진 결과입니다. 누구든 주님이 골고다까지 가시는 데 내 힘을 조금이라도 보태면 반드시 보상을 받습니다. 그게 비록 억지로라도 주님의 남은 고난을 자신에게 채우는 그는 반드시 은혜를 입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나만의 고유한 십자가를 지니고 있습니다. 자기 십자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남편이, 부인이, 자식이 십자가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집니다. 놀랍게도 목사가 십자가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를 흉내 내어야 합니다. 회피하지 않고 충실히 져야 합니다. 내 몫의 십자가는 남이 져주지 않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내가 지고 가야 합니다. 십자가 찬송만 부르지 말고 억지로라도 주님이 내게 부여한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이것은 믿는 자들의 숙명입니다. 일찍이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억지로 비아 돌로로사를 올랐던 구레네 시몬처럼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 미디어: YouTube 시청 주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