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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20170319m] 내 몸에 (갈 6: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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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20170319m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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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갈 6:17-18</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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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내 몸에</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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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18]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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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17절 하반절입니다.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바울이 자기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고 고백하는 대목입니다. 예수의 흔적은 무슨 뜻입니까? 헬라어로는 &lt;스티그마&gt;입니다. 스티커가 바로 바로 스티그마에서 온 말입니다. 스티그마는 불에 달군 쇠인장으로 말이나 짐승의 엉덩이에 찍던 화인을 가리킵니다. 고대 로마권에서는 짐승뿐 아니라 노예에게도 어깨나 이마에 스티그마를 찍었습니다. 신전의 성물을 훔친 자에게도 화인을 찍었습니다. 요즘 불법주차하면 스티커를 받습니다. 17세기 미국에서는 간통을 하면 가슴에 주홍글씨를 평생 달고 살았습니다. 나다나엘 호손의 &lt;주홍글씨&gt;가 바로 그런 내용입니다. 이것들이 다 스티그마입니다. 요즘 전자발찌도 이를테면 전자화된 스티그마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자신의 몸에 지니고 있다고 한 예수의 스티그마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실제 자신의 몸에 있는 무언가를 빗대어 표현했을텐데 말입니다. 어떤 주석가는 바울이 진짜로 예수의 화인을 찍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중세 수도사 가운데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자기 몸에 있다고 한 스티그마가 실제 어떤 것이었는지를 알 길은 없습니다만, 바울이 전하고자한 메시지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어떤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을까요?</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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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바울은 무엇보다 자신이야말로 주님의 소유임을 고백하고 싶었습니다. 스티그마는 소유를 뜻하는 낙인이었습니다. 짐승이나 노예에게 스티그마를 찍었던 것은 그것에 대한 소유권을 분명히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이야말로 예수의 스티그마를 가진 예수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화가나 서예가가 그림이나 글씨를 쓰고 낙인을 찍는 것은 그것이 자신의 것이라는 확인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에 보면 짐승의 표, 666이 나옵니다. 마귀가 자기 백성의 이마에 666이라는 스티그마를 찍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마에 666이라는 스티그마가 있는 사람은 마귀의 백성이라는 겁니다. 왜 666입니까? 마귀도 사탄, 마귀, 적그리스도로 삼위일체라 하여 666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777을 받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을 뜻하는 777을 받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이마에 777아니면 666이라는 스티그마를 갖고 삽니다. 조직원은 몸에 어떤 문신을 가졌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소속을 결정합니다. 스티그마는 무엇보다도 그 사람이 누구의 소유냐, 어디에 속하느냐를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녔다고 한 것은 자신의 이마에 777이라는 스티그마를 가졌으므로 자신은 주님의 소유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바울뿐 아니라 우리의 이마에도 777이라는 주님의 스티그마가 찍혔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눈에는 안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눈에는 언제나 777이라는 스티그마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적외선 카메라로 어둔 곳을 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도 당신의 영안으로 우리 몸의 스티그마를 정확히 확인하시고 친히 우리를 주님께 속한 백성으로 챙기며 관리하십니다. 여러분도 바울처럼 내 몸에 주님의 흔적을 가졌다고 고백하며 주님에 대한 깊은 연대감과 소속감을 가지시길 빕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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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바울은 주님을 위해 당한 고난의 흔적을 가졌다는 뜻으로 주님의 스티그마가 자기 몸에 있다고 했습니다. 바울 몸 어디엔가 십자가의 흔적이 있다고 고백한 겁니다. 성 프랜시스의 전기를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그가 여러 날 금식하며 고행을 하는데, 어느 순간 그의 양손과 양발에 성흔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고난의 신비체험을 프랜시스가 한 겁니다. 그는 자기 몸에 성흔을 체험한 후 주님의 십자가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7장 22절 이하를 보면 주님의 최후심판 말씀이 나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여기에 나오는 많은 사람은 직업적 성직자인데, 얼마나 대단한지 모릅니다. 아마 이것은 절대 과장이나 거짓이 아니라 사실일 겁니다. 감히 어느 면전이라고 최후심판대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주님의 반응은 뜻밖입니다. 23절입니다.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이게 무슨 청천벽력입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큰 교회에서 목회하고, 수많은 기적을 행했다는데 그게 어째서 불법입니까? 놀랍게도 그들은 그 큰 일을 통해 영광만 누렸지, 주님의 이름으로 제 십자가를 지다가 최후심판대에 선 사람은 없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 몸 어디에도 고난의 흔적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이 한 일은 틀렸다는 겁니다. 다 불법이고 사기라는 겁니다. 자기 몸에 고난의 스티그마가 없으면 그것은 다 불법이요 가짜입니다. 스티그마는 주님의 고난의 흔적을 말하는데, 그들은 복음을 팔아 영광만 누렸지 고난이나 희생이나 손해를 본 적이 없기에 그들 몸 어디에도 예수의 흔적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이 너희는 나와 상관 없다고 하신 겁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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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반면 바울은 참으로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감옥에 갇히고, 파선 당하고, 돌팔매질 당하고, 위협 당했습니다. 그랬기에 실제 그의 몸은 성한 데가 없었을 겁니다. 전신에 깊은 상처와 흉터가 남았을 겁니다. 바로 그것이 주님의 흔적이요, 십자가의 흔적입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에 주님을 위해 당한 고난의 흔적이 있어야 주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큰 일을 하고 대단한 실적을 내었다고 해도 고난의 흔적, 흉터가 없으면 그것은 가짜입니다. 마지막 심판대에서 왜 나를 모른다고 하며 주님께 항의하거나 대들지 마시고 바울처럼 늘 자신의 몸에 십자가의 흔적을 지니고 사는 성도가 됩시다. 혹 주님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고 계시다면 그것이야말로 십자가의 흔적이라 아시고 억울해 하기보다는 자랑스러워하며 그 깊은 트라우마를 이기시기 바랍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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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제가 가끔 말씀드리는 스필버그 감독의 &lt;조스&gt;라는 영화에 해안경비대장, 선장, 해양학자 세 사람이 상어를 찾아다니며 먼 바다로 나갑니다. 그드링 몇 날 며칠 지루한 시간을 보내다가 하루는 술판을 벌입니다. 그들은 서로 상어잡이 무용담을 얘기하다가 저마다 상어에게 물린 상처를 내보이며 자랑을 하는데, 해안경비대장은 뭍에서만 근무했기에 보일 상처가 없어 난감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최후 심판대에서도 마찬가질 겁니다. 몸에서 스티그마를 찾느라 쩔쩔맬 것입니다. 절대 상처 없이 예수를 믿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고난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믿는 게 행운이 아닙니다. 어떻게든 바울처럼 자신의 몸에 흔적을 가져야 합니다. 고난과 십자가의 흔적을 가져야 합니다. 존 번연의 &lt;천로역정&gt;에 보면 천신만고 끝에 순례를 마친 기독도가 마지막에 고난의 상처를 주님 앞까지 가져간다고 독백을 합니다. 주님의 스티그마가 반드시 우리 몸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는 주님의 선고를 듣지 않습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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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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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paragraph:p0017 -->
<p class="p1"><span>부디 사순절 기간에 주님의 남은 고난을 여러분에게 채우시기를 바랍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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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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