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70312m] 그 제자 (요 19:25-27)

20170312m

요 19:25-27

그 제자


[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마지막 27절입니다.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여기 두 번 나오는 그 제자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기 직전에 모친 마리아를 부탁하신 그 제자는 누구입니까? 26절 상반절입니다.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27절의 그 제자는 바로 26절 상반절에 나오는 사랑하시는 제자입니다. 그는 누구입니까? 다른 제자는 다 달아났는데 이 사랑하는 제자만은 주님의 최후를 지키다가 주님의 모친까지 모시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3장에 나오는 최후 만찬 장면입니다. 21절 이하입니다. “[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22] 제자들이 서로 보며 누구에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23]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24]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하니 [25]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니이까.” 최후 만찬석 상에서 아예 주님 품에 누운 제자가 바로 그 제자입니다. 수제자라는 베드로도 그를 통해 주님께 누가 주님을 팔려고 하느냐며 물었습니다.


누구보다 주님 곁에 가까이 있었고, 주님의 마지막 순간까지 주님 옆을 지켰던 제자는 누구입니까? 요한입니다. 요한이 요한복음을 쓰면서 자기 이름 대신에 주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는 호칭을 사용한 겁니다. 이것은 남이 붙여준 별명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붙인 자호 같은 겁니다. 우리 선조는 호를 많이 붙였습니다. 퇴계 이황, 백범 김구 등이 그런 것들입니다. 호는 자기의 인생관, 우주관을 담아 스스로 자기에게 붙인 칭호입니다. 주께서 사랑하는 제자라는 호칭도 요한이 자기에게 스스로 붙인 것입니다. 요한복음에는 다른 제자의 이름이 여럿 나오지만 요한 만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고, 다만 주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는 칭호로만 나옵니다. 그렇다면 왜 요한은 주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는 칭호를 더 좋아했을까요? 요한의 호가 더 자신을 잘 드러내고, 신앙고백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남이 붙여준 별명도 있습니다. 사랑의 사도입니다. 요한이 왜 사랑의 사도입니까? 그는 정말 사랑이 충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신구약을 통틀어 유일하게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규정한 사람입니다. 그의 말년에는 에베소에서 목회를 했는데, 제자들이 교회 강단 높은 곳에 앉히면 늘 ‘소자들아 사랑하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고 합니다. 100세 가까이 된 노사도의 꺼져가는 외마디에 교회가 온통 눈물바다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요한은 어째서 주께서 사랑하는 제자가 되었고, 모든 이가 인정하는 사랑의 사도가 되었을까요?


무엇보다 주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최후 만찬석 상에서도 젖먹이 아이처럼 주님 품에 누웠습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을 보면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19절도 보면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라고 합니다. 이게 바로 그가 사랑의 사도가 된 이유입니다. 


요한이 처음부터 사랑의 사도였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사랑보다는 호전적인 인물이었습니다. 한 번은 예수님이 사마리아를 통과하시던 가운데 그 지역 사람들이 예수님을 막아섭니다. 그러자 요한이 예수님께 청하기를 당장 불을 내려 이 지역 사람들을 쓸어버리자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그에게 주신 별명이 보아너게입니다. 이것은 우레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가 주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사랑을 많이 받아야 남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도 그래야만 내 자식도 남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끔찍한 사건의 원인도 분석해 보면 사랑 결핍이 그 원인입니다. 사랑을 받지 못해 마음의 정서가 비뚤어지고, 마음의 정서가 황폐해졌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해야 비로소 사람이 됩니다. 그렇지 못하면 결국 괴물이 되고 맙니다. 언젠가는 사단을 내고 맙니다. 저 하늘의 달이나 별을 보십시오. 그 자체가 빛은 아니지만, 햇빛을 충분히 받아 반사함으로 영롱히 빛납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요한처럼 주님의 사랑을 듬뿍 받아 남에게 반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사랑의 세례를 받고 나서 남과 나누는 것입니다. 


요한이 사랑의 사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늘 주님 사랑에 대한 빚진 자의 의식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6장 56절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주님이 겟세마네에서 체포되자 주님의 예고대로 제자들이 다 줄행랑을 칩니다. 요한도 그때 달아났습니다. 그러나 지금 본문의 요한은 십자가 아래에 있습니다. 요한은 차마 더는 달아날 수 없었던 겁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십자가 아래에 막달라 마리아도 있습니다. 그녀도 많은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주님이 그녀를 극적으로 구해주셨습니다. 그랬기에 그녀는 주님을 끝까지 지켰고, 주님 부활의 첫 증인이 되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이들은 다 주님 사랑에 대한 남 다른 채무자 의식을 가졌기에 그렇게 살 수 있었습니다. 바울, 어거스틴, 프랜시스 같은 사람도 다 주님의 큰 사랑을 입은 사람이었고, 그 사랑에 빚진 자 의식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같이 나도 주님 사랑을 갚으며 살겠다며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주님 사랑의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이보다 더 큰 은혜와 사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반드시 내가 죽어야 하는데 어떤 사람이 나를 살리고 그가 대신 죽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평생 그 은혜를 잊지 못할 겁니다. 더도 덜도 아닌 주님이 바로 그렇게 우리를 사랑해주셨습니다. 


요한은 주님이 사랑하신 사람들을 자기도 열심히 사랑함으로써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본문 27절을 다시 보십시오.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요한은 주님이 십자가상에서 모친 마리아을 부탁하신 그 순간부터 평생 마리아를 자기 어머니처럼 모셨습니다. 후에 팔레스틴을 떠나 소아시아 에베소로 가서 목회할 때 거기까지 마리아를 모시고 갔습니다. 지금도 소아시아 에베소에는 마리아 유적지가 있습니다. 요한이 왜 마리아를 지극 정성으로 모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마리아야 말로 주님이 지극히 사랑하셨던 육신의 어머니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이 사랑한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내가 사랑스러우면 처갓집 말뚝을 보고도 절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남편을 사랑한다면 시자 붙은 사람들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서 주님이 사랑하신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면 그것이 어찌 주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죄인들, 가난한 사람들, 환자들, 창녀들, 세리들, 과부들, 고아들을 넓은 가슴으로 다 용납하시고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도 그들을 돕고 포용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요한의 말입니다. 얼마나 명쾌합니까? 주님에 대한 나의 사랑은 반드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 검증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요한에게 ‘보라 네 어머니다’고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주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이 우리의 어머니요 형제입니다. 주님이 용서하신 사람들을 우리도 사랑합시다. 그래서 우리가 다 요한과 같은 이 시대의 진정한 사랑의 사도, 사랑의 전도사가 됩시다. 우리 모두 주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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