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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20170122m] 신령과 진정으로 (요 4: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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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20170122m</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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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paragraph:p0002 -->
<p class="p1"><span>요 4:23-24</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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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paragraph:p0003 -->
<p class="p1"><span>신령과 진정으로</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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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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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여러분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여러분은 기독교와 교회에 대해 얼마만큼의 자부심을 갖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주일이나 예배에 얼마나 기대를 갖고 계십니까? 어떤 때는 교회에 나가는 게 짐이 되고, 신자임을 숨기고 싶을 때가 있지 않으십니까? 우리는 신자이면서도 교회에 대해 긍정적이거나 관대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교회에 대해 부정적이고 비관적일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주일성수나 예배에 대해 기대나 기쁨보다는 불만과 불평을 합니다. 우리는 교회에 나와서 위로와 평안보다는 오히려 상처나 시험을 받고 돌아가는 때가 더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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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기독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신뢰가 점점 내려가고 있습니다. 목회자들의 여러 가지 문제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신자마저도 교회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요?</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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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저는 우리의 예배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데서 문제의 해법을 찾고 싶습니다. 예배에 대한 이해나 임하는 자세를 재고하면 우리가 겪는 교회와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정서를 상당 부분 극복할 수 있다는 기대를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2절 상반절을 보면 하나님은 예배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우선적으로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참으로 예배에 소홀하고, 예배를 과소평가합니다. 하나님도 예배라는 종교의식 그 자체를 맹목적으로 좋아하시지는 않습니다. 예배는 형식이나 의식보다는 거기에 임하는 자들의 자세와 중심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예배의식이나 헌금을 받는다기보다는 우리의 자세, 예물에 담긴 우리의 믿음과 사랑을 받으십니다. 시편 40편 6절 이하입니다. “ [6]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7]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하나님은 제사나 제물보다는 궁극적으로 제사하는 나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나를 바치지 않는 예배는 그것은 한낱 종교의식일 뿐입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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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비록 의식을 통해 드리지만 예배할 때만큼은 내가 하나님께 열려있고, 집중합니다. 이 순간만큼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하나님과 은밀하고 내밀하게 교제하고 교감합니다. 예배할 때 우리는 골방에서 하나님과 일대일로 면담합니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 면전에 계심을 의식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대면합니다. 주일성수가 중요한 이유도 엿새 동안 치열하게 살지만, 주일이면 교회에 나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상대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서 하루를 보냅니다. 그래서 예배가 다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답고 복된 것입니다. 주일은 하나님을 위한 날이고,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날이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이기에 주일이 중요합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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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솔로몬은 왕이 되자 마자 왕노릇보다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먼저 드립니다. 노아도 601년 정월 초하룻날 방주에서 나오자마자 가장 먼저 예배를 드립니다. 아브라함도 거처를 옮길 때마다 맨 먼저 한 것은 제단을 쌓은 것입니다. 예배가 자신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실제로 고백한 것입니다. 예배가 우리 삶의 제1 순위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으셔서 그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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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 </span><span>하나님이 잘난 사람, 똑똑한 사람 찾으시지 않고, 예배하는 자를 찾습니다. 하나님이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런 사람이 흔치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을 지키며 예배하는 것은 내 삶에서 예배가 제1 순위라는 고백입니다. 우리의 우선순위를 몸으로 하는 게 예배입니다. 한 주간의 첫 날 첫 시간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처럼 날마다 평생을 하나님께 예배하며 살겠노라 다짐하는 결단이 바로 주일성수입니다. 그러니 이 예배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여러분, 이 사실을 믿으십시오. 한 주간의 첫 날 첫 시간을 예배로 시작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그를 기억하기고 그의 한 주간을 지키신다는 사실을 믿읍시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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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열왕기상 3장 4절 이하입니다. “[4]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5]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바로 그때 솔로몬이 지혜를 구합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지혜를 주시니 그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왕이 됩니다. 예배를 1순위로 삼으면 하나님이 그의 바람을 1순위로 들어주십니다.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학개 1장 6절입니다.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이렇게 된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이 자기 집을 짓느라 하나님 성전과 예배를 팽개쳤기 때문입니다. 예배드리지 않고 그 시간에 돈 벌어도 그것은 뚫어진 전대에 돈 넣기일 따름입니다. 장사보다 사업보다 예배를 우선으로 생각합시다. 다른 것은 모두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지만, 예배는 하나님을 상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에 불성실하며 복 받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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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예배는 하나님의 자녀된 자의 특권이자 의무라면, 어떻게 예배해야 옳습니까? 본문 24절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고 합니다. 개역성경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자고 했습니다. 23절도 보십시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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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이렇게 신령과 진정,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는 무엇보다 희생을 드리는 예배입니다. 예배는 본질상 제사입니다. 구약의 제사법을 보면, 희생제물 없는 제사는 없습니다. 우리는 예배하며 하나님께 받을 것을 생각하지만, 그보다 우선적인 것은 하나님께 우리의 소중한 것을 바치는 것이 우선입니다. 나의 첫 시간, 첫 수확, 첫 소득, 초 태생, 장자를 바치는 것이 예배라는 것입니다. 하여간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 희생하는 것이 제사요 예배입니다. 가장 완전한 제사가 주님의 십자가입니다. 주님이 자기 온몸을 십자가의 제단에 희생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사고 감동하려 해도 무엇이든 바쳐야 합니다. 동방박사를 보십시오. 그들은 아기 예수를 뵙기 위해 시간과 모험과 물질을 바쳤습니다. 이것이 경배요 예배입니다. 이렇듯 예배는 희생 제물을 바치는 제사이기에 희생이 없는 예배는 예배가 아닙니다. 그것은 종교의식, 통과의례, 요식일 뿐입니다. 희생을 바치는 제사일 때만 그것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영적 예배입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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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그럼에도 우리의 제사 원칙은 &lt;절대 부담이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gt;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포기하지 못하는 원칙 아닙니까? 이것은 결코 성서적이거나 신앙적이지 않습니다. 희생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는 시간을 드립니다. 어디에도 갈 일이 없는 사람만 교회에 나옵니다. 우리의 원칙은 자투리 시간을 드리고, 남은 돈을 헌금이랍시고 바칩니다. 부담이 되지 않고, 손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예배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어디에도 그런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십자가를 지라고 합니다. 말라기 1장 8절 이하입니다. “[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9]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내게서 가장 건강하고 아름답고 좋은 것을 희생하는 게 예배입니다. 하나님께 불우이웃돕기하지 맙시다. 하나님께 적선하지 맙시다. 그럼에도 우리는 과거 이스라엘처럼 하나님께 온전하지 못한 것을 드리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알기를 이렇게 알아왔습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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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하지 못한 것을 바쳐왔기에 지금 한국 교회의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이것은 자업자득입니다. 현재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 가운데 얼마나 함량미달 목회자가 많습니까? 목회자가 되려는 사람도 잘 나서가 아니라 어디에도 갈 데가 없어서 신학교 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는 게 자랑할 만한 게 아니라 부끄럽지 않습니까? 한국 교회의 품위를 격상시키고 싶으십니까? 기꺼이 희생의 제물을 바치며 예배합시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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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금주 말이 설입니다. 죽은 조상에게 죽은 제물을 바치며 죽은 제사를 하지 말고, 하나님께 산 제물을 바치며 산 제사를 드립시다.</span><span> </span></p>
<!-- paragraph:p0030 -->
<p class="p1"><br></p>
<!-- paragraph:p0031 -->
<p class="p1"><br></p>
<!-- paragraph:p0032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a href="https://www.youtube.com/embed/vbGIaWPsoIk" title="미디어 원본"></a></sp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