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26m] 겉옷을 팔아 칼을 사라! (눅 22: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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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6m
눅 22:36-38
겉옷을 팔아 칼을 사라!
[36]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배낭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37]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져 감이니라 [38] 그들이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
오늘 본문의 무대는 최후 만찬석상입니다.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최후 만찬을 드시고 그 자리에서 성찬식을 제정하십니다. 누가복음 22장 19절 이하를 보십시오. “[19]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그리고 가룟 유다가 주님을 배신할 것이라는 지적도 하십니다. 21절 이하입니다. “[21] 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 [22]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그뿐만 아니라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할 것도 예언하십니다. 33절 이하입니다. “[33]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34]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이렇게 하고 나서 주님이 하신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매우 엄숙한 자리에서 주님이 진지하고 심각하게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이 최후 만찬석상에서 최후로 당부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은 겉옷을 팔아 검을 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유대인들의 겉옷은 개인 재산목록 제1호입니다. 겉옷은 낯에는 겉옷이지만, 밤에는 이불입니다. 유대인에게는 이불이 따로 있지 않고 겉옷이 밤에는 이불입니다. 6.25 때 피난민들의 사진을 보십시오. 모두 이불 보따리를 이고 지고 갑니다. 길에서 노숙을 하든 어떻게 하든 이불이 있어야 밤에 얼어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6.25 때 굶어 죽은 사람보다 밤에 얼어 죽은 사람이 훨씬 많았다고 합니다. 팔레스틴은 낮에는 덥지만 밤에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반드시 겉옷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명품을 저당 잡히고 돈을 융통하듯 유대 사회에도 전당포가 있었습니다. 가장 흔한 담보물의 개인의 겉옷이었습니다. 그러나 전당업자가 남의 겉옷을 저당 잡은 경우 해가 지면 일단 주인에게 돌려줘야 합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다시 저당 잡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율법에 그렇게 정하신 겁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규칙이 잘 안 지켜졌습니다. 그래서 아모스가 사회악을 철저하게 고발한 것입니다. 어쨌든 그만큼 소중한 게 개인의 겉옷인데 주님은 그 겉옷을 팔아서라도 칼을 사라고 하셨습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지금까지는 내가 너희를 지켜주었지만 이제 내가 곧 떠나니 앞으로 칼을 사서 너희가 각자 도생하라는 뜻입니까? 아니면 내가 떠나고 나면 오늘날의 이슬람 무장 단체처럼 무력으로 외세를 물리치라는 당부셨습니까?
주님은 이렇게 당부하신 후에 최후 만찬 자리에서 곧장 겟세마네로 가셔서 기도하다가 전격 체포됩니다. 이 장면을 요한복음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요한복음 18장 3절 이하입니다. “[3]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4]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이르시되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5]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 10절 이하도 보십시오. “[10]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11]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이 대목을 마태복음 26장에서 보면 이렇습니다. 52절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방금 예수님이 칼을 사라고 하고, 여기서는 칼을 꽂으라고 합니다. 베드로가 칼을 휘두른 것은 사실 무고한 자의 정당방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칼을 도로 꽂으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산 아래서 하신 말씀과 산 위에서 하신 말씀이 다릅니다. 주님이 도로 칼을 칼집에 꽂으라고 하신 말씀은 칼을 버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어느 말씀도 칼 자체를 부정하신 것은 아닙니다. 주님도 칼의 존재를 인정하셨습니다. 겉옷을 팔아서라도 반드시 칼을 사되 그 칼을 칼집에서 뽑지는 말라는 당부입니다. 만약 주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칼을 뽑아서 휘두르면 그는 반드시 칼로 망합니다. 칼은 원래 칼집에 꽂혀 있을 때만 위엄과 정의, 권위와 질서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칼집에서 칼이 뽑히는 순간 더는 칼이 아니라 살인의 도구, 흉기일 뿐입니다. 그리고 칼이 칼집에서 한 번 뽑히면 제 힘으로는 다시 칼집에 꽂히지 못합니다. 칼에 베인 사람들의 보복이 두려워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원수들이 빼든 칼 앞에서도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그리고 말고의 귀를 붙여 주심으로써 칼을 쓰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 놓으신 겁니다.
우리가 북한에 대해 우려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북한의 핵미사일이야말로 우리를 겨누고 있는 날카로운 칼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치기 가득한 젊은 사람에게 서슬 퍼런 칼이 들려 있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의 열강들은 모두 핵보유국들입니다. 일본은 아직 자체 개발한 핵무기는 없지만, 그들은 세계 제3위의 원자력 대국입니다. 언제든 핵폭탄 500여 개를 제조할 수 있는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법적으로도 이미 조항을 바꿔 핵보유를 가능하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러시아나 중국, 일본은 아직은 우리에게 잠재적 위협국이지만, 북한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책, 대비책이 무엇일까요?
저는 주님이 오늘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이 그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이라도 겉옷을 팔아 칼을 사는 겁니다.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칼을 사라는 것이고, 개인 재산목록 제1호를 주고서라도 칼을 사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칼을 사서 그걸 휘두르라는 뜻은 아닙니다. 소중한 겉옷을 팔아 칼을 사되 절대 그 칼에 피를 묻히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10장 34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사실 이 때도 주님이 제자들을 세상으로 내보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자칫하면 모두 테러리스트가 되라는 말씀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만, 그것은 아닙니다. 믿는 자도 칼은 갖고 있으라는 겁니다. 칼을 부정하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칼은 가지고 있되 칼을 뽑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진정한 강자입니다. 툭하면 칼을 뽑아들고 휘두르는 사람이 나약하고 비겁한 사람입니다. 지금이야말로 하루라도 빨리 겉옷을 팔아 칼을 사야할 때라고 믿습니다. 아무리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반드시 칼을 사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 심장을 향해 칼을 겨누고 있는 북한의 핵무기에 대비해 우리가 겉옷을 팔아서라도 사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저는 사드(THAAD)라고 생각합니다. 사드는 칼집에 든 칼입니다. 사드는 방어무기입니다. 나라의 안보가 위중한 이 때 주님이 말씀하신 칼의 의미를 되새깁시다. 칼을 사되 칼을 칼집에 꽂아 두라는 역설적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합시다. 우리가 지금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깊이 고민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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