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70305m] 대한민국아, 대한민국아 (눅 19:41-44)

20170305m

눅 19:41-44

대한민국아, 대한민국아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41절을 다시 봅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십자가를 앞두고 주님이 지금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길인데, 그 성을 바라보시며 주님이 우셨다고 합니다. 여기가 감람산입니다. 주님이 바라보며 우셨다는 성은 예루살렘입니다. 주님이 예루살렘 성이 보이는 감람산까지 오셔서 그 성을 보며 우신 겁니다. 마태복음 23장을 보면, 주님은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하면서 우셨다고 합니다. 당연히 나라와 민족의 현실이 안타까워서 주님이 우신 것입니다. 이점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우선 나라의 지도자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주님은 우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 37절입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당시 이스라엘의 지도층의 부정부패는 극에 달했습니다. 정치가들은 로마에 빌붙어 나라를 팔아먹었고, 종교지도자들은 성직을 매매하면서 바른 말하는 선지자들을 박해하며 오직 자신들의 교권수호에만 미쳐있었습니다. 주님을 십자가에 처형한 것도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평소에도 헤롯을 향해서는 <저 여우>라고 하셨고, 종교지도자들에 대해서는 <독사의 자식들>, <회칠한 무덤>이라고 신랄하게 고발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 현실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주님이 서울 가까이에서 저 서울을 바라보신다면 과연 무엇이라고 하실까요? 주님이 대한민국아, 대한민국아 하시면서 우실까요 웃으실까요? 지금 이 나라 정치가들과 교계 지도자들을 향해서는 주님이 무엇이라고 하실까요? 주님은 아마도 주님 당시처럼 우리나라 지도자들을 향해 혹독하게 책망하셨을 겁니다. 어느 나라나 정치에 대한 불신이 깊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탄핵 정국과 함께 정치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것 같습니다.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 <벌거숭이 임금>이 있습니다. 임금인데 망신살 뻗힌 벌거숭이 임금입니다. 또한 그와 비슷한 동화인 <거지왕자>도 있습니다. 벌거숭이 대통령에 거지꼴이 된 국민들이 우리나라의 현실인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틀림없이 대한민국아, 대한민국아 하면서 우실 것이고, 지도자들을 향해 격분하실 것입니다. 


지난 수요일이 삼일절이었고, 그날은 사순절 첫 날이었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도 초기에는 걸출한 지도자들을 배출했습니다. 서재필, 김규식, 안창호, 이승훈, 조만식 등이 그들입니다. 그들은 교회지도자이면서 훌륭한 사회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교회가 전혀 그런 인물들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 사회에 해악이 되는 회칠한 무덤 같은 지도자만 양산했습니다. 그래서 주님도 일찍이 안타까움과 분노의 눈물을 흘리셨고, 지금도 우리나라를 부르며 울고 계실 것 같습니다. 


다음은 민족의 장래를 내다보시며 주님은 우셨습니다. 42절 이하입니다. “[42]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도 주전 931년에 남북으로 분단되어 그 남북이 다시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 망합니다. 그러고 나서는 사실상 단 한 번도 주권국가를 이뤄보지 못한 채 바사와 헬라와 로마 시대를 거쳐 주님 시대까지 이르렀는데, 그 기간이 무려 1000년 이었습니다. 


본문 43절과 44절의 말씀은 주후 70년의 로마군에 의해 예루살렘 멸망을 주님이 미리 내다보시며 안타까워하시는 장면입니다. 실제 이스라엘은 주님의 예언 그대로 주후 70년에 완전히 망해서 전 세계로 흩어져 무려 2000년 동안 디아스포라로 삽니다. 온갖 멸시와 천대와 죽임을 당하면서 천덕꾸러기로 살다가 1948년에 기적 같이 그들의 옛 땅인 팔레스틴에 나라를 재건합니다. 주님이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으리라고 예언하신 지 1900년 만에 주권 국가를 재건한 겁니다. 


여러분, 저는 오늘 주님이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우신 것처럼, 주님이 우리나라 저 서울을 바라보시면서도 우실 것이라 했습니다. 그 이유로 무엇보다도 주님이 우리의 지도자들과 국민을 보고 딱해서 우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 시대처럼 더는 이스라엘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미래 때문에, 정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을 것 같은 멸망과 파국이 우려되기 때문에 주님이 필히 우실 것 같습니다. 


요즘 가장 위험한 나라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나라는 중국과 일본의 사이에 끼어 고생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사드 보복을 보십시오. 그 보복은 더욱 거셀 것입니다. 북한은 날마다 미사일 도발을 하고, 러시아도 중국 편에 서서 사드 철회를 위협하고 있으니 우리가 도대체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우리나라는 지금 무정부 상태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지막지한 나라들이 우리나라를 이중 삼중으로 포위하고 있는 가운데에도 우리나라 정부는 혼수상태입니다. 우리 내부를 보면 촛불과 태극기로 나뉘어서 날마다 세 대결을 벌이고 있습니다. 어제도 경찰이 구축한 차벽을 경계로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를 벌였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나라의 분열상을 가장 첨예하게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이제 며칠 후면 어느 쪽으로든 헌재의 탄핵 평결이 내려질 것입니다. 그 이후에 우리나라의 분열상, 찢어진 상처가 회복될 것이라고 낙관하십니까? 어쩌면 더 과격하고 원색적이며 노골적으로 갈등의 골이 더 깊게 패일 것입니다. 그러니 생각해 보십시오. 이 작디 작은 분단국이 위험천만한 주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정작 우리는 서로 갈등하고 싸우니 처참하게 망하는 길밖에는 무엇이 더 있겠습니까. 마태복음 23장에서 주님이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하신 것이 과거가 아니라 지금 우리나라에 해당하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만큼 안보 불감증을 가진 나라도 없을 것입니다. 그저 양편으로 나뉘어 서로 잡아먹을 듯 싸우기만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저 서울을 바라보시며 ‘대한민국아, 대한민국아’ 하면서 울고 계실 것입니다. 이것이 제발 저의 문학적 상상력이면 좋겠습니다. 이런 나라는 망하기 십상입니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적들이 네 자식을 땅에 매어치리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그래서 주님은 십자가를 따라오는 여인들에게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 자신과 자녀를 위해 울라고 하셨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정말 우리가 나라와 민족, 우리 자녀를 위해 주님 앞에서 울 때입니다. 풍전등화와 같은 나라의 운명을 위해, 백척간두에 선 조국을 위해 기도할 때입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6.25사변 이래 가장 위험한 순간을 맞았다고 확신합니다. IMF 때도 이렇게까지 위기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기독교는 국경이 없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조국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절대 역사의 방관자, 현실 도피자들이 아닙니다. 주님이 조국 이스라엘의 운명을 앞에 두고 우셨던 것처럼, 초기 한국 교회 지도자들이 민족의 아픔과 고통을 끌어안고 울었던 것처럼, 우리도 나라의 안녕을 위해 기도하며 울어야 합니다. 마침 사순절 기간입니다. 올 사순절에는 반드시 나라를 위해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의 기도로 이 나라의 장래가 새로워지는 큰 은혜가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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