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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20170129m] 시간에 관하여 (전 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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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 class="p1"><span>20170129m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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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paragraph:p0002 -->
<p class="p1"><span>전 3:1-15</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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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시간에 관하여</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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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paragraph:p0005 -->
<p class="p1"><span>[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5]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9]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10]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12]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13]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14]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15]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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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명절 잘 보내고 계십니까? 설은 우리의 전통 월력인 음력으로 1월 1일을 말합니다. 그래서 설을 원일, 원단이라 부릅니다. 한 해의 기원이 되는 날이란 뜻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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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우리는 늘 시간 속에서 삽니다. 막상 시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꼬집어 대답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물리학적으로 천체 역학적으로 시간을 해석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시간의 본질을 생각해 보겠습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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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시간은 영원의 반대말입니다. 영원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시간 아닌 시간으로 초월적인 시간입니다. 태어남도 죽음도 없는 하나님의 무한이 영원입니다. 원래 하나님의 존재와 세계인 영원 밖에 없었는데, 언젠가 시간이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유한하고 제한적인 이 피조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먼저 제한적이고 유한한 시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시간에는 처음과 끝이 있습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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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시간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창세기 1장 1절부터 시간은 시작되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합니다. 태초가 역사의 첫 걸음입니다. 하나님은 그 시간 안에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만물은 다 시간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첫 날 빛을 창조하시고, 엿새 날에 인간을 창조하십니다.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이란 것은 시간 안에서 창조하셨다는 뜻입니다. 더는 창조할 게 없을 만큼 완전하고 완벽히 창조하셨기에 하나님은 이렛날 쉬셨습니다. 태초라는 구체적인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 시간을 알파와 오메가라고 부릅니다. 시간에는 창조와 종말이 있다는 얘깁니다. 시간은 영원이 아니기에 무한하지 않습니다. 태초가 시간의 시작이고, 오메가 포인트가 종말입니다. 인생은 시간 안의 존재이기에 알파와 오메가를 지닙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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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본문 전도서 3장은 전체 주제가 시간입니다. 1절입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이것은 시간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자 특질입니다. 시간의 유한성, 제한성을, 한계성, 피조성이 시간의 중요한 특성입니다. 시간 안에서는 모든 것이 한정적이고 잠정적이고 유한합니다. 시간에는 때와 기한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인간의 삶도 지극히 변화무쌍하고 잠정적이고 일시적이고 허무합니다. 우리는 마냥 건강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합니다. 마냥 즐길 수 있으면 좋겠지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느낄 수밖에 없는 허무입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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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시간을 통해 무엇인가 깨닫고 느끼기를 기대하는 하나님의 바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유한한 시간 속을 사는 인간이 무엇을 깨닫기를 바라실까요? 하나님은 인간이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고, 무엇보다 시간의 주인, 주체가 하나님이란 사실을 깨닫기를 기대하십니다. 현대 갖가지 휴머니즘, 실존주의에서는 인간이 주체라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시간을 창조하셨기에, 시간의 절대적인 소유자는 하나님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시간 속을 사는 인간은 바로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시간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우리가 고백하기를 하나님은 바라십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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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인간이 시간의 주인이면 시간을 지배하고, 관리할 수 있는데, 그것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인간이 시간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아픔과 슬픔과 죽음의 시간을 피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이 시간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의 방증입니다. 오직 시간은 하나님의 뜻대로 흘러갑니다. 누구도 도도한 시간의 흐름을 가로 막거나 거스르지 못합니다. 인간이 시간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올해도 우리가 하나님께 평안과 행복을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시기 때문입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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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뿐만 아니라 제한적이고 잠정적인 시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땅에서 무언가를 누리고 산다면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와 복임을 감사하기를 하나님은 바라십니다. 13절입니다.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시간 속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면 인간은 아무것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교만해서 좀처럼 이 사실을 인정하거나 감사하려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우리의 노력이요 행운이나 재주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로 우리에게 아픔과 실패를 겪게도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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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세상 만사가 절대 내 힘이나 의지, 노력으로만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지금까지 우리의 일이 다 잘 되었다면 지금 이 예배 자리에 안 계실 분이 반드시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혹하리만큼 사태를 최악으로 몰아가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완전히 납작 엎드리라는 사인입니다. 살며 위기가 닥친다면 항복하라는 하나님의 주문으로 받으십시다. 격투기 선수들을 보면 사각링이나 옥타곤 안에서 맹렬히 공격합니다. 한 편이 항복할 때까지 온 화력을 다 쏟아 붓습니다. 그러다 한 쪽이 항복하면 거기서 딱 그칩니다. 그러고 서로 부둥켜 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공격하십니다. 우리가 탭을 치면 당장에 공격을 멈추십니다. 어정쩡한 태도로 시간만 보내면 나만 더 맞습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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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하나님은 우리가 시간을 살면서 우리로 하여금 영원을 사모하며 살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나이순이나 건강순으로 떠나지 않습니다. 100세도 못 되어 우리는 죽을 것입니다. 인생이 무상합니다. 시간이 덧없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을 사모합니다. 11절입니다.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허무하고 유한한 시간 속에서 사는 우리는 영원을 찾고 사모하며 추구합니다. 우리는 유한한 존재이기에 영원하신 하나님을 사모합니다. 무신론자들(포이어바흐, 칼 막스)은 인간의 존재론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신이라는 가공의 존재를 만들어 투사해 놓고 자기 초월을 꾀한 것이 기독교의 하나님이요, 그것을 도그마화한 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영원히 살 수 있도록 영원을 사모하고, 초월 존재인 하나님을 믿음으로 영생의 은총을 누리게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죽더라도 반드시 부활하여 영생의 세계에 들어가 주님과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 가르침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자신의 상대성과 제한성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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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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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전도서 3장 17절입니다.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 시간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일종의 달란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시간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시간을 결산하시기 때문입니다. 종말이란 것은 그저 시간이 끝나는 역사의 종지부가 아닙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종말은 결산이요 심판입니다. 그래서 종말이 무섭습니다. 우리는 다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시간도 예외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시간을 내가 살면서 어떻게 관리했는지, 주인의 뜻에 합당하게 선용했는지를 종말에 결산합니다. 그래서 종말은 아주 엄숙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세월을 아끼라고 하고, 모세는 우리로 하여금 남은 날을 계수하는 지혜로운 마음을 갖자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긴 시간을 책임적으로 삽시다. 올 한 해 시간관리와 운용을 잘 합시다. 시간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달으며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는 복 있는 성도가 됩시다.</span><span> </span></p>
<!-- paragraph:p0028 -->
<p class="p1"><br></p>
<!-- paragraph:p0029 -->
<p class="p1"><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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