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 (욜 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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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
욜 2:12-17
설날 아침입니다. 모쪼록 행복한 설 연휴 되시길 빕니다. 올 설은 이래저래 많은 아픔과 우려로 몹시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맞았지만 그래도 지난 어느 해 설보다 복되고 강건하시길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습니다.
본문은 여전히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께로 돌아오라>(12절)고 합니다. 그런데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옷을 찢지 않고 마음을 찢는 것>(13절)입니다. <옷을 찢는 것>은 무서운 재앙이나 극심한 재난이 닥쳤을 때 이스라엘이 행했던 전통적이고도 관습적인 행위였습니다(창 37:29-35). 본래 마음을 찢는다는 의미의 상징적인 표현이었지만 나중에는 그런 의미를 상실하고 위선적이고도 습관적인 의미로 퇴색되자 요엘 선지자가 여기서 다시 내적인 심령의 통회를 요청하고 나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여러 외적 표시들은 자칫 가식적일 때가 많습니다. 의외로 사람들은 의식들을 좋아하고, 누구나 그것으로 신앙생활을 떼우려 합니다. 그러나 옷을 찢는 것과 같은 외적인 종교의식들은 우리의 눈과 귀만 즐겁게 하고 안도하게 할 뿐 궁극적으로는 우리를 기만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참 경건을 떠난 모든 형식이나 의식은 헛된 것입니다. 중심을 드리지 않고 의식만 드리는 예배, 마음을 찢지 않고 옷만 찢는 회개는 가증한 것입니다. 그것으로 곧 자기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의식이란 성도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에 의해 고백되는 진실한 신앙의 표현이어야 합니다. 마음을 찢으라는 것은 성령에 의해 체험되는 엄숙하고도 은밀한 슬픔을 말합니다. 어떻게 대리석 만큼이나 단단한 우리의 마음을 마치 옷을 찢듯 찢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강퍅한 우리의 마음이 금식하며 애통할 수 있을까요?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신>(13절)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얼마든지 우리가 변할 수 있고, 또 새로워질 수 있음을 믿읍시다. 부디 정월 초하루인 이 설날 아침부터 옷이 아니라 마음을 찢으므로 새 출발하는 복된 성도들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적용]
-설날 아침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무슨 다짐을 새롭게 하셨습니까?
-당신은 혹 각종 종교적 의식으로 신앙생활을 대신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당신은 옷이 아니라 마음을 찢으며 하나님 앞에서 통회하신 적이 있습니까?
[기도]
주님, 여호와의 날이 임박한 그 최후의 순간에도 하나님은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라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12절)고 호소하셨습니다. 옷을 찢지 않고 마음을 찢으며 회개하면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사 그 뜻을 돌이켜 재앙을 면케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나팔을 불어 금식일을 선포하고 성회를 소집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이 저희에게도 큰 깨달음과 결단과 구원의 나팔 소리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