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70205n] 주 예수께 받은 사명 (행 20:22-27)

20170205n

주 예수께 받은 사명

행 20:22-27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5]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26]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27]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24절을 다시 봅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이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바울이 받은 사명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의 필생의 사명은 다름 아닌 복음을 증거 하는 일입니다. 


본문은 바울이 교회를 개척하고 거기서 3년간 머물며 사역했던 에베소교회의 장로들 앞에서 행한 고별 설교입니다. 그는 먼저 지난 3년을 회고하며 20장 18절을 보면,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라고 합니다. 19절에는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겼다’고 합니다. 이제 성령이 예루살렘으로 이끄시는데, 성령은 거기에서 환난과 결박이 기다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당신들을 보고 싶어서 불렀다고 하면서, 본문의 고별 설교를 한 것입니다. 


3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바울은 마지막 설교의 마치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35절 이하입니다. “[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36]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37]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38]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바울은 에베소를 떠난 후 다시 에베소를 찾지 못합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올라가 체포되고, 옥에 갇히고, 로마로 압송되어, 거기서 옥살이 하다가 네로 황제에게 참수를 당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에베소교회 장로들에게 설교한 것이자 그의 신앙고백입니다. 바울은 여기서도 디모데후서에서도 나의 달려 갈 길을 마쳤다고 합니다. 그는 로마에서 순교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의 고백대로 달려 갈 길을 마치기까지, 고난과 핍박이 극심했지만, 그는 회심 이후 생의 반을 예수를 위해 살았습니다. 아무리 극적으로 회심한 사람이라 하여도 보통은 다시 자빠집니다. 한 사람의 신앙생활의 궤적을 보면 누구나 기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고백 대로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해서 달려 갈 길을 마치기까지 단 한 번도 신앙적으로 약해지거나 흔들리거나 위기에 빠지는 일이 없었습니다. 이게 놀랍다는 겁니다. 한 때 뜨겁게 신앙생활 해 본 적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생활은 식기 마련입니다. 대개는 사정이 바뀌고 환경이 변하면, 믿음도 그렇게 변합니다. 바울이 지금 에베소교회 장로들 앞에서 이 고별 설교를 하는데, 그 에베소교회도 후에 요한계시록에 가면 주님의 책망을 듣습니다. 계시록 2장 4절을 보면 그들은 첫 사랑을 버렸다고 합니다. 에베소교회도 바울이 처음 목회할 때는 뜨거웠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 사랑을 잃은 겁니다. 그래서 주님이 그 첫 사랑을 찾으라고 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바울은 회개 이후 순교 때까지 초지일관하게 순교자적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분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믿는다면 우리 믿음도 한결 같아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대상이 한결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넘어지고 자빠집니다. 우리는 바울에게서 한결 같은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네로 황제에게 목이 잘리기까지 그는 변함없는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7절 이하를 보십시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며 한결 같은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는 의의 면류관이 주어진다는 겁니다. 우리가 한 달도 쉽지 않겠지만, 어쨌든 우리가 올 연말까지 이런 믿음을 유지해야겠습니다. 


바울은 사명감을 고백합니다. 주 예수께 받은 사명입니다. 바울은 사명에 살고, 사명에 죽은 사람입니다. 22절 이하를 보십시오. 얼마나 비장한지 모릅니다.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게 주어진 사명을 다하기 위해 나는 내게 주어진 이 길을 피하지 않고 가겠다는 겁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지만, 성령은 계속해서 거기에 가면 환난과 결박이 기다린다고 하시지만, 나는 내게 주어진 사명을 위해 이 길을 가겠다는 겁니다. 


우리는 환난이 기다리면 슬쩍 피하기도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에 가면 반드시 체포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이루기 위해 그 길을 가겠다는 겁니다. 에베소교회 장로들이 모두 그를 말렸지만, 그는 예루살렘 행을 결행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을 소명자입니다. 바울이나 목회자, 선교사들만 사명자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사명자입니다. 부디 올해는 우리도 바울처럼 각자가 감당해야 할 사명에 충성을 다하고, 헌신을 다합시다. 성령이 아무리 내 앞에 환난이 기다린다고 계시를 하셔도, 나의 사명의 길을 포기하지 맙시다. 바울처럼 내가 받은 사명에 어떤 고난이 기다린다 해도 충성을 다하고 헌신과 희생을 다하는 복 있는 성도가 됩시다. 바울은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범을 보여준 바와 같이 여러분도 그렇게 수고하라고 했습니다. 35절입니다.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마지막으로 바울은 자신의 순교적 각오와 결단을 고백합니다. 24절 하반절입니다.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5절 하반절입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이미 바울은 자신의 장래의 일을 알았지만 각오를 세웠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죽기를 각오한 사람입니다. 물론 우리는 과거 바울 시대와 같은 박해 시대를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북한 동포들은 지금도 목숨 걸고 지하에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우리에게도 바울 같은, 북한 지하교회 동포와 같은 순교자적 결단과 각오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찮은 일로 우리 신앙과 양심을 팔고, 우리가 믿는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며 삽니까? 신앙 때문에, 주님의 몸 된 교회 때문에 당하는 작은 일이나 희생을 우리는 용납하지 못합니다. 지금도 북한 동포들은 목숨을 내놓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너무도 우스운 것에 우리 신앙과 영혼을 팝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순교적 각오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허무하게 주님을 배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순교자적 각오가 서 있어야 우리는 바울처럼 끝까지 사명의 길을 달려 갈 수 있습니다. 


부디 세계선교주일을 맞아 다시 한 번 바울의 비상한 각오와 고백을 기억하시며 우리도 더욱 선교적 삶에 충실한 성도가 됩시다.




원문 자료와 첨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