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70205m] 겨자씨와 누룩 (마 13:31-33)

20170205m

마 13:31-33

겨자씨와 누룩


[31]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주님의 다른 여러 비유에 비해 본문은 간결하고 담백합니다. 절수는 불과 세 개 절이지만 비유는 두 개입니다. 천국은 겨자씨와 누룩과 같다고 합니다.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가 한 쌍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짧은 주님의 비유를 통해 주님 눈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그 통찰력이 얼마나 비범하고 예리한지를 거듭 확인하게 됩니다. 이 두 비유는 다른 복음서에도 다 나옵니다. 외경인 도마복음에도 이 두 비유가 나옵니다. 다만 거기서는 이 두 비유가 한 쌍으로 나오지 않고, 겨자씨는 20장에, 누룩은 96장에 나옵니다. 어쨌든 이 두 비유가 공관복음 뿐만 아니라 외경에까지 나온다는 것은, 이게 비록 길지 않지만 그럼에도 일찍부터 대단히 중요한 말씀으로 다루어져 왔다는 사실을 뜻할 것입니다. 


겨자씨 비유를 살펴보겠습니다. 31절 이하를 보십시오. “[31]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의 내용도 이와 같습니다. 도마복음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말했다. 하늘나라가 무엇과 같은지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모든 씨앗보다 작은 겨자씨와도 같다. 하지만 그 씨가 땅에 떨어져 가지를 내면 하늘의 새들을 위한 피난처가 되느니라.” 겨자씨는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습니다. 우리는 눈꼽만큼 작다고 하는데, 유대인은 작은 양을 겨자씨 만하다고 했습니다. 겨자씨는 헬라어로 미크로(micro) 입니다. 영어의 마이크로라는 말도 거기에서 왔습니다. 겨자씨가 다 자라면 3.5-4미터까지 자란다고 합니다. 거의 아파트 2층 높이입니다. 어떻게 먼지처럼 작은 씨앗이 큰 나무로 자랄까요? 1년생 식물인데 말입니다. 도대체 하루에 몇 센티미터를 자라야 1년 새 4미터까지 클 수 있습니까? 주님은 이 놀라운 생명력을 지닌 겨자씨에서 천국을 본 것입니다. 작디 작은 겨자씨 한 알의 경이로움이 믿음의 신비를 잘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볼품이 없어 비전도 보이지 않지만 그게 땅에 심기우면 곧 충격적인 모습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1년생 풀이 아니라 날아가는 새도 집을 지을만큼 큰 나무로 변한다는 겁니다. 마태복음 17장 20절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누가복음 17장 6절입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어제가 입춘이었습니다. 머지않아 한 해 농사가 시작될 텐데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는 믿음이란 주말 농장에 심는 호박씨만한 믿음, 감자씨 만한 믿음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작은 상추씨나 부추씨를 말하는 것도 아니라, 그보다 작은 겨자씨만한 믿음을 가리킵니다. 이 작은 씨앗이 큰 나무로 자라니 얼마나 경이롭습니까? 그러고 보면 우리는 참으로 믿음이 없습니다. 산이 아니라 작은 언덕 하나도 바다에 던지지 못합니다. 신앙생활 수십 년을 해도 아직도 우리는 이런 모습입니다. 어쨌든 주님은 먼지 같은 겨자씨 한 알에 천국과 믿음의 신비를 다 담으셨습니다. 주님은 겨자씨 비유를 통해 신앙 세계의 놀라운 외적 발전과 부흥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언제나 욥기 8장 7절의 말씀처럼 시작은 미약하지만 나중은 창대합니다. 시작은 훅 불면 먼지 같은 씨앗 같지만, 나중에는 공중의 새도 쉬어가는 4미터 높이의 크고 풍성한 나무가 됩니다. 주님의 존재도 그렇습니다. 처음 이 땅에 오셨을 때만 해도 얼마나 초라하고 딱한 모습이었습니까? 몇 사람이나 주님을 알아보았습니까? 처음에는 눈에 띄지도 않는 겨자씨 한 알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 모든 사람이 그분의 그늘에서 먹고 쉬고 마시는 큰 나무가 되셨습니다. 주님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최후 명령을 생각해 보십시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제자가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처음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그들은 한 번도 팔레스틴을 벗어난 적이 없었는데, 주님이 땅 끝까지 가서 내 명령을 시행하라고 했으니, 얼마나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들렸을까요? 그러나 결국은 주님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처음에 가룟 유다 빠진 11명이 120명이 되고, 3000명이 되고, 5000명이 되고, 소아시아를 점령하고, 마침내 세계 심장인 로마까지 점령하고, 구라파를 정복하고, 마침내는 전 세계에 전파되었습니다. 역사상 기독교라는 나무보다 더 큰 나무가 있을까요? 


오늘이 세계선교주일로 지키는 것도 교회와 복음 본연의 겨자씨 같은 성장과 발전, 확산을 꾀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우리의 힘을 모으자는 것입니다. 주님이 천국이 겨자씨와 같다고 하신 이상 교회도 겨자나무처럼 자라야 하고, 선교도 날아가는 새가 겨자나무에 깃들이듯 더 많은 세계인을 품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사명이요, 교회에 부여하신 성스러운 사명입니다. 


누룩 비유입니다. 33절입니다.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여기서는 천국이 누룩에 비유되고 있습니다. 도마복음에는 아버지의 나라가 어떤 여인과 같은데, 그 여인은 누룩을 조금 가지고 빵을 만들었다는 내용으로 나옵니다. 겨자씨 비유는 먼지 같은 씨앗 하나가 폭풍 성장을 해서 큰 나무가 되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누룩 비유는 질적 변화, 내적 변혁이 핵심입니다. 밀가루 서 말에다 누룩을 조금 넣으면 부피도 불어나지만, 발효가 되어 밀가루의 성질이 바뀝니다. 누룩을 넣지 않은 무교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누룩으로 발효시킨 빵은 부드럽고 감미롭습니다. 누룩이 서 말 가루 전부를 변화시켜서 그렇습니다. 처음 가루 서 말에 누룩 한 줌을 넣을 때만 해도 양이 압도적으로 많은 서 말 가루가 이스트 한 숟갈을 삼킬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착각입니다. 한 줌 누룩이 서 말 가루를 다 부풀리고 발효시켜 달콤한 빵과 케익이 되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 혁명, 복음의 혁명, 믿음의 혁명입니다. 이래서 믿음이 무섭고 위대합니다. 


밀가루로만은 맛이 없지만, 그것을 발효시켜 빵을 만들면 그렇게 부드럽고 달콤할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겨자씨 한 알처럼 외적으로도 기적 같이 발전하지만, 누룩처럼 내적으로도 가루 서 말을 다 발효시킬 권능이 있습니다. 우리가 선교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개인도 사회도 나라도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도 예수 믿고 참 많이 변했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믿음이라는 누룩이 내 인격, 정서, 가치관, 습관, 생활 패턴, 라이프스타일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누룩이어서 그렇습니다. 하여간 내 안에 들어오기만 하면 나의 전부, 삶, 모든 것을 발효시킵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유대교 전사로 예수 믿는 사람을 색출해 처단하며 기독교를 박멸하겠다고 선봉에 섰던 사람입니다. 주님이 어느 날 바울을 부르셔서 복음이라는 누룩을 그의 안에 넣으셨습니다. 그는 완전히 뒤집어 지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사울이었는데 바울이 되었습니다. 그는 유대교 전사였는데 기독교의 전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율법의 전사였는데 복음의 전사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혁명입니다. 어거스틴도 보십시오. 그는 희대의 탕아였습니다. 그 안에 복음의 누룩이 들어가자 완전히 발효되어 2000년 기독교사의 성자가 되었습니다. 밀가루가 발효되어 빵 반죽이 되듯이 그렇게 변해야 혁신되어야 그것이 진정한 혁신이요 변화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이유는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고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개인의 신앙이나 교회의 선교는 겨자씨와 누룩이 나란히 가야 합니다. 그래야 조화롭고 건강합니다. 겨자씨처럼 외적 성장도, 누룩처럼 내적 성숙도 이루어야 합니다. 주님이 이 두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이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선교도 교회도 오직 겨자씨 같은 외적 성장에만 집착하면 안 되고 누룩 같은 내적 성숙도 함께 추구해야 주님이 기대하시는 참된 복음의 사역이 됩니다. 


겨자씨와 누룩을 꼭 기억합시다. 이 둘을 언제나 함께 추구하는 복 있는 성도가 됩시다.



원문 자료와 첨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