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15m] 책임적 신앙(롬 9:3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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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5m
롬 9:30-33
책임적 신앙
[3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31]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32]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33]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지난 20세기 100년간 지구촌에서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이 2500만 이라고 합니다. 재작년 2015년 한 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5092명입니다. 엄청납니다. 이것은 다 누구의 책임입니까? 자동차를 만든 회사 책임입니까? 한 해 수천 명씩 죽어나갈 줄 뻔히 알면서도 계속 자동차를 만들어 판 회사의 잘못입니까? 아니면 최초로 자동차를 발명한 사람의 잘못입니까? 우리는 늘 그런 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며 자기 책임을 남에게 전가합니다. 이미 아담과 하와가 그걸 따먹을 줄 뻔히 알면서도 선악과를 만들어 그들을 죄에 빠뜨린 책임은 하나님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범죄한 인간의 고약한 습성입니다. 자기 타락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고 싶어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추궁할 때 아담이 하나님이 제게 주신 하와가 자기를 꼬셔서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자기 범죄의 책임을 여자에게 미뤘다기 보다는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돌린 겁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데도 정말 인간은 책임 전가의 명수요, 오리발의 귀재들입니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습니다.
본문의 주제도 바로 책임의 문제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누가 만들었습니까?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타락했는데, 그 실패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이스라엘은 특별히 하나님의 선택을 입은 선민이지만, 그들이 범죄했습니다. 하나님께는 결코 실패가 있을 수 없다는 게 우리 상식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도, 12사도 가운데 하나인 가룟 유다도 다 하나님의 작품들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다 실패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의 책임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게 우리의 생각입니다.
그러면 성경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라고 합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책임이지만, 실패나 타락은 전적으로 우리 인간의 책임이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내 구원의 책임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삶의 책임, 내 삶의 주체는 나 자신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주권적인 은혜로 선물로 주셨지만, 내 삶은 하나님이 어디까지나 나의 자유의지 아래에 두셨습니다. 물론 지금도 성령께서 나를 위해 기도하시며 나를 이끄시지만, 그렇다고 그분이 내 삶을 대신 살아주시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허수아비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나를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아들로 딸로 만드셨지, 기계나 노예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타락 등 일체의 책임 앞에 홀로 서야 합니다. 이것이 책임적 주체입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그 행위에 대해 끝까지 홀로 책임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것을 반대로 생각합니다. 구원은 내가 믿어 이루었으니, 내 삶은 성령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주님을 내 중심에 모셨으니 주님이 내 삶을 대신 살아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툭하면 내 책임을 주님께 돌립니다. 자기가 죄를 짓고도 주님을 탓합니다. 왜 실패하도록 그냥 내버려두셨냐는 겁니다. 그러면서 성령을 원망합니다. 맞습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나에게 힘도 주시고 용기도 주시나 내 대신 내 삶을 살지는 않습니다. 신앙생활하다가 낙심하는 분이 간혹 있는데, 그것은 누구의 탓도 아닙니다. 자기 자신 탓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입니다.
이전에 제가 신학교에 있을 때, 세상에 신학생만큼 공부 안 하는 사람도 없어 보였습니다. 과제를 내면 원본은 하나고 나머지는 다 사본입니다. 마감도 제대로 지키는 학생이 없습니다. 그러고는 나중에 찾아와 온갖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성경은 언제나 핑계를 경계합니다. 로마서 2장 3절입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훗날 주님 앞에 가서도 남 핑계 대고 책임을 회피하시렵니까? 그때도 핑계가 통할 것 같습니까? 이번에 퇴임하는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보스턴 마라톤 대회 때 테러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는 국민들에게 사과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모든 책임이 제게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남을 탓하고 핑계할 수 없는 것은 언제나 대통령이 최고 책임자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대통령과는 참으로 대조적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우리 삶의 모든 것에 대해서 전적으로 우리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둔 종이 이렇게 말합니다.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이것은 비겁한 변명입니다. 자기 잘못이 아니라 주인에게 책임을 돌립니다. 주인을 깡패요 조폭으로 안 겁니다. 과거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기들의 믿음이 아니라 행위를 따르고 율법을 좇다가 실패했습니다. 그 죄악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오늘까지도 주님보다는 율법의 의만 고집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어느 날 밧세바를 범합니다. 밧세바의 남편인 우리야 장군까지도 최전방에 배치해 고의로 전사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단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냅니다. 나단이 다윗에게 가서 이르기를, 어떤 가난한 사람이 양 한 마리를 가졌는데, 어느 날 많은 양떼와 소떼를 가진 사람이 방문하자, 이웃의 양 한 마리를 가진 가난한 사람의 것을 빼앗아 대접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다윗이 그를 당장 잡아들이라고 합니다. 그때 나단 선지자는 그 날강도가 바로 당신이라고 합니다. 다윗은 그 충격의 지적에 눈이 짓무르도록 회개했습니다.
믿음으로 살고 복음을 따라 사는 사람은 자신의 실패와 죄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회개하는 사람이지, 자기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주님을 보십시오. 어느 안식일 날 회당에서 한쪽 손 불구인 자를 고치셨습니다. 안식일에는 원래 장애인을 고쳐주면 안 됩니다. 그것도 일종의 노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유대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지만 그 일을 결행하십니다. 마가복음 3장을 보면, 그때부터 유대인들이 주님을 죽이기 위한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주님이 안식일 날 장애인을 고치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를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안식일에 그를 고쳐주셨고, 그 책임을 홀로 지셨습니다. 주님은 이미 안식일에 장애인을 고치다가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각오하신 겁니다. 어떤 일이 닥친다 해도 다 책임을 지겠다는 결단을 하신 겁니다.
우리는 왜 주님처럼 책임적으로 살지 못할까요? 왜 남을 돕고 사는 일에 용감하지 못하고 비겁할까요? 결국 사랑이나 믿음을 내세우면 필연적으로 나의 무언가가 희생되기 때문에, 그것이 두려운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핑계를 대다가 마지막에는 교회나 주님께 모든 걸 떠넘기며 원망합니다. 여러분, 신구약 성경에 나오는 그 어떤 인물도 성자는 아닙니다. 그들은 놀랍도록 위대하기도 했지만, 우리와 똑같은 모순과 한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책임의식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노아, 모세, 엘리야, 바울을 보십시오. 그들은 모두 위대한 책임적 주체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올해는 좀 더 주님 앞에서 책임적으로 삽시다. 좀 더 책임적으로 신앙생활 합시다. 모든 책임은 내게 있고, 내가 끝까지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각오로 삽시다. 이것이 주님이 바라시고 주님이 친히 모범을 보이신 책임적 존재, 책임적 주체입니다. 주님은 자기를 죽이겠다는 위협에도 굴하지 않으시고 사랑을 실천하셨고, 그 책임을 끝까지 홀로 지셨습니다. 새해에는 우리도 남 핑계 대지 않고, 끝까지 우리의 사명과 아픔과 실패까지도 책임지겠다는 각오로 살아가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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